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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산문/장경기/장경기|아버지 노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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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635회 작성일 14-03-11 14:47

본문

장경기|아버지 노을길

 

1. 영화 아버지 노을길은 아버지의 인생 노을길에 자식과 죽음씨가 함께 동행하는 이야기

 

이 영화는 아버지의 노을길에 아버지와 자식과 죽음이 동행하는 이야기다. 우리 인생길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산 자 중에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 그러나 온 세상을 통 털어도 죽음만큼 내가 얘기를 많이 나눈 이가 또 있으랴

 

노환의 아버지 가벼이 두 손으로 받쳐 드니

늙은 아이 내 품에 안겨들어라

 

먼 어릴 적부터 온전히 한 바퀴 돌아온 생은

이리도 웅크린 슬픔덩어리 뿐인가

자식 품안에 한줌 깃털로 안겨드는가

 

징게맹게 살진 흙 땀방울로 굴러왔구나 아버지 한 평생

엉겨 붙던 설렘 비탄 욕망도 모두 구르고 구르다 보니

한 덩이 마른 슬픔으로만 웅크려드는구나

입에서 항문으로 항문에서 입으로

죽에서 똥으로 오줌으로

주춤주춤 깐작깐작 밤에도 쉬지 않는

노을녁 아버지의 순례길은

이리도 짧고 길어라

 

똥이라 오줌이라 피고름이라 한들 다 아버지 일이고

바로 내 모습일진데

무엇이 더러움이요 추함은 또 무엇이랴

불구부정不垢不淨, 그 깊은 반야심경 만리길이 저절로 깨쳐지네

 

저물녘 만경강 물가로 나와

아비의 슬픔덩어리 실오리 외오리 한 올 한 올 풀어놓으면

물위에 잠시 빛나며 희살져 가는

저 아비의 가쁜 한 생, 생의 노을 속살이 출렁이네

―「아버지 노을길(‘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 아버지 노을길001)」, 전문

 

2. 영화 아버지 노을길은 아버지와 자식 간의 사랑의 원형질

 

죽음이라는 존재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커다란 물음이 아버지와 필자 앞에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 죽음을 향해서 주춤주춤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버지와 필자의 하루하루 생활이다. 그런 절박감 속에서 탄생한 아버지 노을길에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끈끈한 마음의 교감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1. 어구구구, 하 이거, 내 이거 어쩌

 

“나 밥 먹으러 갈거나?”

“예. 부엌에서 드실래요? 가시죠

침대에서 천천히 한 번 일어나 보세요”

더듬거리는 다리 비츨비츨 흔들려라

“이상허다 다리가 이렇게 힘이 없으까 잉

죽을라믄 빨리 죽어버려야 허는디

빨리 빨리 죽어버려야지. 하이고 머리야.”

 

“수저 들기 힘드시믄 이게 짝은 거니까

요게 편하시면 요걸로 드세요”

“으응, 쫌 먹어야 허는디, 먹어야 할랑가벼, 하이고 어떡하나

하이고 환장혀어. 갑자기 먹고 액- 혀버려야 허는디 잉

너부터 밥 먹어. 천천히 먹어. 깐작 깐작

니가 니가 면도를 해줘서 잘됐다. 니가 잘 했어. 나를”

 

 

2. 굽이 굽이 한숨길일세

 

 

깨작 깨작이는 아부지

“나 이제 그만 먹을란다.

나 집에 가야 혀. 나. 한쪽으로 먹던 밥 잘 놔둬라 잉.”

“예, 한쪽으로 놔두께요”

“하이고, 이제 안 죽을랑게비여.

차라리 죽어번져, 죽어번져야 허는디.”

 

 

주춤주춤 천근만근 몸뚱어리 침대에 던지는 아부지

“휴우우-”

밥 한 끼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기가

이리도 큰 산 하나 넘는 굽이굽이 한숨길일세

―「밥 한끼 아리랑(‘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 아버지 노을길006)」, 중에서

 

 

밥을 챙겨드리는 정도에서 출발한 아버지와의 노을길,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깥나들이가 줄어들고 생활은 집안으로 좁혀진다.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고 부엌에서 먹던 밥을 먹던 생활은 다시 방안 변기에서 대소변을 보고, 침대 위에서 죽을 먹는 것으로 좁혀지고, 방안에서도 침대 위로 생활이 좁혀진다. 밥숟갈도 깔대로 바뀐다.

