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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홍적|먼 시간 저편의 남루 한 자락-김현숙의 장편소설 먼 산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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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6,161회 작성일 14-08-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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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홍적|먼 시간 저편의 남루 한 자락-김현숙의 장편소설 먼 산이 운다

 

 

“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역구내를 빠져 나올 때 내가 본 한 미친 여자가 그 ‘어두운 기억들’을 ‘홱 잡아끌어 당겨서 내 앞에 던져주었다’. 그 미친 여자는 나일론의 치마저고리를 맵시 있게 입고 있었고 팔에는 시절에 맞추어 고른 듯한 핸드백도 걸치고 있었다”.

김현숙의 장편소설 먼 산이 운다의 두세 챕터를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불현듯 김승옥의 「무진기행」 중에 나오는 이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렇다. 김현숙의 이 소설은 내가, 그리고 우리 세대가 오래도록 까마득히 잊고 있던 먼 시간 저편의 남루 한 자락을 ‘홱 잡아끌어 당겨서 내 앞에 던져주었다’.

헐벗고 굶주렸던 6·25동란 후의 5~60년대와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를 연 1970년대의 우리네 그늘진 삶들…… 가족 간 혹은 이웃 간의 갈등과 애증…… 그러나 그 시대에도 김승옥의 소설에서처럼 모두 ‘어두운 기억’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궁핍한 삶 속의 남루 속에서도 그 시대에는 이웃 간에 오가는 정이 있었고 낭만이 있었고, 그리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김현숙의 장편소설 먼 산이 운다는 바로 그 시대의 이런 낭만과 사랑과 가족 간의 애증어린 갈등을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혜인’은 유년시절 ‘삼촌’에게 소박맞은 숙모(작은어머니)가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시골 ‘우메마을’에 한동안 내려가서 자랐다. 그리고 그 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방학 때만 되면 그곳으로 내려가 그 비운의 숙모와 함께 생활하곤 했다. 그러니까 혜인에게 있어서의 우메마을은 자신이 태어난 서울 못지않은 또 다른 고향이며, 성장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정서의 본향本鄕이고, 숙모는 그 본향의 불행한 어머니였던 셈이다.

이 소설의 중요한 인물은 화자話者 역할을 하는 혜인을 중심으로 ‘우메숙모’와 그 숙모의 친정조카인 ‘호형’ 그리고 본처를 버리고 서울에서 살림을 차린 삼촌과 그 삼촌이 사랑하는(미국의 영화배우 스잔 헤이워드를 닮은) 세련된 여성‘스잔숙모’다. 이 외에도 우메숙모의 친정동생인 ‘복이아재’와 우메마을의 ‘청도아재’ 그리고 서울의 삼촌이 아끼는 사촌 여동생 ‘옥자고모’가 있다.

 

1990년경의(이 연도는 소설의 내용으로 짐작한 필자의 추측이다. 소설에는 정확한 연도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어느 여름날, 혜인은 학교에 휴직서를 내고 시골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우메숙모’의 칠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기차가 우메마을이 있는 경북 의성의 탑리역에 도착할 무렵 혜인은 유년기로 되돌아가 그 마을의 방아 찧는 소리를 듣는다. 콩드락 콩캉, 콩드락 콩캉…….

 

산골 마을 우메. 그곳엔 평생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지극히 불행한 한 여인의 고된 삶이 있고 그녀의 애환을 선연히 가슴에 새긴 한 소녀가 있다는, 그 지울 수 없는 시간의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야만 함을 절감했다.

 

저자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다시피 김현숙의 실제 숙모인 우메숙모는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우리나라 전근대적 세대의 마지막 여인이다. 혜인의 삼촌은 어린 시절 썰매를 지치다가 잘못하여 뒤따르던 복이아재의 한쪽 눈을 쇠고챙이로 찔러 애꾸로 만들어버린다. 우메숙모는 바로 그 대가로 집안 어른들 간의 합의하에 삼촌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그러나 우메숙모가 마음에 들지 않던 삼촌은 서울로 줄행랑을 쳐 세련된 여성 스잔숙모를 만나 살림을 차린다. 그것도 상대에게는 우메숙모의 존재마저 속인 채…… 우메숙모는 이 사실도 모른 채 일 년이면 한두 번씩 내려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는 휭하니 다시 서울로 사라져버리는 삼촌을 지아비로 여겨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 한데 혜인은 서울에서는 솜씨 좋은 스잔숙모가 재봉틀에 박아 지어주는 옷을 얻어 입는 등 스잔숙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시골로 내려가면 또 우메숙모의 지극정성인 사랑을 받는다. 어린 시절 혜인의 갈등이 여기에 있다.

