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창간호/아라시/박하리/이순의 고봉이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이순의 고봉이 외 1편
이순을 넘긴 고봉이 잃어버린 맛을 찾아 길을 떠난다. 낮에는 새가 되고, 꽃이 되고, 밤이면 도둑고양이가 되고, 박쥐가 된다. 꿀 바른 맛에는 가볍게 미끄러지고, 신맛에는 움찔움찔 짜릿함을 느끼고, 새콤한 맛에는 길게 빠져 한세월을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고봉이 오랜 세월 닳아빠진 혀끝은 정체불명이다. 이 맛 저 맛이 모두 쓴 맛이다. 단 맛이다. 맛없는 맛도 그냥 맛이 된다. 이순의 고봉이 잃어버린 맛을 찾아 길을 떠나지만 맛은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다.
형제들의 삼국지
시계바늘이 부지런히 돌고 있다. 달각달각 분침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선다. 초침은 뱅글뱅글 바쁜 걸음으로 원을 그린다. 노모는 풀 매긴 광목 이부자리에 누워 있다.
삼형제가 골프장에서 만나 단판승부를 시작한다. 홀인원을 기대하고 이글을 기대하고 파이길 기도한다. 게임의 패자는 어머니를 얻을 것이고, 승자는 어머니를 잃게 될 것이다. 첫째는 홀인원으로 끝내려 하고, 둘째는 이글이어도 괜찮다. 셋째는 더블보기를 걱정한다. 첫째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다리가 풀린다. 둘째는 사업 걱정에 골프채가 천근만근이다. 셋째는 지난밤 술로 인해 공이 두서너 개로 겹쳐 보인다. 벙커로 떨어진 골프공이 모래 바람을 일으키다가 그린으로 올라온다. 데구르르, 홀컵을 향한다.
어머니를 얻은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온다
어머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갑게 묻는다
누구신가요?
박하리∙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 이전글창간호/아라시/이외현/배롱나무, 꽃잎지다 외 1편 14.03.09
- 다음글창간호/아라시/박철웅/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 외 1편 14.03.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