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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신작시/이담하/갓 마흔에 첫 상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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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하/갓 마흔에 첫 상자 외 1편
꽃이 핀 선물상자를 받았다
나비 모양으로 묶은 리본을 푸는 순간 나비는 날아가고 리본은 뱀이 된다. 쉽게 풀리는 나비와 뱀. 간혹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 가 겨울잠을 자거나 독을 곱씹기도 한다. 매듭을 만지면 분가루가 뭍을 수 있고 손가락이 퉁퉁 부을 수 있다.
비나 뱀이 가버린 것으로
상자는 뱀의 굴이나 곤충채집 판이 될 수 있다
오늘은 1월의 달력에 빨간 압핀이 꽂힌 날. 상자 안 엔 생일과 기일이 적혀있는 문장. 뜨거운 비가 들어 있는 눈을 놀라게 하거나 입을 벌리게 하는 선물 대개 오후에 풀린다. 누군가의 손길로 리본이 풀리고 상자가 열릴 때 박수 소리는 퉁퉁 붓는다. 가로 축을 선호하는 눈웃음의 뚜껑을 연다 해도 그 눈물 쏟아지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사지나 외이外耳가 없고 눈꺼풀이 없는 뱀. 누군가가 상자를 열면 리본은 꼬리를 삼키는 우로보로스, 곧 수습된다.
상자는 숨기는 곳,
나비와 뱀 어느 것으로 묶인 상자를 선택해야 하는
시위잠
활의 어원은 M
웅크린 자세에서 머리와 발끝을 연결하면
그때 손은 불면을 집행하는 화살이 된다
어둠은 불면이 들어 있는 활 박물관
쉽게 복종하지 않는 불면을 다스릴 줄 아는
불안한 잠을 자는 사람
M을 늘여서 만든 활시위에 매긴 화살촉이 가는
최종 목적지는 불면이 닿는 곳
뭐라도 날려 보내는 잠
어떤 꿈도 거기에 걸리면 날아간다
웅크린 모양까지
음력 어느 달이건 보름은 별이 드물다
활을 놓고 보면 등이 휜 잠
활에 잠이 매어져 있지
엊저녁에도 내가자는 잠이란 굽은 활대와 같다
약간 더 구부리면 튕겨져 나갈 힘은 그 안에 있다
휘어있던 잠에서 깨면 누군가가 기지개를 켠다
몸에 있던 마지막 잠을 털어내는 시위
나는 불면의 보호자
불면, 통증은 자정부터 거세진다
그 통증 뒤집어 보면 살이 올라있다
기지개를 켜면
저쪽 잠으로 날아간 졸음
활의 또 다른 어원은 중절모
이담하∙2011년 ≪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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