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창간호/신작시/김박은경/밤의 도로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김박은경/밤의 도로 외 1편
차창의 나방 한 마리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바람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저것은
앞으로도 뒤로도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다 미친 듯 날갯짓을 해보지만
허공의 자리에 박힌 채 부서지는 갈색 가루
날개는 거기 없다 벌써 이미 아무 것도
잠시의 슬픔 잠시의 절망 잠시의 환멸 개자식 끝이야 창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있는 대로 소리치며 울며 볼륨을 높이며 달리는 그녀, 벌레라니 질색이야 눈을 찌푸리며 제발 사라져 윈도우브러시를 켜며 힘껏 액셀을 밟으며 래퍼의 후렴이 끝나며 굉음과 함께 멈춰 서며 축축하게 번지기 시작했으니 얼룩을 빼면 강렬할 것도 없는 우연한 일상, 우연한 일생
신
아침과 아침 사이 사라진 당신은 떠나온 곳을 향해 신을 벗어두었다는데 어지러운 신을 돌려놓을 때마다 나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게 벗어둘 수도 있고 돌려놓을 수도 있는 거라면 잠깐 신고 있는 것도 같고 벗고 있는 것도 같은데, 의족을 끌고 가는 말짱한 새 신은 아무 데도 못 가게 미리 숨겨두었다던 신은 품에 품어 따뜻하게 덥혀 두었다던 신은 행인 한 명이라도 있어야 신이 되는 쇼윈도의 신은 매달릴 때마다 날아가 사라지기 일쑤인 신은 전부를 탕진하고도 입 벌린 채 넙죽 나를 받아 안는 신은 가죽 조각 녹슨 못 몇 개 잘린 실밥으로 해체된 신은 한때 신이었다가 한 때 몸이었던 신은 돌아가는 것일까 돌아오는 것일까, 없는 당신의 신을 자꾸 돌려놓아 보아도
김박은경∙ 2002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독. 사진산문집 홀림증.
- 이전글창간호/신작시/김서은/수요일 외 1편 14.03.05
- 다음글창간호/신작시/하두자/구채구, 드라이브 외 1편 14.03.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