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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백인덕/만(萬)가지 꽃이 만개(滿開)할 때 - ‘다양성’이라는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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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 아라문학
만(萬)가지 꽃이 만개(滿開)할 때 - ‘다양성’이라는 덫
백인덕
부안 채석강 한 세 번쯤 갔다. 늘 허방을 짚어 바지를 적시고 말았지만, 만 권의 책이 쌓여 있다는 벽을 한 동안 바라보았지만, 아무 글도 읽어내지 못했다. 처음은 어설퍼서, 다음은 반주로 마신 낮술 때문에, 다음은 눈이 어두워 난 그 암벽 앞에서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꼭 같은 이유로 ‘채석강에서’라는 시를 쓸 수도 없었다.
홍대입구역에서 길을 잃었다. 삼년 만에 서울나들이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전화에서 아무리 왼쪽, 오른쪽을 알려줘도 사람들 틈에서 방향이 지워졌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누우처럼 떼에 떠밀려 정작 찾아가야할 길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문제는 그 순한 눈망울의 그들도 길을 모르긴 매 한가지였다는 점이다.
2010년 일본에서 당시 99세였던 할머니가 처녀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하며 일약 스타덤(요즘 말로 멘토)에 올랐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장례비용으로 모은 돈 100만 엔을(우리 돈 천 만 원 쯤 되나, 도통 환율과 같은 경제 상황들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다)들여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은 유수의 출판사를 거쳐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현상에 대한 이해의 열쇠는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최고령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인은 작년에 첫 시집 『차우차우』를 출간한 김진기 시인일 것이다.(내 기억으로는 아직 그 기록이 갱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흔을 거뜬히 넘긴 나이에 일 년여의 문화센터 수강을 통해 얻은 결실이라고 했으니, 그 열정과 수고가 쉽게 짐작된다. 시인의 작품 중에 한 편을 짧게 소개한다.
세탁물 속에서 이천 원이 나왔다
윗도리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었던 지폐 두 장
구겨졌지만 멀쩡하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가끔 주머니에서
뭉친 휴지나 지폐가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젖은 종이는
메모지나 영수증으로 추측될 뿐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폐는 힘이 세다
흔들고 쥐어짜고 두드리고
거친 소용돌이를 헤쳐나오고도
또렷한 일련번호, 선연한 은박 수직선
어른의 수염 한 올 다치지 않는다
툭툭 털고 일어서는 저 올곧은 뼈대라니,
-「어르신은 힘이 세다」 부분
일반 종이와 특수 용지를 사용한 지폐의 차이 정도야 상식일 것이다. 그 보다는 ‘어르신은 힘이 세다’는 작품의 제목과 시각이 시사(示唆)하는 바가 더 많다.
내 경험에 의하면 요즘 인근 지역에 있는 문화센터, 특히 글쓰기 강좌에는 젊은 층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도 찾을 수 없고, 중 장년층에서 노년층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때론 바쁜 일이 없어서 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갖다 붙이지만, 내 생각에 한 번 시작한 일에 대해 끝없는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시는 것은 아마도 그 분들이 살아온 여정, 크게 말해서 우리 사회의 노년층의 역사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 두 개의 상반되는 정보 사이에서 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나만의 증상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도 K-POP을 위시한 ‘한류 열풍’ 탓에 소위 문화콘텐츠의 수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경제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편에선 거의 전지구적으로 청년 일자리가 줄어 청년실업률이 급증하고 있고, 많은 나라의 정정(政情)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런 경우도 있다. 국내 미래 산업에서 소위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 마케팅의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젊다’는 것 외에 아무런 경험과 지혜도 없고 어쩌면 그 때문에 기회마저 박탈당할지도 모르는 것이 오늘의 젊은 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명 사회건강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생명 혹은 가치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득이 될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문화, 문학 현장의 현상들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어떤가? 아마 신인 작가들과 신생 잡지들에게는 이미 조성된 혹독한 생존환경이 더욱 가혹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화 문학적 욕구(수요)를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각종 매체와 정책들이 결국에는 모두가 질식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유명/무명, 중앙/지방, 크고 작음을 떠나 그 누구에게라도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할 수 있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오직 이 사실만이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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