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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신작시/조연수/오랜 시간 바나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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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수/오랜 시간 바나나 외 1편
너의 오늘은 싱싱한 오이무침으로 시작한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고무줄 같은 아침 묵히면 묵힐수록 빛나는 것도 있지만 헐거워져 탄력 사라진 바나나 건전한 생활이 뭐지 일주일에 두 번은 집에 들어오는 거 본디 너의 생이 지나는 길은 울퉁불퉁하게 진물 나는 바나나 아직 도착하지 못한 어느 행성을 향해 시간을 채우지 못한 생들이 바짝 묵어가고 바다는 멀고 바나나는 점점 검어지고 검은 밤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아직 뛰는 심장을 안고 좁디좁은 오솔길을 걸어 이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이다 모여든 초파리가 진물을 핥아 먹는 동안 물러진 살들이 검게 익어간다 익은 시간들이 말라가는 탁자 위로 물오른 초파리들 아직 날지 못한 허공도 너무 많은데 질척거리는 살 위를 떠날 줄 모른다
나를, 찾아주세요
무슨 요일이라고 했나요 파란 봉고차가 앞 범퍼를 들이받고 갔다고 하던데 그 일은 해결이 되었나요 소주로 다이어트를 하는 임상실험에 참가했던 나를 잃어버린 지 벌써 사십 년, 처음부터 내가 있었던 거 맞나요? 사실여부를 묻는 이메일을 읽을 때면 가슴이 무너져요 사계절 꼬박 콩나물국을 먹었다는데 어쩌면 지금은 심장으로부터 콩나물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노란 머리를 잘라내던 내가 목요일도 아니고 토요일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요일인지 모르는 그런 날 사라지다니 내 이름이 뭐냐구 물으셨나요? 목요일도 아니고 수요일도 아니고 그 사이에 이름 없는 어떤 요일이라고 해두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는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수 있어요 이렇게 비바람이 지나가는 날엔 없는 나를 찾고 싶어요
조연수∙2012년 ≪포엠포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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