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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오창렬/그때 비로소 돌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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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렬
그때 비로소 돌은 외 1편
봄을 데불고 와서 벌이 유리창 노크하는 날도
창문을 닫으면 집은 감옥이 되었다
벌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은
감옥으로 지은 집과 감옥 같은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옥 속에서는 세월이 흐를 뿐
반성도 구원도 없이 사람들은 서둘러 늙고
수인囚人의 죄만을 죄라 말할 수 없는 우리는
감옥 같은 집에 사는 이의 자유에 대해서도 단언할 수 없다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가서도 신을 만나지 못하고
영원을 모르는 세월 내내 바스러져 간다
돌멩이처럼, 뒹구는 돌멩이처럼
어느 날 문득, 봄빛이 오고
깨달음처럼 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감옥에 갇힌 이도 더 이상 수인 아니다
창문을 닫아도 더 이상 감옥 아니다
뒹구는 돌이 꿈꾸기 시작하는 그때 비로소
목련, 또는 시적인 것
꽃샘추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저 목련
꽃피어야 봄이 오려나, 내 혀가 무심코 중얼거릴 때
앞에 앉은 동료가 토하는 탄성
와, 시적이다!
그러나 멋쩍게도, 시적이라니,
난 그저 목련꽃 하얀 볼에 헤살 놓던 찬바람을 기억한 것뿐이다
적록빛 혈흔 뒤로 완연해지던 봄기운 떠올렸을 뿐이다
목련을 위한 봄이 아니라 봄을 위한 목련꽃의 희생,
타자의 희생을 바란 내 몰렴을 시적이라니
부끄러울 뿐이다
오래오래 피는 꽃이 꽃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는 말에 기대면
꽃샘추위 사이로 망울 내밀던 저 목련꽃은 꽃 중의 꽃이다
흐린 하늘로 둥둥 띄워 올리던 목련꽃의 노래야말로 시 중의 시다
그리하여 시적인 것이란
입으로 꽃을 노래하는 꽃놀이가 아니라
세상의 노래를 장만하는 것
옷 하나 더 껴입을 줄 알았을 뿐 겨울을 사는 동안
동구 밖 나서 학의 머리 한 적 없는 나는
봄이 온다고 먼저 소리쳐 보지도 못한 나는
저 여린 꽃잎의 순교를 담보로 봄을 맞고자 했다
동료여, 저 목련의 말없는 말에 귀 기울여
꽃샘추위 속에서도 꽃이 가까웠음을 읽어낸다면
겨울눈 속에서 부푸는 꽃망울을 읽어낸다면
당신과 내가 봄을 기다리는 동지 된다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시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목련꽃 운운하던 저 열없는 중얼거림보다도
어쩌면 저 목련꽃의 노래보다도
* 박팔양, 「진달래꽃」
오창렬- 1999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서로 따뜻하다 등. 현재 상산고등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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