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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리
사람을 찾습니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어 놓았던 단추를 하나둘 채워야 몸의 온기가 지탱이 되는 계절, 가을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짙게 푸르던 가로수 잎들이 띄엄띄엄 노란빛을 띱니다. 성질 급한 나뭇잎들은 갈색 빛을 띄우고, 물기마저 없이 바삭하게 말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버립니다.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언제까지나 푸른빛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으나 가는 세월은 머물지도 않고 잘도 달립니다. 이 가을이 오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 내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나는 딱히 대답할 답이 없습니다. 가슴이 멍해 오면서 안개 낀 듯 눈이 침침해지더니 이내 눈물이 고입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괜시리 그러는 거지요.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에는 가을이 되면 괜시리 고독해지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응시하면서 이럴 땐 따끈한 커피를 마셔야해, 곧 바바리코트를 장만해야겠지. 괜히 창밖도 내다보면서 쓸쓸해 보여야 할 필요도 있지, 이 쯤 되면 멋진 사람도 나타나야 되지 않나, 이런 모습이어야 가을의 고독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별 엉뚱한 생각으로 가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날의 가을은 고독할 틈도 없이 지나가곤 했습니다.
가을은 또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젊었을 때의 가을은 고독의 계절에 맞추어 일부러 고독해보이려 애를 써야 했는데, 이 가을 초입은 그게 아닙니다. 이제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벌써 고독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가하게 가을날의 고독만을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를 소개하자면 조그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못지않은 사업이라 생각하고 운영합니다. 비록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도 생각만은 커야하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다급한 일들로 보면 내 사업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이 없습니다. 잠시라도 느슨한 마음을 가지면 어느 틈에 알았는지 금방 뒷덜미를 잡아챕니다. 한 치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곧 바로 적지 않은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는 급박함에 시달립니다. 침대에 누우면 차라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밤을 보내고 나면 아침에는 다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하나 걱정이 태산입니다. 경쟁업체의 동향에 귀도 쫑긋 세우며 온몸의 촉수를 최선을 다해 동원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느낌에 따라 일을 결정하는 일들이 더러는 있습니다. 일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지 전전긍긍하게 되지요. 그런 날들 속에서도 가을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아파트 베란다 밖을 내다봅니다. 비가 오려나, 아니면 바람이 많이 부나, 혼잣말을 내뱉으며 가을은 가을이네, 가을이 벌써 왔단 말이지. 신고를 하고 와야지 무조건 오면 어떻게 해.
우리 집 베란다에는 벌써 가을이 온지 여러 날이었습니다. 맨발로 베란다를 서성이다 보니 바닥의 타일에서도 찬 기운이 올라오고, 올망졸망한 화분들은 이발을 했는지 깔끔하게 잘려진 모습입니다. 마치 중학생이 된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요.
며칠 전 어머니께서 다녀가시고 난 뒤의 베란다 모습입니다. 우리 집 베란다 화분들은 어머니의 소관입니다. 누렇게 변한 잎들은 온데간데없고 짧게 커트 친 화분들이 쭉 늘어서 있는 베란다는 가을을 톡톡히 맞이했다는 생각입니다. 새벽의 베란다 밖은 태양이 뜨기 전 검푸른 빛을 띄움니다. 간혹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과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무들이 여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베란다 밖의 새벽공기를 마시지도 않고 살갗에 닿지도 않았어도 몸은 밖의 온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집 베란다는 가을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생기는 고민이 있습니다. 바뀌어진 날씨와 온도 때문에 옷은 뭘 입어야할까. 오늘은 뭘 입고 출근하나. 장롱 속을 아무리 뒤적여도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뭘 입었을까, 옷을 분명 입고 다녔지, 벗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손에 잡히는 것은 목이 축 늘어진 티셔츠이거나 색깔이 약간 바랜 셔츠들뿐입니다. 작년에 뭘 입었는지 생각이 전혀 나질 않습니다. 장롱을 들쑤시다가 이내 마음까지 들쑤시고는 가을을 원망합니다. 허락도 없이 오는 가을이입니다.
출근길,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서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조금이나마 샐까봐 꼭꼭 잠그고 다녔던 차의 창문을 활짝 열고 길가의 가을을 봅니다. 하늘은 더 없이 높고 푸르고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울긋불긋하고, 몽실몽실한 나무들이 갖가지의 색깔을 내고 있습니다.
조금 나이든 나무의 나뭇잎들은 노란빛보다는 가을빛인 갈색을 띄고, 어린나무의 나뭇잎들은 신이 내려준 빛깔로 유혹을 합니다.
갑자기 눈에 눈물이 글썽입니다. 아침부터 눈 화장을 진하게 한 터라 조심스럽게 휴지로 꾹꾹 눈물을 짜내고는, 이대로 떠나버려. 나 하루 없다고 사무실이 문 닫을라나, 나 없이 해보라니까. 내 말을 들어줄 이도 없는데, 입을 씰룩거리며 마구 내뱉어 봅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달리다보면 어느새 사무실 앞입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사무실 셔터를 올리고 출입문을 힘차게 엽니다. 나를 따라온 가을바람이 사무실 안을 한 바퀴 휘도는 듯합니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습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무엇 때문에. 누굴 위해서. 내 소원은 하나입니다. 조국통일이 아니고 다리 쭉 뻗고 쉬어 보는 것입니다. 그걸 누가 알까.
조용한 사무실에 쥐 죽은 듯 숨어있던 모기 한 마리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뺍니다. 밤새 나를 기다렸나보다. 저 모기 내가 사무실에 나타나자마자 시끌벅적해지니 괜시리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립니다. 저도 갈 때가 되었으니 이제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을은 이렇게 저에게 다가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자꾸 화가 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해도 머리는 흐리멍덩하기만 하고, 눈에는 안개라도 낀 듯 희뿌옇기만 합니다. 아무렴 아직 노인 증세는 아닐 테고, 병원에 가도 딱이 병명이 없는 갱년기 증상일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게 사람은 아닐까요. 혹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손전화 번호는 공일공에 땡 대대댕 땡 때대뎅입니다.
박하리- 시인. 2010년《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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