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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이성재/참새와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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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438회 작성일 15-07-0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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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참새와 허수아비

 

 

작년 초등학교에서 저학년을 대상으로 아이들 글쓰기 수업을 했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활자화된 자료나 책으로 하기보다는 자연을 이용한 수업이 많은 편이다. 자연을 이용하여 놀이하고 체험하고 그리고 느낌이라든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글로 표현하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어 한다. 글이라는 딱딱한 수업을 좀 더 친근감 있게 접근하기 위한 나만의 조금은 독특한 수업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텃밭을 가꾸고 있는 나에게 계절마다 수업자료가 넘쳐난다. 그 학교에서 제일 처음 수업한 것이 땅콩이다. 내가 직접 키운 땅콩을 가져가 다섯 개씩 나눠줬다. 그리고 땅콩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땅콩이 달린 그림을 그리는 아이도 있고 딸랑 땅콩 하나만 그린 아이들도 있었다. 땅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집에 있는 화분이든 아니면 학교 화단이든 어디든 오늘 나눠 준 땅콩을 한 번 심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가끔 지나가다 땅속에서 잘 자라고 있지?” 하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이들은 땅콩이 싹을 내민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런 식으로 진행된 나의 수업 중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들판 꾸미기였다. 텃밭 근처의 추수 끝난 논에서 벼이삭을 주워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들판을 상상해서 꾸며보라고 했다. 벼를 처음 본 아이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들판을 꾸미기 시작했다. 벼이삭을 스카치테이프로 고정시키고 색연필로 사람을 그리고 구름을 그리고 하늘을 그렸다. 아이들이라서인지 그림이 정말 다양하게 그려졌다. 어떤 남자아이는 콤바인을 그려 그것으로 벼 베는 모습을 정확히 그렸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본 적 있다고 했다.

들판을 다 꾸민 아이들이 한사람씩 자기 들판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 그림 속에 공통으로 들어간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참새와 허수아비였다. 어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허수아비와 참새를 그렸는지. 벼이삭 사이에 서 있는 허수아비의 어깨와 모자에 색깔도 갖가지인 참새들이 앉아있다. 허수아비도 재미있는 모습이다. 예전의 허름한 헌 옷을 걸친 허수아비가 아니다. 화려하고 모습의 멋있고 예쁜 허수아비다. 허수아비에게 자기 자신을 투사시켰는지 나름 자기와 비슷한 멋을 부린 허수아비도 더러 눈에 띄었다. 벼가 뭔지는 몰라도 허수아비와 참새는 들판에 꼭 있어야 할 것들, 혹은 있는 것으로 자동인식 되었는지 아니면 동화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 모두가 자기 들판에 허수아비와 참새를 그렸다. 요즘은 사실 들판에서도 허수아비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자기들 상상 속의 허수아비를 그린 듯 했다.

올 가을 문득 작년 수업이 생각나 텃밭 오가는 길에 들판을 살펴보았다. 벼가 누렇게 익었지만 허수아비가 벼농사를 지키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참새는 있는데 허수아비는 왜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마도 그건 참새들이 영리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허수아비가 사람이 아니라 그야말로 허수아비이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비록 허름한 옷에 밀짚모자 쓰고 두 팔 벌린 채 하루 종일 붙박이로 서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런 허수아비에게 속는 어리숙한 참새는 이제 없는 것일까. 참새도 사람도 요즘은 모두가 너무 똑똑하고 영리한 것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텃밭 아래에 있는 황씨 할머니의 수수밭에서 재미있는 허수아비를 만났다. 수수밭은 벼가 있는 논만큼이나 참새가 많이 모여든다. 아니 참새뿐만 아니다. 각종 새들이 수수밭에 모이는 걸 보면 아마도 수수가 벼보다 더 맛있나 보다. 오죽하면 수수밭의 수수에 양파 망이 씌워졌겠는가. 황씨 할머니 수수밭은 수수가 너무 많아 양파 망을 씌울 수도 없다.

그날도 별다른 생각 없이 텃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황씨 할머니 수수밭 가장자리에 커다란 곰 인형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I love you가 적힌 빨간색 하트를 가슴에 단 곰 인형은 평소 황씨 할머니가 쓰고 다니던 벙거지 모자를 쓰고 턱 하니 앉아 있었다. 키 큰 허수아비도 새들을 못 쫓는데 저렇게 앉아서 새를 쫓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허수아비 모습에 새들이 움찔할 것 같았다. 그 곰 인형 허수아비는 황씨 할머니가 앉아서 일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곰 인형 허수아비가 무섭기보다는 귀여웠다. 새들과 금방 정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허수아비는 좀 험악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도 허수아비를 만들어 우리 텃밭에 세웠다. 주위 분들이 궁금해 했다. 갑자기 허수아비를 왜 세웠어? 하고 옆집 아주머니가 물었다. 새들이 다 영근 땅콩을 쪼아 먹어서였다. 사실 땅콩 밭이 엉망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캘 때가 되어 살펴보니 땅콩 껍질이 수두룩했고 땅콩을 먹으려 땅콩 뿌리 주위를 다 파헤쳐 놓았다. 이건 분명 뒷산 까치들의 짓이라 여기고 기다란 장대 두 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 평소 내가 입던 작업복 옷을 입혀 세웠다. 그런데 아무리 허수아비라지만 이건 너무 허수아비 같았다. 영리한 새들이 속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워 두었다. 그러나 땅콩을 파먹는 동물은 새가 아니라 두더지와 들쥐였다.

아래 황씨 할머니의 곰 인형 허수아비와 우리 텃밭 허수아비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다. 새를 쫓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 두 집 허수아비가 작년 아이들 그림 속에 있는 허수아비들과 닮았다는 생각에 쿡쿡 웃음이 났다. 새들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다가가 놀고 싶은 허수아비의 모습. 참 착해 보인다.

 

이성재- 수필가. 2002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가을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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