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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우리 시대의 시인, 이근배/추사秋史를 훔치다-벼루 읽기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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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034회 작성일 15-07-07 10:12

본문

특집

이근배

추사秋史를 훔치다 외 4

벼루읽기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추사秋史의 벼루를 보았다

댓잎인가 고사리 잎인가

화석무늬가 들어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남포 오석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다듬고 갈아 군자의 보배로다

(琢而磨只 君子寶只)

깨알 같은 48자 명문銘文이 새겨있는

추사가 먹을 갈아 시문을 짓고

행예行隸를 쓰던 유품이 아니라면

한 눈에 들어올 것이 없는

그 돌덩이가 내 눈을 얼리고

내 숨을 멎게 한다

어느 새 나는 쇠망치로도 깨지 못할

유리 장을 부수고 벼루를 슬쩍?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못나게도 내 안의 도둑은 오금이 저린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게 섰거라!

그 작고 검은 돌덩이가 와락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어느 날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이 내게 와서

벼루읽기

 

 

요즘 신문에서 정조正祖이야기가 한창이다

신하에게 보낸 편지에

막말을 썼다느니 독살이 아니라느니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권력의 작두날에 섰던

그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이라고

호를 짓고 그 까닭을 글로 남겼다

지상의 강에 뜬 달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내 속 빈 머리로는 우주적 생각을

알아들을 길 없거니와

내가 그를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사부師傅였고

자신의 어릴 적 보양관이자 스승이었던

뇌연雷淵 남유용南有容에게

청나라 궁실에서 온 벼루에다

그 호를 새겨 바친 것이

어느 날 뜻밖에도 내게 찾아 온 것이다

서른여섯 해 전 창덕궁에서

명연전名硯展이 열렸을 때

왕실이며 명문거족들이 다투어 자랑하던

나라 안의 잘난 고연古硯들이 모두 나왔을 때

눈 밝은 이들이 가리고 골라서

으뜸의 으뜸으로 뽑았던 그 벼루

단계석에 박힌 구욕안鸜鵒眼이며

용문이며 온갖 위엄을 모두 갖춘

먹을 갈기에도 붓을 대기에도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어명연御銘硯

때때로 강물소리도 내고

수천수만의 달로 떠오르기도 하여

밤이면 나는 모르는 땅으로 끌려 다니기도 하고

어지러운 꿈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날마다 조금씩 넋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의 꿈속에 들어가 붓과 놀다

벼루읽기

 

 

딱 여드레만!

바다 건너 텐리대 도서관에 깊이 갇혀있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밟지 못한 땅으로 데려다 줄 것 같은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국립박물관에 와 있단다

일요일 아침 서둘러 달려갔으나

세 시간 줄을 서다 허탕을 치고

마지막 날 일찍 부지런을 떨며

두 시간 만에 겨우 꿈결 같이 그림을 만났다

허리 굽은 노인부터 어린 학생까지

그리 크지도 않은 옛날 그림 한 점 보겠다고

꼭두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던 것!

그것만으로 6백 년 전 태어난

안견安堅이라는 화가 참 장하지.

내 꿈도 천방지축인데

남의 꿈속에 들어가 높고 낮은 산이며

떨어지고 굽이쳐 흐르는 물이며

바위 벼랑 아래 휘어진 길이며

복숭꽃 만발한 숲과 나무들이며

구름과 안개, 집과 사람을 그려낸 것은,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

공부가 깊어 시문을 잘 짓고

글씨가 천하제일이라 했던가

서른 살 때 선경에서 노닐던 꿈 얘기를 듣고

제 것인 양 신들린 듯 붓과 놀아났으니,

눈을 차마 떼지 못하는 것은

노잣돈으로는 갈 수 없는 세상을

보는 일도 그렇지만

서른다섯 나이에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안평대군의 서문과 발문을 비롯

저 드높은 충정의 김종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과

신숙주, 정인지 등 조선조의 큰 선비들이

써 올린 글들이

피를 기름으로 촛불을 피우고 있음이며

문득 내가 자주 들여다보는

신의 솜씨로 깎은 조선 초기 벼루들이

저 그림과 글씨를 거둔 논밭?

