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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기/정미소/속초 아바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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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속초 아바이마을
수구초심首丘初心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최영준
아바이마을(전쟁피난민촌)로 건너가는
갯배에 오른다
발동기도 노도 선장도 없는 배,
나룻배 한가운데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쇠줄이
생선 등뼈처럼 늘어져있다
뱃길에 묶인 쇠줄을 끌어당길 때마다
가슴 긁는 소리를 내며 우는 소리가 난다
바닷물도 철퍼덕거리며 훌쩍거린다
밤이 오면 더 크게 소리쳐 운다
아바이마을에 도착, 묶인 쇠줄을 내려놓자
갈매기가 방언하듯 소리 내며 맞이한다
식당마다 속이 꽉 찬 아바이순대 사진들이
곰삭은 눈물처럼 걸려있다
속앓이를 풀어놓은 듯 아바이순대국 속에
저녁노을이 벌겋게 번진다
한 숟갈 입에 물자 목이 뜨겁다.
*수구초심(首丘初心)-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하고
죽는다는 말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
-≪아라문학≫ 2003년 봄호
최영준의 시 「수구초심」은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이야기다. 뭍에서 섬인 ‘아바이마을’로 오고가는 갯배는 실향민만큼이나 늙었다. 전후 60년이 넘도록 향수병에 시달리는 피난민들과 철책에 묶여서 동고동락한다. 며칠 후면 돌아 갈 고향이라고 여겼던 길이 반세기다. 실향민들이 38선 너머 고향의 흙냄새를 맡으러 갯배의 등에 오른다. 두고 온 가족과 마을의 고샅길,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던 누렁이가 눈에 밟힌다. 사람도 연어처럼 귀소본능의 동물이다. 고향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속초 ‘아바이마을’은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분단국가가 가진 슬픔을 지닌 마을이다. 시인은 해질 무렵 철책에 묶인 늙은 갯배의 등에 오른다. 철퍼덕거리는 파도와 한숨 섞인 갯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속수무책인 자신을 앓는다. 실향민들의 마을에 들어서서 망연자실한다. 갈매기가 쏟아놓는 방언이 길안내를 한다. 철책에 묶인 실향의 설움이 곰삭아 순대 속을 꽉꽉 채웠다. 시인은 노을의 손을 잡고 북청아바이순대, 함흥가자미냉면, 원산상점, 흥남해장국의 골목을 돌아본다. 청진식당앞에서 백발의 노인이 호객한다. 노인의 방언을 귀담아 들어보니 고향의 추억을 버무려서 만든 원조아바이순대국밥집이라고 한다. 시인은 순대국밥 한 그릇을 주문한다. 뚝배기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념이 목에 걸린다. 울컥하는 통일이 잦아들었다. 멀리서 갯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갯배는 더 늙기 전에 철책을 풀고 북으로 달리고 싶다고 한다. 실향민을 가득 태우고 뱃머리를 돌려 고성, 거진, 원산, 흥남부두를 한나절에 닿아 몸 풀고 싶다고 한다. 연어처럼 분단의 너울에 몸 부서져도 좋다고 한다. 시인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 실향민들이 봄꽃이 환한 북녘의 고향마을로 나비 떼로 날아가 안기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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