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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우리 시대의 시인, 랑승만/시론 詩는 내 생명 창조의 승화, 정신생명 부활의 영원한 話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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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2,152회 작성일 15-07-0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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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論/浪丞萬


는 내 생명 창조의 승화, 정신생명 부활의 영원한 話頭


 


 


의 생명력을 마시며 를 씁니다. 나는 나의 에서 맑고 강인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아니 의 생명력을 마시며 거듭납니다. 그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문학적 신조가 탄생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198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장 35년 동안 반신불구의 반쪼가리 육신으로 살아오면서 그 동반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터득한 문학적인 삶의 의지며 정신력이라고 하겠습니다. , “시 한 편 쓰면 10년은 더 살고, 시 한 편 발표하면 20년은 더 살며, 시집 한 권을 내놓으면 30년은 더 산다.”는 나의 정신생명 부활의지의 문학정신적 신조라 하겠습니다. 아니 의지이고 집념입니다. 사뭇 황당무계한 미신 같은 소리로 들릴는지 모르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의 생명력을 마시며 를 쓰고 언제나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한 나의 는 불교정신을 바탕한 衆生愛的, 더불어 사는 인연의 아픔과 사랑을 나누는 철학을 터득합니다. 또한 는 영혼과 생명의 소리여야 한다고 至論합니다. 그래서 우리 의 독자는 를 통한 시인의 영혼과의 만남으로 우주적인 사랑을 교감하고 신선한 생명력을 나눈다고 봅니다.


장장 35년 동안 반신불구의 몸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보니,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살아가기 힘드시죠?” 그러나 내 대답은 언제나 그 반대입니다. “살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죽기가 힘들다.


죽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누구는 또 나보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도 합니다. 사실 열심히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고 몸부림치듯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35년의 세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게는 세 가지 끔찍한 재산이 있습니다. 내 인생적 삶의 무게로써……. ‘외로움, 가난, 병고이 세 가지가 내게는 대단한 재산입니다. 이 세 가지 재산이 있음으로써 내가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오히려 힘이 되어 의지와 집념으로써 내 아픔과 한을 이겨오며 시로써 거듭납니다. 이 세 가지 재산은 내게 있어 절대적 스승이 됩니다.


佛家의 말씀에 번뇌, 菩提란 진리가 있습니다. , 번뇌 그 자체가 곧 보리(큰 깨달음, 지혜, 행복)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번뇌가 최고의 지혜를 얻어 행복을 터득할 수 있겠습니까?


生死 , 열반과 함께 쓰는 말로써 중생의 迷見으로 보면 미망의 주체인 번뇌와 覺悟의 주체인 보리가 전혀 딴판이지만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두 가지가 그대로 하나이어서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세속의 말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變毒爲藥이란 말씀도 있습니다. 독을 바꾸어 약으로 만든다는 뜻이니, “비상도 잘못 먹으면 극약이 되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버리지만 잘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독을 약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가 그것입니다. 화엄경의 법계연기론에 의하면 미망의 현실 밖에 따로 각오의 실재를 인정치 아니하므로 번뇌의 당체가 그대로 보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 번뇌가 실상이며 법계의 실덕이어서, 그대로 보리라고 하는 것인 즉, 번뇌를 깨뜨리지 않고 그대로 보리로 요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여기 영구임대주공아파트 내 방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예부터 여천암이라 해왔고요.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사설 암자인 여천암의 자칭 암주인 셈입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 憎俗이 따로 둘이 아니다라고 감히 내세울 수 있습니다.