밖을 나오니 해가 중천인데

나는 헛꿈을 깨지 못하고.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

문을 잠그며

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한밤중 누가 문을 두드리고

문짝이 떨어져서

쏟아져 들어온 電池 불빛에

눈을 못 뜨던 버릇은

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

검은 발자국이 찍히고

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

겨울 문풍지처럼 떨며

새우잠을 자던 버릇은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던 버릇은

내가 자라서도

죽을 때까지도 영영 버릴 수 없는

문을 못 믿는 이 버릇은

 

 

 

 

북위선北緯線

 

 

1

서투른 병정은 가늠하고 있다.

목탄으로 그린 태양의

검은 크레파스의, 꽃밭의, 지도의

눈이 내리는 저녁 어귀에서

병정은 싸늘한 시간 위에 서 있다.

지금은 몇 도 선상인가.

그리고 무수히 탄우彈雨가 내리던

그 달빛의 고지는 몇 도 부근이던가.

가슴에는 뜨거운 포도주

한줄기 눈물로 새김하는 자유의

피비린 향수鄕愁에 찢긴 모자.

이슬이 맺히는 풀잎마다의 이유와

마냥 어둠의 표적을 노리는

병정의 가슴에 흐르는 빙하.

그것은 얼어붙은 눈동자와

시방 날개를 잃는 벽이었던가.

꽃이었던가

 

2

한 마리 후조候鳥가 울고 간

외로운 분계선

산딸기의 입술이 타던 그 그늘에

녹슨 탄피가 잠들어 있다.

서로 맞댄 산과 산끼리 강과 강끼리

역한 어둠에 돌아누운 실재實在

빈 바람이 고요를 흔들어가는

상잔相殘의 동구 밖에 눈이 내리고

어린 사슴의 목쉰 울음이

메아리쳐 돌아간 꽃빛 노을 앞에서

반쯤 얼굴을 돌린 생명이여

사랑보다 더한 목마름으로

바라보아도 저기 하늘 찢긴 철조망.

한 모금 포도주의 혈즙血汁으로

문질러도 보는 이 의미의 땅에서

병정이여

조국은 어디쯤 먼가.

눈먼 신화의 골짜기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소스라쳐 뒹굴던

뿌연 전쟁의 허리춤에서

성냥불처럼 꺼져간 외로운 자유.

그 이지러진 풍경 속에

오늘도 적멸의 눈이 내린다.

 

3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황토 흙에 묻힌 군화 한 짝

언어도 없는 비명碑明의 돌아선 땅에서

누가 마지막 입맞춤 마지막 포옹을

묻어두고 간 것일까.

국적도 모르고 군번도 없는 채,

버리운 전쟁의 잠꼬대여

멀리 흐느끼는 야영夜營의 불빛은

검은 고양이의 걸음으로 벽을 오르고,

후미진 밤의 분계선 근처에

병정의 음악은 차게 흐른다.

허나 돌과 나무 어느 하나도

손금처럼 따습게 매만질 수 없는

빙점의 북위선

작고 파닥이는 소조小鳥의 가슴처럼

피가 사위는 대안對岸이여

세계가 귀대이는 초소에서

오늘도 전단의 눈발을 맞는 간구懇求

그 목마른 안존安存 위에

떨리는 자유여 강하江河

서투른 병정이 가늠한 두 개의 판도.

검은 크레파스의 태양의 꽃밭의

싸늘한 시간 위에서

병정이여 여기는

북위선 몇 도의 어둠 속인가.

눈이 내리는 찬 지경地境

북위선 몇 도의 사랑 밖인가

 

 

이근배 자술 연보

 

아호 사천砂泉

1940년 충남 당진에서 유학자인 이각현李覺鉉공의 장남 선준銑濬공과 거유 장후재張厚載 학사의 셋째 딸 순의順儀 여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남.

1955년 당진상업고등학교 졸업.

1958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입학. 김동리, 서정주선생의 문하생으로 글짓기를 배움. 공초 오상순선생께 아호 사천을 받음.

1960년 첫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서정주 선생 서문으로 출간.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묘비명당선.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압록강당선.