 

한 숙부에 두 숙모. 탑리의 조부모와 두 숙모에게만 감추어진 엄청난 무게의 혼돈이었다. 암암리에 가족들로부터 그 비밀에 대한 철저한 입단속의 함구령을 받아오긴 했으나 가족 중 유일하게 홀로 떨어져 탑리에 내려와 있는 혜인으로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 숙부에 두 숙모를 가진 괴로움. 어린 나이에도 그건 더없이 견디기 힘든 혼란과 갈등을 불러왔다. 특히나 알게 모르게 두 숙모로부터 받는 은전과 혜택을 생각하면 혜인의 갈등은 더욱 그 골이 깊어갈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밀은 영원할 수 없는 것, 마침내 우메숙모나 스잔숙모 그리고 시골의 조부모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는 비밀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시의 시대적 인식으로서는 그것 역시 주위에 흔한, 파란 많은 인생살이의 한 방편으로(지금의 인식으로서는 어림없을) 넘어가고 만다. 그렇게 우메숙모나 스잔숙모의 숙부와의 삶은 계속된다. 특히 우메숙모는 마을의 홀아비 청도아재의 구애도 아랑곳없이 꿋꿋하게 시부모를 봉양하는 한편, 딸이나 마찬가지인 혜인에게 정성을 쏟는다. 그리고 그 숙부는 마침내 병을 얻어 두 숙모를 뒤로 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숙부가 세상을 뜨고 난 뒤에도 두 숙모 사이는 물론 우메숙모와 친족들 간에는 갈등이 계속된다. 숙부 살아생전에 그렇게 아꼈던 숙부의 사촌 여동생 옥자고모는 숙부의 죽음이 우메숙모 탓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우메숙모에게 사촌 시누이 옥자고모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사촌 시누이 옥자고모의 존재는 그녀에 대한 숙부의 유별난 사랑으로 인해 가뜩이나 견원지간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숙모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집안행사 때 부딪치곤 하는 두 여인의 만남은 늘 심리적 대립과 반목으로 끝이 났다”.

 

“성, 성은 왜 이렇게 살아. 지금이라도 당장 팔자 고쳐 잘 살아봐야 할 것 아냐. 아, 답답해, 증말!”

“남의 첩살이 주제에 감히 내보고 뭐라카노. 지나 또 한 번 시집가 팔자 고치고 잘 살아보라 카지. 그 오래비란 화상, 남의 남자 빼앗은 지 동생 팔자는 불쌍코, 남편 빼앗긴 이녁 팔자는 괘안트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지 이게 뭐꼬.”

 

“숙모를 가장 화나게 하는 말은 개가하여 팔자를 고치라는 말이었다. 평소 말없고 유순하던 숙모도 그 말을 듣는 순간만은 돌연 독기 가득한 마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혜인에게는 그저 “놀랍기만 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메숙모의 말처럼 옥자고모 자신 역시 남의 남편을 빼앗아 안방을 차지한 처지이고 보면, 어린 혜인의 눈으로 보면 어른들이 하는 짓거리들이란 늘 이렇게 한편으로는 한심하고 우습기도 했을 것이다.

 

가족들 간의 이런 갈등 가운데 혜인의 가슴 속에는 우메숙모의 친정조카인 호형을 향한 사랑이 싹튼다. 대구의 명문 K고를 졸업한 호형은 혜인이 고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서울의 명문 S대에 입학하여 고학을 하며 행촌동 혜인의 집을 드나든다.

 

연못가에 이는 물결처럼 혜인의 가슴에 화르륵 그리움의 물살이 번져왔다. 호형이 다가오고 있었다. 좀 전에 대구에서 와 닿은 기차 편으로 이제 막 우메에 도착한 것이다. 들녘 너머 정거장에 기적이 울적마다 오늘은 행여 그가 오려나 맘 졸이며 기다려온 만남이나 그래도 와락 달려 나가 맞을 수는 없다. 외려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며 혜인은 연못가 아주까리 속으로 깜박 숨어버린다.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아주까리 무성한 잎새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맴을 돌았다.

