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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정령/호박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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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
호박꽃 외 1편
햇살 좋은 담장 너머로 선발대회가 한창이다.
과시하려는 몸사위로 매혹적인 에스라인을 뽐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노란 별꽃들이 순번대로 피어난다.
넉넉한 프레어 스커트를 착용할 것과 까실까실하고 날카로운 살갗으로 호리호리한 허리를 감싸 안아줄 것, 지조 있는 품위와 후덕한 인상으로 관대하게 웃어줄 것과, 매일 한 번은 벌에게 꽃가루를 내어 주고, 항상 의리와 정으로 돈독함을 유지할 것 그리고, 아낌없이 내어주고 용기 있게 죽을 수 있는 힘이 선발조건이란다.
서 있어야할 틈 비집고, 함께 가야할 곁 비비며 더듬이처럼 덩쿨손들이 앞장서 간다.
비가 촉촉히 내린다.
노란 우산을 받쳐 든 소녀가 담장 곁을 막 나온다.
비바라기
파란하늘을 감싼 잿빛구름성역을 만들고 밀어처럼 섹소폰소리 담을 타고 넘나든다.
여자의 얼굴에 점이 있다.
맑은 얼굴에 점, 창가에 빗물이 쏟아져 부딪히며 박힌다.
뚜렷하게 긋지 못하는 점들 빗금을 그어 잇는다.
떨어진 화살들이 모질게 뭉개져버린 동그란, 여자가 화장을 덧칠한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다 무참히 튕겨져 나동그라지는 무수한 점, 사선으로 곤두박질쳐도 돌아선 얼굴 우산으로 막아도물방울로 모아져 툭툭 터진다.
타고난 복에도 평생 살얼음판 같다는 사주팔자, 퍼붓는 빗물에 죽죽 흘러내린다.
레인부츠, 섹소폰소리, 떨어지는 빗소리 굵어진다.
정령-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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