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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보명/천선자 시/해설 김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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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527회 작성일 14-08-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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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천선자

척, 하며 가는 길 외 9편

 

 

너에게로 가는 길은 막다른 도로이다.

사방이 벽으로 쌓인 도로이다.

꺽꺽 차오르는 목구멍에서 오리소리가 난다.

이십사 시간 산소 없이 살아간다.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한다.

그건, 그냥 사는 거다. 살아주는 거다.

삶의 깊이가 꼭 발목까지만 닫는 얇고 딱딱한,

그 자리에 서서 한 길 어둠만 퍼 올린다.

금이 간 마음의 동공이 도로가에 실핏줄을 남긴다.

메마른 두 눈에서 돌알이 커 가는데 눈물이 난다.

눈물은 안개로 남아 막다른 도로 위에 눕는다.

사는 척, 하는 거다. 이젠 척, 척, 하며 습관적으로 산다.

꽉 막힌 좁은 도로에서도 척, 하면 길이 열리더라.

―리토피아(2012년 여름호)

 

 

 

 

 

맹지

 

 

타인의 지번으로 팔과 다리를 묶인 자루형 토지이다. 메아리가 염장된 통조림통을 끌어안고 있는 포대자루이다. 불안만 발효시키고 있는 무명자루이다. 어둠으로 꾹꾹 밟아 놓은 길이 없는 자루 위에 부드러운 햇살 한 점 물고 온 바람이 실없이 끈 자락을 흔들고 있다. 뽀얀 뺨을 부비며 서성거리는 두려움이 자루 속을 채우면 잘잘하게 접힌 웃음들이 텅 빈 허공을 두드리는 닳아빠진 자루이다. 꿰맨 자리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자루의 곳곳을 타고 기억들이 흘러내린다. 돌돌 말린 슬픔이 별처럼 반짝이는 풀리지 않는 자루이다. 현재가치가 없는 자루이다. 미래가치가 없는 자루이다. 혹시, 한 귀퉁이 터진다면 빌딩 하나 세워질 자루이다.

―시현실(2010년 가을호)

 

 

 

 

탈박각시나방 도시의 원숭이

 

 

폐교로 만든 곤충박물관 긴 복도를 따라 놓인 유리 상자 안에 집을 짓고 있는 왕거미, 교미를 끝내고 수놈을 잡아먹는 암사마귀, 먹이를 먹는 장수하늘소, 딱정벌레, 광대노린재를 지나, 여러 나라의 나비와 나방이 전시된 이학년 오반 교실로 들어간다. 지중해 바닷빛의 날개를 가진 열대우림에 사는 모르포 나비 뒤의 나방, 뒷목덜미에 그려진 원숭이의 얼굴, 뚫어져라 쳐다보는 우수에 젖은 눈빛, 축 처진 어깨, 낯익은 얼굴은 거울 속 나의 얼굴, 밤마다 깡술로 비굴함을 삼키고,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걷는 도시 뒤에 몸을 숨긴 탈을 쓴 원숭이, 달콤한 맛에 맛들이고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원숭이, 눈물이 없는 원숭이, 생의 부패한 조각들을 파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뱃가죽을 허리춤에 차고, 우리 속에서 내장도 쓸개도 빼주고 사는 원숭이, 아름다운 도시의 원숭이.

―예술가(2012년 겨울호)

 

 

 

 

둥글려보면

 

 

미움도 둥글려보면 모나지 않는다. 저기 좀 봐. 미움을 먹고 잘 자란 내 키가 담장을 넘고 있잖아. 둥근 세상 밖. 둥근 비행접시를 타고, 둥근 꿈속에서 본 둥근 별을 찾아서 둥글게 떠나. 둥근 달을 좀 봐, 둥근 토끼가 둥근 쪽문을 열어 둥근 머리를 내밀고 둥글게 반기네. 둥근 웃음이야. 수많은 둥근 별을 지나 둥근 우주정거장에 둥글게 착륙해. 둥근 세발자전거를 타던 둥근 귀를 가진 아이들이 둥근 무지개나무를 심어. 벌써 둥근 열매가 익어. 어른들의 둥근 마음을 찾아주려고 둥근 어린왕자를 데리고 둥근 지구로 돌아와. 둥근 놀이동산에서 둥근 회전목마를 타고, 둥근 컵을 타고 둥근 축구를 하다 둥근 농구를 해. 종일 둥글게 노는 아이들의 둥근 눈동자가 둥근 나무에 열리는 둥근 지구의 한 가운데, 둥근 자동차들이 둥근 얼굴의 사람들을 태우고, 둥근 광장을 돌아오잖아. 둥근 빌딩의 둥근 창문을 열고, 둥근 웃음을 지으며 둥글게 몸을 말아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 속의 나.

