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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구효서/별립이고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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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749회 작성일 14-08-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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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구효서/별립이고 싶어도

 

 

책이 또 나왔다. 작가 생활 26년 만에 서른 네 권 째 책을 낸 것이다. 1년 평균 1.3권을 출간했다. 책을 낸다는 일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자식들도 책을 낸 사실을 모른다. 뒤늦게 밖에서 친구들에게 듣고 와서 확인한답시고 묻는 말이라니!

“아빠, 또 책 내셨다면서요?”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그래. 책이 또 나왔다.”

‘또’라는 말에 강세를 둔다. 이 또는 ‘또 지각이니?’라거나 ‘또 술 마셨니?’ 할 때의 또여서 무안하다. 쓸데없이 또 책을 냈다는 민망함. 쓸 데 있으려면 아무려나 돈이 돼야 할 텐데, 단언컨대, 내 책이 돈이 된 적은 없다.

관심을 가져주는 곳은 출판사뿐이다. 팔릴 거라는 예상은 출판 전부터 없었다는 걸 나는 다 안다. 다만 손해나 보지 않았으면 하는 관심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출판사의 기업이미지엔 마이너스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쪽의 관심이다. 차마 눈물겨운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출판사 쪽은 그럭저럭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나는 당분간 그들의 계획에 따라 일정을 짤 수밖에 없었다. 강연을 하고 독자와 대담을 하고 사인회를 갖는 것 등이었다.

사인을 할 때 늘 그림을 그린다. 받는 사람 이름과 날짜와 내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다 쑥부쟁이, 딱정벌레, 고추잠자리를 번갈아 빠르게 그린다. 여성에게는 쑥부쟁이를, 남성에게는 고추잠자리를 그린다. 아주 가끔씩 딱정벌레를 그린다. 딱정벌레는 어떤 사람에게 그려주는 거냐고 물으면 입 꾹 다물고 대답대신 그냥 웃어준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그동안 안 쓰던 두 글자를 덧보탰다. 내 이름 앞에다 ‘별립’이라고 붙인 것이다. 호는 아니고, 그냥 그렇게 쓰고 싶어서 썼다.

“별립이 무슨 뜻이에요?”

“이쁘다, 별립. 호인가 봐요.”

독자들이 물었고, 나는 딱정벌레를 그렸을 때처럼 묵묵부답 그냥 웃어주었다. 어째서 그걸 내 이름 앞에 불쑥 붙였는지, 알 수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별립은 산 이름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뒷산이다. 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한다. ‘장엄한 별립산의 정기를 받아/광활한 하점벌의 품에 안기어/굳건히 세워진 진리의 전당/그 이름도 아름답다 빛나는 강후.’ 6년을 내리 불렀으니 토씨하나 잊히지 않는 게 당연한 걸까. 하여튼 어느 학교 교가든 가사는 많이 과장되기 일쑤다. 하점벌도 그다지 광활하지 않고 별립산도 장엄하지 않다. 별립산은 해발 399미터의 아담한 산일 뿐이다. 어떤 산맥과도 연이어 있지 않고 한 점 섬처럼 혼자 뚝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別立山이다. 한자로 뜻을 풀면 참 개성도 없는 이름이다. 한자도 뜻도 무시하고 그냥 우리 말 소리로 말하고 들어야 간신히 예뻐지려고 하는 이름이다. 별립.

고백하건대 그동안 고향을 멀리 해왔다. 자주 안 갔고, 고향이 강화도입니다, 라고 크게 말해 본 적도 없다. 강화가 고향이 아닌 건 아니어서, 당신의 고향이 강화도입니까? 라고 누군가 물으면 예, 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고향은 내 존재의 본향이면서, 그리하여 또 어쩔 수 없는 내 가족의 가난과 무지와 한숨과 서글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추억과 회상의 본적이면서, 벗어나고픈 회한과 비루함의 원소인 것이다.

별립산도 탐탁지 않았다. 물론 어린 시절 별립산이 장엄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이를 먹고 훨씬 더 큰 산들을 두루 보고 나서야 별립산이 안타깝게도 작은 산이라는 걸 알았다. 왜 안타까웠을까. 산이란 작은 산도 있고 큰 산도 있기 마련인데…….

내심 언제까지고 별립산이 큰 산이길 바랐다는 것일까.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나는 세상의 큰 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리 될 수 없었던 까닭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의 산과 그것의 정기가 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만 애먼 별립산을 두고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안 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한 술 더 떠 산을 탓했던 건지도 모른다.

“별립이 무슨 뜻인지 말해 줘요.”

딱정벌레 그림을 받은 독자가 마침내 따지듯 물었다.

“그냥…… 별립이고픈 거에요.”

“별립이 뭔데요?”

“내가 되고픈 거요.”

“작가님이니까 지금 작가님이 동어반복하고 계시다는 것쯤은 아시겠지요? 죄송합니다, 자꾸 짓궂게 물어서.”

“제가 죄송하지요. 잘 대답할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해서 그만 울컥해져 버리고 말았다. 어쩌자고 나는 안 쓰던 산 이름을 내 이름 앞에 써버렸던 걸까.

하점면 부근리에 규모가 큰 추모공원이 생겼다. 명절이면 추모공원 앞 왕복2차선이 막혔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강화 서문삼거리에서 국화리 쪽으로 우회했다. 내가면에서 망월리를 거쳐 창후리로 들어섰다. 망월리望月里는 말 그대로 달을 보는 마을이다. 바다를 막아 생긴 간척지여서 너르다. 그 너른 평원 저쪽 끝에, 별립산이 다소곳이 정좌하고 있다. 어느 추석 성묫길, 그 아담한 별립산의 자태에 뒤늦게 반해버렸다. 그 산은 나의 태를 묻은 곳이며, 나의 숱한 어린 발자국이 찍힌 곳이었다. 내 울음과 배고픈 얼굴과 권태로운 한숨을 산은 아직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안다. 그 산 어디쯤에 흐드러진 산딸기가 있는지, 개암이 있는지, 산토끼의 집이 있는지. 그리고 찔레와 싱아는 어느 계곡 어느 그늘에 왕성한지를. 눈이 어두워 내가 찾지 못했을망정, 작은 산이지만 없는 것 없던 세계였음을. 작가라는 주제에 그걸 미리 모르다니.

‘제대로 저 산만큼이라도 될 성 불렀더냐, 네 놈이?’

그 산이 안타깝기는커녕 나는 그저 부끄러워 망월리 벌판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나를 향해 혼자 중얼거렸다.

‘별립이 되고 싶어한들, 별립이 네 놈을 승낙할 성 싶더냐?’

이런 얘기를 차마 독자에게 늘어놓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내 이름 석 자 앞에 감히, 그리고 간절히, 별립, 별립, 별립, 을 적어나갔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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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별립이고 싶어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다만 석고대죄의 마음으로.

 

구효서∙강화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마디」 당선으로 등단. 중단편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별명의 달인 등,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나가사키 파파, 동주 등 출간.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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