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창간호/특집/정남석/우리 시대의 시인/교감의 시학, 회감의 시학, 이가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6,214회 작성일 14-03-03 14:41

본문

특집/정남석/우리 시대의 시인/교감의 시학, 회감의 시학, 이가림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일시:2013년 8월 17일(토) 오후 2시

장소:소래역사관

기록:이외현. 사진:정치산

 

r4.jpg  

 계간 ≪아라문학≫ 창간에 즈음하여 인천에 거주하는 한국시단의 거목 이가림 시인과의 문학적 ‘파워 대담’을 가졌다. 인천시 남동구 아암대로 1605에 위치한 <소래역사관>에서다. 이곳을 굳이 대담의 장소로 택한 것은 이가림 시인의 「내 마음의 협궤열차」 연작, 「소금 창고가 있는 풍경」, 「나문재」 등 여러 편의 작품들이 인천의 소래풍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소래역사관>의 ‘소래갯벌 Zone', '수인선 Zone’, ‘소래염전 Zone’, ‘소래포구 Zone’을 둘러보면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옛 협궤열차를 타고 추억 속 시간여행을 즐기는 가운데 나눈, 이가림 시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시력詩歷 50년을 헤아리는 시인이 오랜 세월 궁리해 왔던 탐색의 결정체, 그리고 최근의 내면풍경이 어떤 모습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대화록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정남석:선생님, 하필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날에 뵙자고 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장소를 인천의 중심부에 있는 시원한 카페 같은 곳이 아니고 외곽지역인 소래로 정한 것은 선생님의 취향에 딱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던 불문학자답게 로맨틱하고 깔끔한 신사의 용모를 지니셨지만, 소탈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서민적 성품으로 상대방을 따스하게 감싸는 친화력이 있습니다. 특히 「내 마음의 협궤열차」에 담겨진 ‘사라져가는 것에의 사랑’과 애틋한 ‘애련哀憐의 세계’는 그런 선생님의 평소의 태도와 섬세한 시적 감수성이 잘 반영된 대표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를 낳게 만든 창작의 현장 소래에서 만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가림:그런 속 깊은 뜻이 숨어 있었군요. 송도 신도시의 어느 카페 같은 곳에서 만날 걸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소래에서 보게 되어 반갑고 감회가 깊습니다. <소래역사관> 건립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 한 번 왔다간 적이 있어서 궁금했는데 마침 잘 됐어요. 새우젓 냄새, 게 냄새, 갯벌 냄새가 비릿하게 풍기는 생선시장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앉아 천도복숭아 빛깔로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80년대의 추억이 새삼 흑백판화처럼 떠오릅니다. 고층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현대식 도시로 바뀌어버린 오늘의 소래풍경을 보게 되니,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하게 됩니다. 가난했으나 정겨웠던 옛 포구 사람들 냄새가 불현듯 그리워지네요.

 

  정남석:아무래도 선생님의 시 「내 마음의 협궤열차․1」을 한 번 읽어보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장난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떠난다

 

너의 간이역이

끊어진 철교 그 너머

아스라한 은하수 기슭에

있다 할지라도

바람 속에 말달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

열띤 기적을 울리고

또 울린다

 

바다가 노을을 삼키고

노을이 바다를 삼킨

세계의 끝

그 영원 속으로

마구 내달린다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

내 철없는 협궤열차

 

오늘도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한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

r1.jpg

 

  이가림:모형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협궤열차이긴 하지만, 시를 정 시인이 읽는 걸 들으니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나는 듯하네요. 역시 경험적 사실에 바탕을 둔 삶과 사랑의 노래는 뭔가 촉촉한 감흥에 젖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군요.

 

