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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이소애/새벽을 여는 버스 풍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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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새벽을 여는 버스 풍경 외 1편
새벽 4시, 시내버스 첫차에 20년째 청소 일을 하는 깡마른 할매가 탔다.
어둠이 주름살처럼 쪼글쪼글한 버스 발통이, 뛰는 장단에 의자가 삐거덕거리고,
앞좌석 등짝을 움켜쥔 꼬부라진 손마디가 대나무처럼 불거졌다. 틀니를 꼭 깨물며 갓 밝아 오는 하루를 흡입한다.
여울물 같은 사치스런 한숨 소리였을 터, 꿈과 희망이란 글자를 손가락으로 써보는 유리창의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쳐보는 새벽이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처럼 물소리가, 사람 냄새 틈에서 들려오면 저절로 벌떡 일어나는 할매, 눈을 감고도 뙤똥뙤똥 버스에서 내린다. 태양이 머뭇거리는 빌딩 숲.
할매가 앉았던 의자에 돋을볕이 들어와 졸고 있다.
고무장갑에 손가락 맞추며 마음을 꺾을 때 새벽은 온다.
목포에 가면
목포에 가면 무자비한 파도가 산다. 가끔
큰북을 울려 나를 불러냈었다.
하늘에 고하는 비통悲痛한 울림에
나는 육체적 고통을 흔들어서 사내의 혼을 더듬다가
사내의 그물에 생을 놓았었다.
째마리 물고기는 술집 백열등 불빛에 찬란했다.
술잔 넘치도록 ‘목포의 눈물’을 부르던 사내는
유달산 코숭이의 태양을 찢어서 작곡한
꼽재기만도 못한 소리를 만들곤 했다.
세상을 삐딱하게 살아서
농게처럼 옆으로 걸었다.
사랑을 고백하면 고개를 옆으로 흔드는 사내였다.
가방은 늘 술병이 있어서
술이 혀끝을 둘둘 말았을 때
사랑을 구슬처럼 굴렸다.
멀쩡하면 늠연했다. 왜죽왜죽 걸었다.
소리 주머니에 풋기운 사랑을 가득 마셨다가
헤어질 때 내뿜는 아슬아슬한
고빗사위 노래를 불렀었다.
삐뚤어진 태풍 때문에
시끌벅적 자유를 들먹이다가
바지 주머니에 술병을 넣고 숨어버린 사내는
목포 어촌에 살았었다.
이소애- 1994년 ≪한맥문학≫으로 등단. 시집 침묵으로 하는 말, 쪽빛 징검다리, 시간에 물들다. 수상집 보랏빛 연가. 전북여류문학상, 한국미래문학상, 허난설헌 문학상 본상, 중산시문학상 수상. 재)샘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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