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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정익진/코요테를 기다리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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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익 진
코요테를 기다리며* 외 1편
-털다
한쪽 손을 턴다. 몸속에 고인 상처가 죄다 빠져나가도록 손을 턴다.
손을 털며 입으로는 투투, 투투투…
따발총 소리를 낸다.
투투투는 침이 아니다.
총알도
푸념도
포도 씨, 수박씨를 뱉어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무제한이다.
심장의 시간이다.
계속 손 터는 동작을 하며,
어항을 바라본다. 어항 속의 금붕어가 나를 쳐다본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주둥이를 내밀고 투투투 물방울을 나에게 쏜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진다. 죽어가는 흉내를 낸다.
텅 빈 분무기를 집어 들고 말라가는 화분에 뿌린다.
어질러 놓은 종이박스의 파편들을 주워
더욱 잘게 또 찢는다. 벽지에 붙어
화석이 된 모기를 손톱으로 긁어낸다.
투투투, 머리카락을 턴다.
아직까지 내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어깨를 으쓱거린다.
미안하고 겸연쩍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이 아니다.
가려워서다.
어깨위로 꽃이 피려는지
칼날 같은 깃털이 자라나오려는지 가려워서이다.
그러니까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화석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투투투, 몸속에 고인 시간을 다 뱉어내었다.
뼈만 남았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를 변용.
입체파 2
말을 할 때마다 책을 읽는 일은
피아노를 치며 기타를 치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죠
기타를 칠 때마다 얼굴은 박수를 치고
기타가 다시 잎사귀를 뜯어먹었을 땐
내 손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찡그린 얼굴이 무릎을 구부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의자는 벌써 팔을 턱에 괴고
네 개의 다리를 흔들며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내 생각을 당신의 머리와 합치는 일은
내가 한말에 책임을 지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비올라가 만든
역기를 들어 올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항은 병아리를 뱉어내고
역기가 다시 나를 들어 올렸을 땐
내 손이 엉덩이를 지웠습니다
서랍을 당기기 전, 서랍은 벌써 내 어깨 위에서 혓바닥 내밀어
자신을 주장하며 동전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손잡이는 불법이고
테이블이 범인이며
다리 한쪽을 요트 위에 걸치고 있는 동생침대는
내 입으로 숨을 쉬는 당신의 심장입니다
정익진- 1997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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