―시와경계(2011년 겨울호)

 

 

 

 

 

 

태양의 신 ‘라’

 

 

나는 꿈을 꾸는 목각인형이다.

사막고양이의 눈 속에서 모래바람이 인다.

사구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굽은 등이 있다.

낙타가 없는 사막, 모래장화를 신고 간다.

건조한 두 눈을 비비며 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띠를 형성한 수리 떼가 날아오른다.

사막의 하얀 밤이 맹수의 발톱으로 자라난다.

푸석이는 꿈 덩어리는 모래무지의 꿈일 뿐이다.

질긴 꿈 덩어리는 사막여우의 한 끼 식사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매일 날개가 돋아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매일 몇 뼘씩 자라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매일 열꽃이 피어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몇 개의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가느다란 수맥을 따라서 꿈눈이 움튼다.

꿈눈 속에는 협곡의 거친 숨소리가 남아있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양팔에는 꿈잎이 무성하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다리에는 꿈숲이 울창하다.

잠들지 못하는 머릿속에는 뿌리가 깊다.

무릎 위의 동그란 무늬 나이테가 선명하다.

 

촉촉한 구름의 눈빛이 타오른다.

오감을 자극하는 바람의 혀끝이 부드럽다.

빛을 잉태한 그림자의 젖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발등을 적시는 빗물 딱딱한 발등에서 피가 흐른다.

꽃대가 솟아오르는 자리,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내 심장이 지구에 걸린 태양을 밀고 간다.

―리토피아(2011년 여름호)

 

 

 

 

집착

 

 

너는 사랑과 연민,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거야. 기억의 조각들 끊임없이 뇌리 속을 헤집고 다니는 문턱, 밤새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뜰, 눈물의 뜰에 갇힌 문턱, 며칠 밤 자면 온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울음 하는 문턱, 너의 첫사랑이 떠나고 그 후 몇몇 여자들이 떠나간 문턱, 까치발을 하고 눈물콧물 흘리며 너의 여자들을 기다리는 문턱, 닳아버린 문턱엔 어린 네가 살아가고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지. 문턱은 세월의 수레바퀴를 멈추었고, 텅 빈 뜰에 켜켜이 쌓인 적막, 무성한 칡넝쿨이 기둥을 감고, 지붕을 감고, 내 온몸을 감아서,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는 그 슬픈 문턱으로 데려가지.

―애지(2012년 겨울호)

 

 

 

 

콘솔

 

 

유럽황실가구들의발은모두사자의발을하고있다긴갈기와황금빛털을펄럭이는사자들콘솔에달린네개의발이달리자수많은발들이달린다가구점에가구들은없고온통사자뿐이다진열장을박차고달리는사자들숲을달린다초원을달린다케냐의광야를달린다나도지프차를타고비포장도로를달린다평화롭던초원에울리는총소리황혼속으로사자의왕이쓰러진다황폐해진광야엔총소리만달린다마사이마라국립공원앞마사이족들유창한영어로관광객들을따라다니며외친다.

―리토피아(2010년 봄호)

 

 

 

 

잠자리

 

 

서울광장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은 잠자리다.

휴일 저녁이면 가면을 쓴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를 연다.

남루한 옷은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두고 춤을 춘다.

의미 없는 이야기, 웃음 주고받으며 춤을 춘다.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손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최음제 가득한 병마개를 열고 춤을 춘다.

태울수록 더 뜨거워지는 열정을 토해내며 춤을 춘다.

눈동자의 물결이 출렁이면 내장의 어두운 벽이 환해진다.

잠자리눈이 촘촘하게 박힌 가슴에 가시 없는 등꽃이 핀다.

춤을 추던 사람들이 밀랍 인형이 되어 제자리로 간다.

공허한 광장 저 편, 북적대는 거리 익명의 사람들이 스쳐간다.

