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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권순/등을 보인다는 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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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1,824회 작성일 15-07-0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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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

등을 보인다는 것 외 1

 

저수지 둑방 아래 버려진 의자가 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저 의자, 언제부턴가 거기 혼자다

등을 보인다는 것은

경계하는 마음을 풀었다는 것인데

다 내려놓았다는 것인데

아무에게나 뒤를 보여도 좋다는 것인데

마주 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른다는 것인데

좀처럼 울지 않던 그가

몰래 다녀간 것일까

마주하면 악다구니만 하게 된다던 그가

혼자 다녀간 것일까

빈 소주병이 버려져 있다

밤새 등 돌리고 앉아 목 놓아 울었을

고개 떨구고 어깨를 들썩였을

소주를 병째로 마셨을

끓어오르는 미움을 삭혔을

서럽고 쓸쓸한 그가

끝내는 자신도 마주할 수 없는 그가

물가에 돌아앉아

등을 보인다는 것은

 

 

 

 

두브로브니크의 밤

    

 

그녀들은 크로아티아로 떠나고

나는 여기 남았다

그녀들이 두브로브니크 거리를 걸을 때 나는

사립학교 화장실에서 변기청소를 한다

그녀들이 붉은 기와지붕과 아드리아해를 내려다보며 파스타를 먹을 때

나는 화장실 뒤 비좁은 휴게실에서

불은 라면을 먹는다

모래알 같은 하루다

 

그녀들이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눈물을 흘릴 때

플레비치 호수공원을 산책할 때

나는 명치끝에 찾아온 체증 때문에 가슴을 친다

날이 저물어 숙소로 돌아온 그녀들은

조금씩 속내를 꺼낸다

그녀 중 하나는 변비를 호소하며 짜증을 내고

또 하나는 여행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여행자는 떠나기 좋은 시간과 돌아가기 좋은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며 지금이 돌아갈 때 같다고

알 수 없는 눈물을 보인다

 

두브로브니크에 비가 내린다

아름다운 성곽이 젖는다

그녀들은 옷을 벗은 채 거리를 걷는다

신발이 벗긴 채 걷는다

그녀들이 흩어진다

아주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중년의 여자만이

밤이 늦도록 상점가를 돌아다닌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를 찾아서

 

이곳에도 밤비가 내린다

곳곳에 그녀들의 패션이 유행한다

그녀들이 입었던 옷과 신발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녀 중 하나가 유행시킨 카키색 야상을 걸친 여자들이

밤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두브르브니크의 밤이 깊어간다

누군가 책갈피를 넘긴다

 

권순- 2014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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