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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조/고정국/눈 한 송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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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국
눈 한 송이 외 1편
온난화 구설수에도 주말이면 눈이 왔다
한반도 입춘절기 삼한사온의 불문율처럼
들녘엔 깃털이 하얀 철새 떼가 내리고
눈 속에선 나무조차 피를 나눈 동족들 같다.
종서縱書체로 휘날리는 망명정객의 일필휘지가
머나먼 국경선 안팎의 성곽들을 허물 때
아, 정녕 용서의 뿌리는 하늘 쪽에 있었던 것
사뿐히 예를 갖추던 손바닥의 눈 한 송이
사르르 마지막 눈물이 사람처럼 따뜻해.
아날로그 애인아
너를 앞세워야 시가 찾아온다 했다.
모가지가 떨어져도 앞서 걷던 그림자처럼
약간씩 절뚝거리며 나을 찾아 헤맸던
애인아 청산가자 순한 뿔이 돋은 그 산
귀도 코도 눈도 없이 입 하나만 동동 뜨는
땅 위의 모든 사랑의 발자국을 지우며
그때 그 아날로그, 아날로그 내 애인아
벗어둔 신발 한쪽 그 신발을 품에 안고
눈 오는 성판악 길을 혼자 걷던 그 날 밤
노루 발자국에 입술 쪽쪽 맞추던 그대
그 자국 밤새 걸어 양마단지에 이르렀을 때
나 혼자 세워둔 채로 너는 돌아갔었지
삐삐 소리 듣고 별이 쏟아지던 그날
횡단보도 정지선에 당도했든 그 시간에
맞은 편 하얗게 웃던 그 밤 열나흘이었지
고정국- 1988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 『서울은 가짜다』 외 5권의 시집과 산문집 1권,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동서문학작품상 등 수상. 민족문학작가회의제주도지회장 역임. 한국작가회의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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