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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아라시/임효빈/원조를 탐하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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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를 탐하다 외 1편
게으른 시인이 무단 감행한 표절
밤 내 필사적으로 베낀 길이 하얗다
모래시계로 잦아드는 무력감
모든 시원은 자만에 찼거나 교만했으리라
그 간극을 넘나드는
신들의 걸러지지 않은 태만한 문장들
끓어오르는 팬들의 환호가 공허하다
히메네스 할머니*가 그린 원숭이
깨지지 않는 절대 믿음은
차르르차르르 통장의 잔고로 깊어만 간다
G에서 P까지 명품을 훔친 그녀의 트랙
판을 돌리면 새록새록 재생되는 위조된 사랑
누구도 개봉하지 못한 과대포장 속 경구들
기약 없는 신과의 교신을 꿈꾸는 걸까
무기력증에 빠져든 지상의 시간들
폐기되지 못한 낯선 이미지들의 반복되는 배회
그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또 하나의 그
트레이싱*을 누구도 거론하지 마라
원조의 기망을 원망하지 않을 뿐,
터질듯 폭주한 간밤의 흔적은 허공에 흔들린다
족적조차 위조되는 그, 종種이 변질되었다
밤새 식어버린 원조를 탐내다
*스페인에 사는 82살의 할머니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벽화가 훼손된 것이 안타까워 허가도 없이 직접 복원에 나섰다가 그림을 망쳐버렸다. 예수의 얼굴을 털복숭이 원숭이로 그렸던 것. 당시 소송까지 갈 뻔했지만 오히려 인터넷에서 그림이 큰 인기를 끌어 지난해엔 무려 5만 7천여 명이 이 엉터리 벽화를 보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한다. 덕분에 최근 할머니는 입장료 수입의 절반을 받기로 하면서 큰돈을 벌게 되었다.
*그림 표절.
죽은 시인의 머리
그깟 거 달고 살아야 소용없죠
이따금 시푸르게 베어져야 합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산 것까지 죽이게 되면 어쩌지요?
색채가 없는 지루함이 철철 흐르는
당신이란 유추,
살리려면 죽여야지요
빈약한 상상력이 고민이라면
뿌리를 한껏 부풀려 뜨거운 바람을 흡입해 봐요
불온한 바람일수록 풍성한 얘깃거리를 낳는답니다
그 바람에 눕고만 싶어 하던 풀잎들
단단한 볼륨을 살리고 싶다면
텍스트에 능한 선생님을 불러줄 게요
황홀한(그러나 뻔한) 변명
삐죽삐죽 잔머리 밟으며 사뿐
매직, 러블리, 물결, 바디, 발롱, 텍스쳐, 히피, 도로시*
(모르는 척) 사절할 게요
어설픈 내통에 무성해지는 장식들
절묘하게 권태를 비껴가는
임효빈∙2007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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