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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강인섭/보석상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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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강인섭
보석상자 외 1편
추억은 내 가슴에 깊이 박힌 보석이다
빼낼 수도 떼어낼 수도 없는
묵은 상처 같은 것이기에 몸속에 두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바다 같은 데서 한 알의 진주가
오랜 세월을 두고 영글어 가듯
내 가슴의 보석도 상처 위에 돋아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소중한 몸의 일부다
가난을 죄악이라고 소리치며
두 손 불끈 쥐고 뛰던 젊은 시절
좋아하던 그녀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
불이 켜진 창문만 바라보고
발길 돌리던 허무한 마음도
이젠 아름다운 한 장의 추억이 되었다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던
최전방에서의 초년병 시절
고생스럽던 추억이 때의 썩는 진주알처럼
더욱 가슴 깊이 박히는 것은 웬일일까
추운 겨울이면 그때를 생각하고
언 손 부비며
나와 함께 긴 여로 걸어온
추억의 보석상자 꺼내어 매만져본다
봄비
꽃잎 지고 새 순 돋을 즈음이면
봄비가 온다
그녀는 은박지 위로 흘러내리는 이슬방울
혹은 눈 먼 소녀의 귀밑머리에 송송 돋은
복송아털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
그래서 소리 없이 대지만 촉촉이 적시고
돌아가는 걸까
한참 예쁜 자태 뽐내는 꽃잎
건드리지 않으려
바람도 데불지 않고 혼자 슬쩍
다녀가는 봄비
올 여름 태풍을 준비하기 위해
지구 곳곳을 살피고 돌아가는
하늘의 순라꾼인지도 모른다
아! 이제 나도 고향집 몰래 다녀가는
나그네처럼
먼 길 떠날 채비 서둘러야 하는가.
강인섭- 1936년 전북 고창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대학에서 수학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녹슨 경의선 등 4권의 시집과 더 넓은 세계로 등의 수상집, 평론집을 다수 출간했다.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를 역임하고, 통일민주당 부총재, 제14. 16대 국회의원과 대통령정무수석을 지냈다. 한국외대 석좌교수와 호남대 겸임교수를 지낸 후, 현재 강우규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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