강렬한 색채의 도시적 이미지 정형화된 무명의 사람들,

공간의 한계 속에 회색빛 나무 되어 빌딩숲으로 사라지고,

삼백 육십도 눈동자를 굴리며 그들 속 너의 발자국을 쫓는다.

―예술가(2013년 여름호)

 

 

 

 

눈사람

 

 

너의 꿈속에 나를 가두어버렸다.

내 마음은 밤나무가지 위에 걸어두고,

시간의 귀퉁이를 잡아당겨서 단번에 키를 키운다.

자유롭게 흩날리는데 밤가시로 만든 모자를 씌우고,

달랑, 조그맣고 동그란 밤톨 하나로 입을 만든다.

단내가 나는 입속에서 말을 할 때마다 밤꽃이 피고,

흐드러진 흰 밤꽃은 눈가루가 되어 무겁게 가라앉는다.

넌 또 다시 눈가루를 말아 흐늘대는 시간을 단단히 묶고,

난 조금씩 녹아내리는 발끝을 보며 또 밤꽃을 피운다.

너의 손길이 닿는 순간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층(2013년 봄호)

 

 

 

 

 

떨어지는 눈송이

 

 

너무 긴 시간이군.

아래로 가라앉아야 되는 무거움이다.

 

너무 짧은 시간이군.

내려앉자마자 사라져야 되는 가벼움이다.

 

울고 싶은데, 눈물에 녹아버릴까 울지 못하고,

밤새 내린 소복이라는 옷 한 벌,

헐벗은 몸에 걸치니 꼭 맞아 떨어진다.

―시와사람(2013년 겨울호)

 

천선자∙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막비시동인.

 

 

 

 

 

 

작품 읽기

김보숙|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하기까지-천선자 시 읽기

 

 

 

너는 사랑과 연민,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거야. 기억의 조각들 끊임없이 뇌리 속을 헤집고 다니는 문턱, 밤새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뜰, 눈물의 뜰에 갇힌

문턱, 며칠 밤 자면 온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울음 하는 문턱, 너의 첫사랑이 떠나고 그 후 몇몇 여자들이 떠나간 문턱, 까치발을 하고 눈물콧물 흘리며 너의 여자들을 기다리는 문턱, 닳아버린 문턱엔 어린 네가 살아가고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지. 문턱은 세월의 수레바퀴를 멈추었고, 텅 빈 뜰에 켜켜이 쌓인 적막, 무성한 칡넝쿨이 기둥을 감고, 지붕을 감고, 내 온몸을 감아서,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는 그 슬픈 문턱으로 데려가지.

― 「집착」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리라 마음먹어도 느닷없는 순간에 겪는 이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처절하게 이별하던 시절, 나는 당신을 미워하다, 미워하다, 지치면 나를 힐난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치었다. ‘사랑과 연민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오고 가느라 문턱이 닳고 눈물의 뜰에 그 문턱이 갇힐 동안 나는 타인의 운명에 관하여 집착하느라 나의 운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슬픈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고 했다.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또한 험난한 운명일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한 힘이라고 하였다. 나의 사랑이 아무리 아플지라도, 나의 운명이 아무리 고통스러울 지라도,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하겠노라, 그리고 긍정하고 또 긍정하겠노라!’ 라고 외친 청년 니체처럼 나 역시 나의 운명을 사랑하였다면 온갖 시련 속에서도 그토록 나를 힐난하는데 많은 시간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의 결핍은 자신이 채워야 한다. 나를 향한 나의 외로움을 타인에게서 채우려고 문턱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나의 문턱을 넘어가는 동안 나의 문턱은 닳고 닳았다. 당신들의 활발한 발자국이 남겨진 문턱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은 자신의 외로운 심연을 바라보는 일. 도망치고 싶은 이 순간에 시인은 외로움의 순간을 견디어 내고, 문턱을 지나간 당신들의 기억을 견디어 내면

‘텅 빈 뜰에 켜켜이 쌓인 적막’처럼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나에게서 달아나지 말라고 말한다.

타인의 운명에 관한 ‘집착’을 버리고 나의 운명에 관하여 긍정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건강한 나의 운명애를 만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겸허하게 타인을 이해하고 네가 겪고 있을 필연적인 운명을 헤아려야 한다. 밤새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뜰로 나가서 ‘사랑과 연민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네’가 이곳에 잘 도착하기를 기다려 줘야 하는 것이다.