그만큼 아버지와 밀착이 되면서 이런 저런 옛이야기들을 하며 함께 웃고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마음의 교감을 이루게 된다. 어린 날 부모님이 자식에게 그랬듯이 아버지의 똥 오줌도 받아내게 되면서는 세상에 더러운 것이 무엇이고 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현재 잃어버리고 있는 대가족 단위, 씨족 단위,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인 삶의 좋은 면들에 대해서 다시 눈을 뜨게 된다.

핵가족화, 도시화 환경 속에서 노인의 소외 등이 문제되고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떤 가족의 모습이 보다 인간을 행복하고 따뜻한 삶으로 이끄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1.

침대에 웅크린 얘비의 잠을 흔드는 자식

“아부지, 지가 서울 좀 댕겨 올라고 허는디요.”

“응?”

“금방 또 형수님이 온 게 두어 밤만 자고 오께요.”

 

 

“아이고 나 죽겠네. 아이고 나 죽겄어.”

 

 

“휙 댕겨 오께요.”

“진짜루?”

“예. 한두 밤만 자고 온당께요.”

“하아아. 하이고오.”

 

 

2.

“금방 형수님이 또 와요.”

“어떻게 혀. 가야지이, 하이고 아이고오,

에이씨, 나 죽어번져야 혀. 차라리 나 끊어버리고 가!”

“금시 댕겨 온당께요.”

“날 죽여. 죽이라구. 죽어야지. 끊어 어여 끊어어.”

“아부지도 참!”

 

 

“하이고, 나 죽어어. 죽어어.

그려어 그럼 할 수 없어 잉. 가거라 잉.”

“죄송해요. 아부지.”

 

 

녹슨 철대문만 빈 가슴 덜커덩 덜커덩

바람이 울고

먼 강뚝 신작로길로 자식은 그림자만 멀어져가네

―「아부지, 서울 좀 훌쩍 댕겨오께요(‘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 아버지 노을길 006)」, 전문

 

 

3. 영화 아버지 노을길은 자연스런 죽음, 온전한 죽음의 과정

 

 

“인제 안 죽을 랑가비여.” “가야 혀. 가야혀. 죽으러 가야혀.” 아버지는 차츰 자식들의 이름까지 잊어버리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만은 문장과 단어를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바로 죽음씨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언제나 말없이 우리 앞에서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우리는 슬픔 덩어리로 주춤주춤 깐작깐작 죽음씨에게로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 신음 소리를 위장이 먼저 알아차리고 뒤틀렸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서 종교방송을 주로 듣고 명상을 하고 만트라를 늘 암송했다.

생전 처음으로 죽음의 과정을 직접 접하고 겪어가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슬픔과 절망, 막막함, 분노, 체념이 그대로 내게로 스며왔다.

 

 

1.

인제 인제는 안돌아 올랑가벼. 엄니, 엄니야

 

 

저 봐여.

아비 몸뚱어리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디도

한마디 말이 없어라 아부지는

끙끙 앓는 소리라도 허믄 참 좋것는디

 

 

왜정 때는 징용 끌려가서도 살어오고

인공 때는 인민군에 붙들려가서도 도망쳐오고

국방군으로 온 전쟁통 싸돌아다녔어도 용케 살아왔다고

어디 가든 꼭 살아온다고 엄니 잘 가던

안목 점쟁이도 장담 혔었는디

 

 

인저 인저는 틀렸는갑서라 엄니

아부지 눈도 코도 다 타버렸어라

다리도 손가락도 다 불구덩이 밥되어 버렸는디

아부지는 말이 없어라

 

 

2.

엄니 아비 살 맞대고

한 이불 속에 우리 새끼들 품은 때가 엊그제 같은디

 

 

“천천히 드쇼. 아부지.”

“너도 먹어. 깐작깐작 천천히 먹어라 잉.”

엊그저께만 혀도 아부지랑 이마 맞대고 국밥 말아 묵었는디

오늘은 현충원 유골단지에 뼈가루로 들어 앉았어라

 

 

인제 본께 목숨 붙은 것은

너나 나나 다 슬픔 덩어리구만요

벌써 십년은 넘었지라 잉. 엄니 땅속에 누운 지도

엄니 무덤 옆에 가무덤 만들던 아부지 삽질이 눈에 훤하그만요

꼭 엄니 곁에 묻히것다고 혔는디, 아부지는

 

 

3.