1962<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보신각종당선.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달맞이꽃당선.

1963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수석상, 달빛 속의 풍금으로 수상.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조부문 수석상, 산하일기로 수상.

1964<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북위선당선. 문공부 신인예술상 문학부 특상, 노래여 노래여수상. 시동인지 <신춘시> 박이도, 이탄, 조태일, 이가림 등과 1969년까지 펴냄.

1967년 황희 선생 17대손 만산滿山공의 차녀 연숙蓮淑과 결혼. 중앙출판공사 편집장.

196876년 동화출판사 주간.

1972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부회장 피선.

1973년 이후문학사상,월간문학,민족과 문학,문학의 문학,유심, 현대시학외 각 문예지 시, 시조 신인상 심사위원 역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피선.

197684년 월간문예지한국문학발행인 및 주간.

1977년 이후 <한국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대구매일>, <국제신문>, <불교신문>, <농민신문> 외 신춘문예 심사위원 역임.

1978년 이후 한국문학작가상, 정운시조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앙시조대상, 공초문학상, 지용상, 월하문학상, 고산문학상,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만해대상 등 심사위원 역임.

1981년 시집 노래여 노래여(문학세계사) 출간.

198288년 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 시창작 강의. 시조집 동해바다 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글밭) 출간.

1983년 가람문학상수상.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피선.

1984년 장편서사시 한강한국일보에 주 11년 연재.

1985년 장편서사시집 한강(고려원) 출판.

1986년 올림픽스타디움 개막기념 칸타타 산하여, 아침이여작시(백병동 작곡, KBS주최).

198788<경향신문> 민요기행 노래의 산하연재.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중앙시조대상 수상.

1988년 서울올림픽기념칸타타 조용한 아침의 나라4부 작시(장일남 작곡, MBC 주최)

1989년 기행문 소련, 동구를 가다세계일보 연재.

199091<동아일보> ‘문단수첩연재.

199092년 계간민족과 문학주간.

199093년 기행문 시가 있는 국토기행중앙일보 연재.

199294한시감상문화일보 연재.

1993년 문학기행 러시아 문학산실서울신문 연재.

1994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피선. 서사시 동학의 함성을 찾아서서울신문 연재.

199596년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현대시론 강의.

1995년 광복50주년 기념칸타타 대한민국작시(나인용 작곡, KBS주최)

19972010년 지용회 회장.

199798년 중앙대학교 국문과 현대시론 강의. 육당문학상 수상.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중앙M&B) 출간.

19982004년 재능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1999현재 공초(오상순) 숭모회 회장. 월하문학상 수상.

2000112<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연재. 편운문학상 수상. 태촌문화대상 수상.

200204년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20025월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2003현재 만해학교 교장

200313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연재.

2004현재 한국시인협회 평의원.

20044월 시집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문학세계사) 출간.

200412월 시와 시학 작품상 수상.

20053현재 신성대학교 석좌교수.

2006112월 현대시조100년 세계민족시대회 집행위원장.

2006현재 ()심훈 상록수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2006현재 현대시조포럼 의장 .

20065월 시집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동학사) 출간.

20067월 시조집 달은 해를 물고(태학사) 출간.

20071현재 계간문학의 문학주간. 5회 유심작품상수상.

20087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활판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시월) 출간.

200910월 고산문학상 시조부문 수상.

201012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시창작 강의.

20112현재 네이비문인클럽 회장(해군)

20113월 천안함 46용사 시비 헌시 작시(국방부)

20116월 의병의 날 제정 의병의 노래작사(행정안전부). 참전용사비 헌시(파주시)

20118월 제15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

20111014일 은관문화훈장 수훈.

20123월 만해대상심사위원장.

20127현재 간행물 윤리위원장.

201210월 국군의 노래 조국에 바친다’(국방부). 백두대간 이화령 복원기념시비(행정안전부).

20132월 독도의 노래 독도만세작시(경상북도)

현재 한국대표명시선100 주간 및 책임 편집. 한국시 백년대회 집행위원장. 신성대학교 박물관장.

20143월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4회 이설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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