 

미움도 둥글려보면 모나지 않는다. 저기 좀 봐. 미움을 먹고 잘 자란 내 키가 담장을 넘고 있잖아. 둥근 세상 밖. 둥근 비행접시를 타고, 둥근 꿈속에서 본 둥근 별을 찾아서 둥글게 떠나. 둥근 달을 좀 봐, 둥근 토끼가 둥근 쪽문을 열어 둥근 머리를 내밀고 둥글게 반기네. 둥근 웃음이야. 수많은 둥근 별을 지나 둥근 우주정거장에 둥글게 착륙해. 둥근 세발자전거를 타던 둥근 귀를 가진 아이들이 둥근 무지개나무를 심어. 벌써 둥근 열매가 익어. 어른들의 둥근 마음을 찾아주려고 둥근 어린왕자를 데리고 둥근 지구로 돌아와. 둥근 놀이동산에서 둥근 회전목마를 타고, 둥근 컵을 타고 둥근 축구를 하다 둥근 농구를 해. 종일 둥글게 노는 아이들의 둥근 눈동자가 둥근 나무에 열리는 둥근 지구의 한 가운데, 둥근 자동차들이 둥근 얼굴의 사람들을 태우고, 둥근 광장을 돌아오잖아. 둥근 빌딩의 둥근 창문을 열고, 둥근 웃음을 지으며 둥글게 몸을 말아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 속의 나

― 「둥글려보면」

 

‘둥근 무지개 나무’와 ‘둥근 토끼’와 ‘둥근 광장’이 어울려진 알록달록한 세상은 ‘미움을 먹고 잘 자란 내’가 ‘미움’을 잘 반죽하고 둥글려서 만들어낸 둥근 세상이다. 둥근 세상에서는 ‘둥근 귀’를 가진 내가 너의 말을 들어주고 ‘둥근 마음’을 가진 네가 ‘둥근 웃음’으로 내게 화답한다. 그런데 모가 나있는 미움을 반죽하여 둥글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움이 둥글어질 때까지 둥글리면서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 그 길에서 외부의 미움

도 만날 수 있고, 그 외부의 미움은 더 이상은 나의 미움을 둥글리지 못하게 길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주저하지 않고 미움을 계속하여 둥글려 나간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미움까지 흡수하여 더 큰 둥긂으로 굴려 나아간다. 부드럽고 너그러운 둥긂은 시인의 화실畫室을 넘어 우리의 화실花實이 된다. 미움을 주고받는 대신 둥근 웃음을 주고받는 세상을 그려낸 천선자 시인의 따스한 마음은 ‘벌써 둥근 열매’를 익게 한다, 시인은 다른 작품에서도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변형시켜 나간다.

 

나는 꿈을 꾸는 목각인형이다.

사막고양이의 눈 속에서 모래바람이 인다.

사구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굽은 등이 있다.

낙타가 없는 사막, 모래장화를 신고 간다.

건조한 두 눈을 비비며 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띠를 형성한 수리 떼가 날아오른다.

사막의 하얀 밤이 맹수의 발톱으로 자라난다.

푸석이는 꿈 덩어리는 모래무지의 꿈일 뿐이다.

질긴 꿈 덩어리는 사막여우의 한 끼 식사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매일 날개가 돋아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매일 몇 뼘씩 자라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매일 열꽃이 피어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몇 개의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생각나무가 있다.

가느다란 수맥을 따라서 꿈눈이 움튼다.

꿈눈 속에는 협곡의 거친 숨소리가 남아있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양팔에는 꿈잎이 무성하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다리에는 꿈숲이 울창하다.

잠들지 못하는 머릿속에는 뿌리가 깊다.

무릎 위의 동그란 무늬 나이테가 선명하다.

 

촉촉한 구름의 눈빛이 타오른다.

오감을 자극하는 바람의 혀끝이 부드럽다.

빛을 잉태한 그림자의 젖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발등을 적시는 빗물 딱딱한 발등에서 피가 흐른다.

꽃대가 솟아오르는 자리,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내 심장이 지구에 걸린 태양을 밀고 간다.

― 「태양의 신 ‘라’」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매일 날개가 돋아나는 생각나무’를 그리면, 시인인 그녀는 생각나무에 ‘꿈눈’을 움트게 한다. 모래사막은 곧 꿈잎이 무성하고 꿈숲이 울창한 신선한 공간으로 변화된다. 고정된 시선을 해방시키고 세계와 사물이 품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을 골라서 물들여 가는 것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막다른 도로이다.