 

열여섯 살 혜인이 우메마을에서 호형을 향한 사랑을 키우는 장면의 서술이다. 그 호형이 이제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혜인의 사랑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다. 혜인이 고등학교 삼학년 때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호형과 데이트를 하던 날, 둘은 행촌동 언덕의 집 앞에서 혜인의 아버지에게 그만 들켜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날 밤 혜인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아버지의 분노와 호통은 일시에 집을 뒤흔들 만큼 엄청났고 그 후 아버지는 호형의 집안 출입을 단호히 금지했다.”

 

“왜 하필이면 그 놈이고? 절대 안 된다. 다시 한 번 그놈을 만났다간 니 다리몽둥이 부러질 줄 알그라. 에잇, 한심한 것!”

 

혜인의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두 집안 간에 껄끄러운 과거로 얼룩진 사돈의 집안과 다시 혼인을 허락하겠는가? 어린 혜인으로서는 그러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후 혜인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둘은 다시 연락을 주고받고 마침내 벚꽃이 만개한 4월 어느 봄날 둘은 마지막 데이트를 갖고 이별한다. 그러나 혜인의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무더운 여름 밤, 긴 시간 울리지 않는 거실의 전화통을 바라보며 혜인은 가슴이 시려왔다. (……) 거실 창을 두드리며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타고 그를 향한 그리움이 빗물처럼 가슴을 적셔왔다. 혜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당으로 나가 녹색 철제대문의 빨간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동네 아이들의 장난일까. 우편함 속에는 노트를 찢어 딱지처럼 접은 작은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무심코 쪽지를 펼쳐본 혜인은 순간 와락 대문을 열고 골목길로 뛰쳐나갔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운 그 집 앞. 여름비 내리는 밤, 나도 모르게 발길 멈추어 너의 집 앞을 서성이다 돌아간다.” 아, 정말. 등신 같은 것들! 벚꽃이 만개한 그날 내가 만약 혜인이었다면, 우짜든지 벚꽃 만개한 꽃그늘로 호형을 유인하여 들어가 그의 무릎에 엎어지며 한 손으로 슬쩍 스커트 자락을 당겨 올리고…… 그리고 그날 내가 만약 호형이었다면, 우짜든지 혜인을 술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막걸리 한 사발을 먹이고 난 후 들쳐 업고…… 오해하지 마시길, 소설 속의 둘 사이가 하도 답답해서 필자가 한 번 해본 소리다.

 

아무튼,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혜인은 그리운 우메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칠순잔치의 전날 밤 혜인은 벽에 걸린 숙부의 사진을 보며 숙모에게 말한다.

 

“숙부 사진 이젠 좀 떼어 버려요. 숙모, 아직도 숙부를 사랑해요?”

“사랑이라이? 글씨…… 내사 안직 그런 거 잘 모를따만 하마 정 같은 거 아이겠나. 그 더르븐 정! 누가 뭐라 캐도 너거 숙부가 내한테는 첫정이었든 기라.”

“그치만 숙모한테 평생 너무 차갑기만 했잖아요. 언젠 단 한 번만이라도 잘해준 적 있었어요?”

“백지로 내한테 미안해 갖고는 정 뗄라꼬 부러 그캤지 속은 어데 그랬겠나. 지캉 내캉 한날한시에 어른이 되갖고는… 남들이 모르는 속정이 와 하나또 없겠노. 내한테는 아만 하나 있었어도……”

 

