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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5편

가을의 기도

浪丞萬

 

 

뜨거운 여름날의 강물소리를 보내며

가을 풀꽃들과 함께 죽게하십시요

 

아무 수확이라곤 없는, 떨리는

빈 손바닥뿐입니다

그 주위로는 노을이 나리게 하여

가늘은 벌레소리와 함께

머리 위를 지나간

찬란한 가을비 소리를 잊게 하여 주십시요

 

이 조그만 영토에 그대를 쇠잔할

한 가을 풀꽃의 뿌리 밑을 흐를

맑은 물소리로 죽어지고

 

짙푸른 하늘 아래, 나뭇가지마다 눈부신 과실의 빛으로 죽어져서

당신께 드리는 제단 앞에 목매어 쓰러지겠습니다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으로 부서져

땅 속에 깊이 묻히게 하십시오요

그리하여, 흐느껴 우는 겨울엔 두터운 지층 위를 강설하면 죽어진

벌레의 노래를 되살리며, 가슴 속으로

마구 뜨거운, 파도치는 목숨의 피를 조양하는 것입니다.

 

온화한 빛깔들로 취하게 하여……

가을엔

가을 풀꽃들과 함께 죽으며

미소짓게 하십시요

 

눈물나는 죽음의 이야기 속에 다시 살아날

그들이 잠들어 누워 있는 무덤 위에, 더 슬픈

사랑을 주십시요

아침에는 눈뜨게 할 종소리를

뜨거운 뜨거운 빛을 던지십시요

 

 

 

 

香을 사르며

 

 

마음 하나 사르어 님께 뿌리노니

서녘의 노을에 잠드는 이쁜이여

내 육신의 껍데기로 배 한 척 만들어

띄우면

이녘 가슴으로 꽃잎처럼 날아오실라는가

발 아래 흩어지는 꽃빛 울음이여.

 

 

 

 

목련비가

浪丞萬

 

 

달밤에는 샘물소리로 저려오는

슬픔을, 어느 날에나 훌훌 벗어 던지고

그리운 이께 이 순백의 사랑을 쏟을 수 있나이까

 

이제는 그만 이 소복의 무거운 업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아오리까

백 년쯤 뒤에나 벗으라 하심이옵니까

 

그대 계신 골짜기로 이 치맛자락 훌훌 벗어 던지고

너훌너훌 사랑 한 번 피웠으면

달밤에는 슬프디슬픈 사랑 한 번 뜨겁게 저질러 봤으면……

 

문정문정 살점 같은 하아얀 치맛자락 훌훌 벗어던지고.

 

 

 

 

이 저녁에도 오는 저승비

浪丞萬

 

 

그 긴 봄날의 장마에도

비 한 방울 맞아 보지 못하고

어느 反屍身처럼 후줄근히 버려진

우산이나 펼쳐들고

이 봄날에 마지막 오는 비를 맞으며

가버린 그네라도 만나

호젓한 찻집이나

낯선 주막에라도 들러

차를 마시건 술 한잔 기울이면

그게 곧 세상사는 기쁨이겠는데

 

술도 못하고

먼지 자욱한 세상을

이 저녁에도 오는

저승비를 맞으며

절뜩거리는 쓸쓸한 歸家의 발길이여……

 

 

 

 

가을에 띄우는 편지

浪丞萬

 

 

꼭 한 사람께만 사랑을 기도하는

가을은 오고

우리들의 가슴 속으로

찬란한 나뭇잎은 진다.

 

우리들의 영혼 속으로

노랑빛깔의 나뭇잎 지는 소리

우리들 가슴 속에 자욱하고

가을은 슬픈 노을을 데리고 왔다.

 

가을은, 아 가을은

사랑이 영그는 계절이어서

이 가을엔

우리들 가슴 속에 사랑을 태울

천 년은 쌓일 나뭇잎 지는 소리.

만 년은 덮일 나뭇잎 지는 소리.

 

우리들 가슴 속 낭자한

빗방울 소리 같은 너의 발자국 소리.

나뭇잎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듯

그리운 이름을 새긴다.

그리운 얼굴을 그린다.

 

가을의 사랑은 축제 같은 향기

우리들 있는 자리에

빨간 나뭇잎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자.

 

이 가을엔 가을비 오면

빗방울 속에 입술을 적시자.

우리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모닥불을 피우고

우리는 서로 노랑빛깔의 나뭇잎이 되자.

목숨을 태우는 빨간 나뭇잎이 되자.

영혼을 태우는 노랑 나뭇잎이 되자.

 

꼭 한 사람께만 사랑을 기도하는

가을은 오고

우리들의 가슴 속으로

찬란한 나뭇잎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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