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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기/최향란/부드러움만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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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향란
부드러움만 남다
촉
장순금
장작을 패보려고 도끼를 들었다 휘청, 느닷없이 도끼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무서운, 무거운 도끼가 제일 힘센 줄 알았는데 허공의 힘이 도끼날을 단박에 낚아챘다
고요한 것이 날 선 것보다 촉이 깊고 빨랐다
허공의 정수리에 허리 꺾이고
바람이 모서리에 속살 허옇게 쪼개져 속수무책 나가떨어진 생나무 토막들
그 생즙의 소금기
누굴 위해 제 생살 쪼개 보인 적 있나, 갈라지는 생살의 소금기 견뎌본 적 있는지
나에게 물어 본다
담벼락에 햇살을 끌어당겨 가지런히 누운 장작더미, 산이 품었던 신생의 냄새를 애써 맡고 있다
아궁이에서
무한청공을 지나 꽃불로 활활 온기로 사는 일
온기에 쪼개진 마음 데우는 일 견뎌야 지나가는 일
기다리고 있다
허공의 촉에 장작 한토막이 경전처럼 펼쳐진다
시인의 시선은 맨 처음 장작에서 도끼로, 도끼에서 허공으로, 허공에서 다시 장작으로 돌아왔다.
처음 장작을 보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휘청, 그 느닷없음-에 순간 당황한 것이다.
-허공의 힘-이라니, 이 어처구니없는 힘에 순간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진 생나무 토막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제야 자신의 생을 돌아다보게 된 것이다.
산산히 조각내어진 것을 남 탓 하지 않고 -햇살을 끌어 당겨 가지런히 누운 장작더미-
‘촉,’ 이라는 시 속에서 날카로운 뾰족함은 모두 사라졌다. -마음 데우는 일 견뎌야 지나가는- 무서운 ‘촉,’, 부드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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