그러니까 누가 뭐라든지 숙모에게 숙부는 “숨이 막힐 만큼의 외곬의 사랑”이었고, 그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혜인은 그러한 숙모에 대해 “아직도 답답하리만큼 일편단심 한 치도 변함이 없는 열녀”라고 느끼면서도, “어쩜 그 점이 바로 숙부를 견딜 수 없게 했는지도 모른다”고, 한편으로는 숙부를 두둔한다. 이것이 바로 팔이 안으로 굽는, 혼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친족들 간의 어쩔 수 없는 유교사상의 전근대적인 정이다. 하지만 다음날 숙모의 칠순잔치에서 저자는 한바탕 화해의 장을 마련한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는 청도아재의 주도하에 차일이 처지고 잔칫상이 차려진다. 그리고 각지에서 흩어져 사는 식구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데, “혜인의 어머니와 스잔숙모, 옥자고모를 비롯하여” 스잔숙모의 소생인 “재엽과 재훈, 그의 처와 아이들, 그리고 혜인의 형제들”이 “줄줄이 내려와 초가지붕에 열린 박넝클처럼 집안을 가득 메웠다. 의젓하게 성장한 재엽과 재훈. 그들은 비록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어도 학비며, 용돈이며 손발이 닳도록 바라지하여 키운 엄연한 숙모의 법적 아들들이었다. 그들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잔치집은 활기가 가득찼다.” 그리고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지난 시대의 시골집 마당의 칠순잔치가 무르익는다.

 

“우리 매부, 그 인간 살아있음 오늘 같은 날 내 가만 안 둘 낀데… 오늘 같은 날 고마 땡깡이라도 실컷 부리미 모가지를 비틀었쁠고 쌩난리를 쳤을 낀데, 그래 먼저 가뿌리고…… 고얀 화상, 매부, 니는 지끔 어디 있노오. 물러콰라, 불쌍한 우리 누임 평생 치른 고상 다 물콰내라꼬오.”

어느 순간 만취한 듯한 복이아재의 음성이 좌중을 휘저어 왔다. 복이아재는 숙모의 칠순을 기해 무언가 속에 쌓인 말을 토로하려 아예 작정하고 술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여느 때도 술이 거나해지면 곧잘 숙모를 찾아와, ‘불쌍테이, 우리 누임 불쌍해서 우얄꼬’ 하며 목 놓아 꺼이꺼이 울곤 하는 복이아재이기에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복이아재는 ‘비운의 우메숙모’가 있게 된 원인 제공자다. 그의 누님 우메숙모의 신산辛酸한 일생도 그렇지만, 그 역시 그의 누님 못지않은 한을 가슴 속에 품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칠순 잔칫날 이렇게 울분을 토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울분인 동시에 갈등의 대상자들에게 내미는 화해의 제스처다. 이게 바로 우리 고유의 화해의 방식이다. 이렇게 저자는 마지막에 모든 갈등의 당사자들로 하여금 우메숙모의 칠순잔치를 빌려 한바탕 화해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잊어먹고 넘어갈 뻔했다. 이날 혜인은 옛날 사랑했던 호형을 다시 만난다. 필자의 방식대로 말하자면‘등신들 간의 해후’인데, 그 한 등신은 이제 사법고시에 패스하여 매스컴의 유명인사가 된 인권 변호사(인권 변호사라니? 필자는 유독 북한의 인권에만 눈 감는, 우리나라 특유의 이른바 ‘외눈박이 인권 변호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다.

 

텔레비전만 켜면 말초적이고도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김현숙의 장편소설 먼 산이 운다는 필자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문학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대중적이고도 복고적인 콘텐츠를 고루 갖추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옥에 티’라고나 할까, 필자가 읽으면서 껄끄러웠던 게 몇 가지가 있다. 그 첫째, 저자는 왜 굳이 이 소설을 3인칭 시점으로 썼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런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써야 서술이 더 매끄럽고 구성이 더 용이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이 소설의 초입 몇 챕터와 마지막 챕터에 언급되는 학생 ‘건구’의 이야기다. 이 학생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전편에 전혀 녹아들지 않는다. 저 혼자 따로 노는 무리한 구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대적 배경묘사가 너무 없어서 독자들이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점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적어도 혜인이 기차를 타고 우메마을로 향하는 연도 정도는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언급이 있어야 했다. 필자도 첫 챕터의 초입에서 ‘열차’라는 단어를 놓치는 바람에 단양을 지난 차가 죽령을 지난다기에 으레 새로 생긴 죽령 자동차 터널로 한동안 인식했고, 그로 인해 그 뒤의 몇 챕터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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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작은 흠들이 작품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만큼 이 소설의 문학적인 성과가 높다는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장편소설 한 편을 접하게 해준 저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홍적∙199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소설집 북 치는 소년과 장편소설 영원한 것은 없다가 있고, 장편 어른동화 아내와의 이별과 평역서 중국 환상동화(전3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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