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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이향아/동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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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동면 외 1편
하늘도 얼어붙은 빙판이라더니
가창오리들도 미끄러운지 날다가 떨어진다
금강 하류에는 독감에 걸린 그들이
수백 마리씩 실신해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나는 왜 아직도 새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까.
가창오리의 푸른빛 깃털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도 알고 있으련만
사흘짼가 나흘짼가 어느 누구한테서도 연락이 없고
이대로 침몰할 듯 해가 저문다
산 채로 나도 따라 묻히고 있는가
연락하고 싶은 이름 하나 떠오르지 않는
무지한 동면
겨울 지나 봄이 와도 감긴 눈은 쉽게 떠질 것 같지 않다
어느 집 초인종을 누를까
지치도록 돌아다니다가
아마 그냥 돌아올 것 같다
모스크바 어느 날
창문 아래로는 낯선 향내의 꽃밭이 빗금의 햇살을 받고
색칠한 나무 벤치 인적 드문 쪽에서
바람은 주름을 잡으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3층 지나 5층으로 나날이 가지 뻗는
자작나무 그늘로
알로샤가 지나가고 미하일, 안드레이, 지바고가 지나간다
소냐와 라리사, 나타샤가 지나간다
이상하다 왜 하루종일 저들이 판을 치는가?
식탁에는 오이무침, 미역국,
한국식으로 쿨럭이는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는데
저들이 왜 하루 종일 눈앞에서 얼씬거리는가
여기는 레닌스키쁘로스빽뜨 육십 몇 번지
모스크바지,
러시아 선교사는 지금 거리로 나가서 작업 중이고
나는 잠시 며칠 머무르는 나그네
여름 한 철 손님이지
나는 세상만사를 착각하고 있구나
이향아- 1966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어머니 큰산』등 19권의 시집,『종이배』등 15권의 수필집,『시의 이론과 실제』,『창작의 아름다움』등 문학이론서 7권.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기픈시문학회> 동인.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미당시맥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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