사방이 벽으로 쌓인 도로이다.

꺽꺽 차오르는 목구멍에서 오리소리가 난다.

이십사 시간 산소 없이 살아간다.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한다.

그건, 그냥 사는 거다. 살아주는 거다.

삶의 깊이가 꼭 발목까지만 닫는 얇고 딱딱한,

그 자리에 서서 한 길 어둠만 퍼 올린다.

금이 간 마음의 동공이 도로가에 실핏줄을 남긴다.

메마른 두 눈에서 돌알이 커 가는데 눈물이 난다.

눈물은 안개로 남아 막다른 도로 위에 눕는다.

사는 척, 하는 거다. 이젠 척, 척, 하며 습관적으로 산다.

꽉 막힌 좁은 도로에서도 척, 하면 길이 열리더라.

― 「척, 하며 가는 길」

 

다 걸어와 보니 이 길이 아니다. 길을 잘 못 들어섰다. 걸을 때는 왜 몰랐을까, 중간 쯤이라도 이 길이 아니었음을 알았더라면 다시 돌아갔을 텐데, 왜 다 걸어와서 이 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잘못 들어선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같이 걷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길이 옳은 것 같고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앞서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나면 이 길이 옳은 것 같기에 계속 잘 못 들어선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세네카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좋아 보이지만, 진정 칭찬하고 원할 만한 것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길에 난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지에만 매달립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사람의 발자국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간 길이라면 자신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여서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종종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비로소 눈이 밝아져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기에 외로움을 반긴다. 천선자 시인 역시 완벽한 고독 속에 놓인 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음은 혼자라는 큰 품 때문일 것이다.

 

너의 꿈속에 나를 가두어버렸다.

내 마음은 밤나무가지위에 걸어두고,

시간의 귀퉁이를 잡아당겨서 단번에 키를 키운다.

자유롭게 흩날리는데 밤가시로 만든 모자를 씌우고,

달랑, 조그맣고 동그란 밤톨 하나로 입을 만든다.

단내가 나는 입 속에서 말을 할 때마다 밤꽃이 피고,

흐드러진 흰 밤꽃은 눈가루가 되어 무겁게 가라앉는다.

넌 또 다시 눈가루를 말아 흐늘대는 시간을 단단히 묶고,

난 조금씩 녹아내리는 발끝을 보며 또 밤꽃을 피운다.

너의 손길이 닿는 순간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눈사람」

 

눈사람은 사람의 곁에 있으면 온도의 차이 때문에 금세 녹게 된다.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두고 와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네가 자신의 온도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천천히 섞이었다면, 아주 천천히 섞이었다면, 너는 그렇게 금세 녹지 않았을 것이다. 각별하여 생긴 일이다. 내버려 두거나 남겨두어서 혼자가 되는 것은 완전한 혼자가 아니다. 혼자서 혼자임을 견뎌야 한다. 자기 스스로가 녹아내리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처절하게 외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 외로움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고 시인은 말한다. ‘난 조금씩 녹아내리는 발끝을 보며 또 밤꽃을 피운다.’ 천선자 시인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사람들과 휩쓸려 사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고독이 바탕이 되어 내게 고요한 단어들을 선물로 전해준 그림 속 여인처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본래의 삶을 자신의 바탕에 굳건하게 세운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나는 나로부터 도피하여 많은 사람들을 사방으로 쫓아다닌다. ‘자기’의 운명은 돌보지 않은 채 ‘타인’의 운명에만 많은 집착과 애정을 쏟아 붓는다.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발적으로 혼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원망하지 않고 침

묵하는 ‘눈사람’처럼 말이다. 시인은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하기까지 사랑과 연민 중간쯤에서 길을 잃어 보았고, 내가 받은 미움과 네가 받은 미움을 헤아려 본 듯하다. 그래서 안다. 외로움이나 그리움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임을.

 

항아리에 그려진 여인이 눈 내리는 밤 조촐한 달빛 아래에서도 빛나는 것은 외로움과 그리움을 부둥켜안고 고독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기 때문이리라. 당신은 지금 외로운 중인가? 그렇다면 외로운 당신에게 찾아온 모처럼의 고독한 시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부디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기를!

 

김보숙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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