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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아라시/유정임/사진 한 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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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709회 작성일 14-03-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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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외 1편

 

-나를 지워줘*

 

기품 있게 자란 몇 그루의 큰 소나무 뒤로

새벽안개가 번져오고 있다

잡목들이 지워지고

볼품없이 자란 작은 소나무들이 희미하다

그것들을 배경으로 큰 소나무들은

진한 먹물을 머금은 듯 더욱 선명하게 우뚝하다

 

-나를 채워줘*

 

촘촘히 짠 바구니에 안개를 퍼 담았다

늘 허기가 졌다

안개는 바구니의 보이지 않는 틈새로 자꾸 새 나갔다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안으로 굽은 다리를 지우고 볼품없는

몸통을 지우고 얼굴만 남았다

아직도 바구니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착각 속에 살아온 몸 하나가

솔숲을 해맨다

 

사진 속에는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기다림이 있다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그녀의 우주 속애

얼굴만 남아 솔숲에 든 나를

태양이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찰나를

그녀의 찰나가 붙잡고 있다

 

* 나희덕의 시 「심장 속의 두 방」에서 인용.

 

 

 

 

 

 

솔방울

 

 

물속에 그들을 띄워 놓으면

훌륭한 가습기 역할을 한다기에

우묵한 접시에 물을 담고

그들을 수북이 쌓아 올렸다

 

얼마나 깊어지면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구겨진 주름 한 점 없이

겹겹이 포개진 모든 근육들을 다 펴

하나 같이 꽃처럼 웃던

2년 남짓 바구니에 담겨

죽어서 웃는 법을 내게 이르던

송이 송이가 경이었던 얼굴들이다

 

한 나절이 지나자 높이가 반으로 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은 죽었던 게 아니었다

모든 촉각들을 세우고 꿈틀대고 있다

잃어가는 웃음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아프게 움츠러드는 근육들

이를 악물고 저항하고 있다

아, 저 단단한 멍울들

그토록 환하게 웃던 그들이 돌같이 단단한 멍울이 되어

하나 둘 물속에 나뒹굴고 있다

나는 그들을 고해苦海의 강에 띄웠더란 말인가

 

내 욕심의 강은 그들이 토해낸 혈로 붉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들의 지난 웃음이

아픈 멍울로 알알이 가슴에 와 박힌다.

 

유정임∙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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