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시읽기/천선자/공중에 매달린 눈동자
페이지 정보

본문
천선자
공중에 매달린 눈동자
과메기
이명
구룡포 해변
청어들이 줄에 매달려 혹한의 바람을 맞고 있다
온몸에서 빛이 흐른다
질서정연한 빛의 대오
하늘은, 깊고 깊은 유년의 하늘
바람 씽씽 부는 교정, 아이들 틈새에 나는 서 있었다
멀건 김칫국에 허기를 달래가며 내 몸에서도 수분이 말라가던 시절
눈빛 하나로 견디어 내던 겨울이었다
그 눈빛, 오늘 저 몸에서 살아 빛난다
내게도 건기로 푸석푸석 말라가던 청춘이 있었다. 수 억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서 빛나는 태양의 빛 한 조각이 내 몸과 마음의 물기를 송두리째 탈수시키던 그때, 가진 것 없이 맨주먹으로 허기를 참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멈추어버린 시간 속에서 지표를 잃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끌고 헤매던 청춘의 한 시절을 생각해보면 꿈을 꿀 수 있어 그나마 버티고 살아 왔던 것 같다.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 희망이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질 수가 있었다.
전동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같은 교복을 입고 웃고 떠들며 들어온다. 왁자하게 떠들며 들어온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핸드폰을 들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쥐고, 놓치지 않으려 듯 정신이 팔려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쳇바퀴를 도는 아이들, 심지어 하루에 열 몇 군데가 넘은 학원을 가방만 바꿔 다니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또 책상 앞에 앉는 아이들, 이런 사회구조 때문에 지친 눈동자는 무엇인가 갈망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어머니가 영화에 나오는 터미네이터인 줄 알고 무엇이든 끝없이 조르면 나오는 줄 아는 아이들이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다운 받아 독후감을 쓰는 시대이다 보니, 책에서 느끼는 감동을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이십사 시간 원형감옥panoticon에 갇혀 사는 형국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다시 감시카메라가 되어 역감시synopticon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 시놉티콘에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권력자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을 서로 익명체제 하에 교류하면서 상호 투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회가 확산될수록 정보유출은 심각해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거의 모든 곳에 설치된 카메라에 감시를 당한다. 핸드폰이나 인터넷 시장이 넓어질수록 의심의 눈초리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예민해진다. 페이스북은 더 많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긁어모으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매혹적인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만약 이 데이터들이 권력의 힘과 결합한다면 디지털 파놉티콘은 우리 일상의 디폴트상태를 야기할 지도 모른다.
정보화 사회가 확산되면 될수록 인간은 그 만큼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그 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또한 줄어든다. 모든 것을 로봇이나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인간의 머리는 그냥 폼으로 달고 다니는 백지장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저 아이들의 눈동자에서는 왜 청어의 눈동자의 그 빛나는 빛을 볼 수가 없을까. 왜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은 볼 수가 없을까. 누가 저 아이들에게 맑고 빛나는 눈동자 대신 감시 카메라를 수도 없이 달아 놓았을까.
- 이전글시읽기/최향란/부드러움만 남다 15.07.06
- 다음글시읽기/정미소/속초 아바이마을 15.07.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