죄송해요 아부지

엄니 좀만 기다리소 잉.

엄니도 다 탈골될라믄 한 삼년 더 푹

썩어야 헌다는구만요

엄니 뼈골이라도 여그 아부지 있는디로 함께 모실랑께요

죄송혀요. 엄니. 아부지이.

―「아부지는 불밥 돼버렸어라 잉, 엄니(‘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 아버지 노을길 007)」, 전문

 

 

욕망, 생각, 감정들이 다 휩쓸려나가는 손님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다 놓고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점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내 자신 역시 끊임없이 변해가는 대자연의 일부임을 구체적으로 실감하고, 한편으로는 이 세상을 운영해가는 우주의 자비와 지혜가 아버지를 인도하리라는 믿음도 가지게 되었다. 한정된 삶이기에 살아있는 나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나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른 생명들, 특히 약하고 가녀린 생명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소멸하는 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감하였다. 시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 뼛가루

만경강에 뿌리고 돌아오는 노을길

 

 

발 그림자로 떨어지는 하루살이 한 마리

흙속에 제 살을 섞고 있네

 

 

그렇지

하루살이야. 네 목숨 크기인들

아비 목숨과 어이 다르랴

너와 나의 인연인들 또한

아비와의 인연줄 만큼 깊지 않으랴

 

 

풀벌레 풀꽃 이슬

여린 흔들림에도

뜨거운 눈물 흘릴 줄 아는

온 가슴으로

이제는 살아가야지

―「아비, 노을길에 하루살이(‘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 아버지 노을길 011)」, 전문

 

 

4. 영화 아버지 노을길은 멀티포엠아트 작품 <한강아리랑> 시리즈 29권에 해당

 

 

필자에게 있어서 작품 활동의 제1 키워드는 멀티포엠아트다. 1996. 8. 1일 ‘멀티포엠 제1 선언문’ 발표를 통해서 문자뿐만 아니라 영상, 소리 등 모든 융복합 멀티언어를 활용한 멀티미디어시 곧 멀티포엠아트 시문학 운동을 펼쳐갈 것임을 선언하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 18년 동안 ‘멀티포엠아트 제 10선언문’까지 발표해오면서 관련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그 일환으로 창작해온 멀티포엠아트 작품이 한강아리랑 시리즈다. 현재 28권 1500여 편의 작품까지 진행되고 있다.

융복합 멀티언어를 활용하여 창작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융복합예술, 하이퍼아트, 토털콘텐츠 산업 등으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한강아리랑 시리즈는 그 창작 과정이 바로 매체 발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하이퍼 융복합 환경 속에서 열린 작품, 열린 창작, 열린 표현이라는 방향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나감으로써 이 시대정신을 포괄적으로 넓게 포용하는 느티나무형 토털콘텐츠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한강 아리랑 작품 시리즈를 내용면에서 보면 ‘母語, 神話, 生命, 存在, 삶’이라는 5가지의 갈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 한강아리랑 시리즈의 29권이 「아버지 노을길」이다.

그동안 한강아리랑 시리즈를 창작해 오면서, 각 권마다 시를 원작으로 해서 영화, 연극, 미디어아트, 캐릭터, 사진, 전시, 설치 등으로 확대되는 토털콘텐츠 작업을 해왔다. 본 29권 시리즈 「아버지 노을길」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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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권 시리즈 「아버지 노을길」은 아버지의 인생 노을길에서 아버지와 자식과 죽음이 동행하는 이야기다

 

 

장경기∙시인, 멀티포엠아티스트, 영화감독. 전북 김제 출생. 1992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 1996년 <멀티포엠 제1 선언문> 발표 이후 18년 동안 멀티포엠아트 시문학 운동 펼침, 멀티포엠아트 작품집 <한강아리랑> 시리즈로 몽상의 피, 마고, 母語天符經, 눈꽃경전 등 28권까지 발표, 현재 29권 아버지 노을길을 융복합예술 형태로 진행중. 시집 몽상의 피, 안개의 집, 화언, 마고, 신의 변론, 신의 사랑, 신용불량자, 휴먼블랙박스, 눈꽃경전, 마음통일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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