18년전 5월 어떤 인연으로 강원도 화천의 아주 깊은 산골에 가서 10여일 묵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유촌리란 깊은 산마을에서 용화산이란 아름다운 영산을 만났습니다. 그 용화산 산자락에 지장암이란 암자를 세우고 있는 지평스님이란 젊은 선사도 만났었습니다. 567천만년 까마득한 훗날에 미륵부처님이 여신다는 용화세계와 같은, 아름답고 수승한 산세와 영기에 그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지평선사와 한 방에서 지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용화산이 꼭 567천만년 그 까마득한 훗날의 죽음도 삶도 뛰어 넘는, 미륵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이상의 세계, 그 미륵보살이 여시는 세계가 오면, 온갖 욕락에 사로잡힌 중생들, 하잘 것 없는 서푼어치 권력과 명예와 단돈 몇 푼에 피투성이가 되어 목숨을 거는, 서로 짓밟고 헐뜯고 죽이고 죽음을 당하는 이 중생계의 짓거리들, 단 일백 년도 못 사는 아니, 소나무 한 그루 자라는 나이테만도 못한 목숨들을 이어가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는 중생들을 보면, 567천만년이란 아득한 나이테에 비유하면 참으로 가소롭고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567천만년 그 까마득한 훗날 우리 본래 면목으로 다시 만나자는 연작 장시를 쓸 언어를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부터 내 가슴엔 장엄하고 울창한 이 하나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울적할 때면 내 안의 속으로 들어가 비를 가끔 맞습니다. 맑고 시원한 산비, 가슴에 촉촉이 적셔드는 산비. 그 산비를, 산비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있으면 온몸이 청정해집니다. 일체 욕락慾樂을 멀리한 경계 속에 파묻힙니다. 아름다운 새소리도 듣습니다. 꽃망울 벙그는 소리, 골짜기의 맑고 맑은 샘물 흐르는 소리도 듣습니다.


때묻은 더러운 발자국소리는 내 안의 속엔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니 이 산 속에는 그런 오염된 발자국소리는 틈입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나만이 이 산속에서 유유자적합니다. 맑은 바람과 물소리, 새소리, 꽃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 영혼의 言語話頭를 가다듬습니다. 이 아름다운 은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내 안에 자리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시는 나에게 있어 예술적 언어작업이기 이전에 생명창조, 정신생명부활로서의 화두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은 내 영혼을 살찌우고 맑게 하는 우주법계의 텃밭입니다. 나는 내 안의 속에서 을 구하고, 스승을 찾고, 나의 목소리(詩一言語)를 찾기 위해, 이 산 속에서 84천 마리의 소(소는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을 일컫습니다. 佛經84천경이어서 팔만대장경이라 하니 그 부처님의 말씀으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함이니 팔만 사천 마리의 소를 키운다 했습니다)를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가기가 어려운 俗氣를 멀리한 죽기가 어려운 삶과 죽음, 외로움과 가난의 갈림길에서 터득한 내 문학과 영혼의 숲길입니다. 이곳은 나만의 극락이요, 淨土입니다. 시를 쓴다는 일은 행복한 영혼의 언어를 천착한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시는 내게 있어 영원한 화두입니다. “살기보다 참으로 죽기가 힘들구나이 또한 나의 화두가 아니겠습니까.


1956, 내 나이 24세때 문학예술에 이한직 선생으로부터 시 이 추천되어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언 40여 년, 이미 세상을 떠난 김관식, 천상병, 박봉우, 윤삼하, 박재삼, 권일송, 조운제. 박성룡 등 詩友들과 명동 바닥의 백작들이 되어 와 술과 사랑과 낭만으로 정열의 불꽃을 태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내 나이 벌써 82세에 들어섰으니 참으로 세월의 흐름이 물보다도 빠릅니다.


淸淨한 영혼의 목소리에 묻어나올 生命이 얼마나 답게 抽出되어 나와서 나의 진솔한 言語들에게 맑은 이슬처럼 영롱하게 맺혀지는지가 내 의 영원한 話頭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生命이 내 영혼의 진정한 苦惱結實일 때 더욱 값집니다. 또한 더더욱 그 빛나는 언어의 이슬방울들이 우리들 歷史물 속으로 함께 뛰어들어 흘러간다면 이야말로 기똥차게 끝내주는 일이 아닙니까.


진정한 苦惱로 천착해낸 言語에는 처절한 빛깔의 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歷史를 바라보는 색깔 있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언어들……. 그 언어들이 역사를 무관심하게 비켜가거나, 아니 그보다 이 땅의 우리들의 歷史로부터 오히려 그 언어들이 무관심당하고 외면당한다면 그 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詩人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미 그는 시인이 아닙니다. 여과되지 않은 관념적인 말 몇 마디 늘어놓고 짜깁기를 하여 문장을 만든다고 늘어놓아도 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詩歷 58으로 터득한 문학적 덕목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값진 生命이 서린 言語들을 천착해 낼 수 있을지 내 가엾은 영혼에 거듭거듭 言語의 불꽃을 사르고 사루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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