  정남석:계간 ≪리토피아≫를 발행해 오던 장종권 주간께서 자매지 ≪아라문학≫을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의 상징인 ‘아라’(바다)를 타이틀로 인천지역에 보다 깊히 뿌리박은 토박이 문학을 지향하는 또 하나의 문예지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요즘 많은 시전문지, 문예지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창간, 폐간을 거듭하는 판에, ≪아라문학≫이 새로이 출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가림:미운 친구를 망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문예지를 만들어보도록 꼬드기면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지요. 그만큼 문예지를 이끌어나가는 일이 힘겹고 험난하다는 것이겠지요. 장종권 선생이 ‘문화의 변방지대’라는 인천 땅에서 ≪리토피아≫를 통권 51호까지 낸 걸 보면, 그 뚝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라문학≫의 출발 역시 그런 열정에서 시도된 모험이라고 봅니다. 난바다에 태풍이 몰아칠 게 두려워 아예 배를 만드는 걸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서운 파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닻을 올려 도전하는 자만이 희망봉에 닿을 수 있습니다. ≪아라문학≫이 ≪리토피아≫가 이미 일궈놓은 토대를 바탕으로 힘차게 전진하리라고 기대합니다. 인천문학 발전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정남석:인천지역에 삶터를 정하고 살아온 시인으로서, 지역문학이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과 진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가림:고견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해보도록 하지요. 구조인류학의 대가인 레비스트로스가 커뮤니케이션의 과잉과 결핍이란 차원에서 세계화 또는 국제화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목격하게 되는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획일화됨으로써 고유한 각각의 민족 정체성과 문화전통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현저히 결핍되면 인류 전체의 보편성에서 고립되어 소외됩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지적한 것이 바로 이 점일 겁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적정한 균형 잡기를 통해 민족 정체성과 인류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지역문학의 문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은 땅길, 바닷길, 하늘길이 열려 있는 동아시아의 중추 도시이며 남북 교류의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수도 서울의 현관입니다.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운명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 만큼 이제 인천 ‘여기’, 이곳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체 없는 세계문학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허황된 미망에서 벗어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즉 ‘세계 지역화’를 향해 구체적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인천의 토착적 삶과 전통에 철저히 밀착한 진실의 탐색, 거기에 혼신을 다하는 문학적 내기를 걸어야 합니다. 문학을 하면 만두 세 개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소설을 쓰게 됐다는 중국작가 모옌莫言이 만해대상을 받으러 서울에 왔을 때, 5일간 숙식을 같이하며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붉은 수수밭을 비롯한 그의 모든 소설들이 자신이 태어났고 자란 산뚱성 까오미현 이외의 장소를 무대로 다룬 적이 없으면서도 노벨문학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음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인천지역 작가와 시인들도 괜히 기죽지 말고 인천과 황해를 소중한 문학현장으로 삼아, 그 삶의 실체와 역사를 빼어나게 드러낸다면 당당히 세계문학의 높이에 오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정남석:선생님께서는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빙하기」가 당선되어 데뷔한 이래 줄기차게 시작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어언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첫 시집 빙하기를 비롯해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순간의 거울, 슬픈 반도, 내 마음의 협궤열차, 바람개비 별 등을 펴내시는 동안 시적 도정도 상승곡선을 그리며 변모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자신이 걸어온 시적 궤적에 대해 정리해 주시면 독자들이 선생님의 시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가림:자신의 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지요. 그러니 연구가들이나 평론가들이 나의 시세계에 대해 쓴 글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는 게 객관적일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발표된 이가림론이 상당수 있는데, 그 중 최원식 교수의 명료한 평가가 다른 비평가들의 견해와 대체로 일치되는 것이어서 그대로 전해드릴까 합니다. ‘이가림은 첫 시집 빙하기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세련된 압축적 이미지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모더니즘 풍으로 시작활동을 전개했으나, 70년대부터 차차 사회의식 ·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현실주의적 색채가 강한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는 경직된 참여시와는 달리, 단단한 구조물로서의 시적 형상성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균형 잡힌 “윤리적 리리시즘”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의식의 단계를 거쳐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조그만 사물들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서 생명의 비밀, 또는 우주적 교감의 세계를 파헤치는 보다 근원적인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어요. 나로서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종합적 논평으로 보입니다.

 

  정남석:그럼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주로 강조하시는 시적 주장, 혹은 시론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r7.jpg

  이가림:시인은 시로써 시에 대한 생각 즉 시학을 말해야 하는 것이지만, 굳이 지향하는 바의 시론을 말해 달라 하니 몇 마디 하겠습니다. 내가 걸어왔고, 걷고 있고, 걸어가려는, 시의 길 위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교감交感의 시학’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의 아버지 보들레르가 말한, 이른바 ‘상응’의 시학과 용어상 혼동될 우려가 있지만 분명히 다른 개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감交感’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현상학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선 어떤 사물에 대해 사랑을 하지 않으면 교감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고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교감할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사물의 거죽이 아니라 알맹이, 그 깊이를 꿰뚫어 보고 거기에 소중하고 숭고한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물을 안이하게 표피적으로 슬쩍 봐서는 좋은 시를 캐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과 사물의 세계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시각’의 맑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삶의 진실을, 그 진실의 정수精髓를 아주 정확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이 없는 순수 지각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시인詩人은 시인視人인 것입니다. 사물과의 정다운 교감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시인인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일 지라도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아쉬움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물과 나 자신이 나누어 가진 어떤 정다운 관계, 즉 ‘우정’이 있었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만 우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사물에게도 우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물과의 교감, 그 우정의 느낌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표현했을 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커다란 동화同化, identification의 기쁨에 떨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찮은 작은 사물과 정다운 대화를 나눌 때 생생하고 아름다운 포에지가 태어납니다. 참다운 내적 울림으로서의 교감을 전해주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 삼류 유행가사에 지나지 않는 넋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가 ‘감상적 속내 이야기를 마구 털어 넣는 요강’(플로베르의 말)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내 세 번째 시집 순간의 거울을 내면서, ‘이제는 자잘하고 고달픈 사람의 일뿐만 아니라 우주적 교감의 경이로움에 눈을 떠, 생명의 뜻을 캐낼 줄 아는 쟁기꾼으로서의 시인이 되고 싶다.’고 머리말에 쓴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이제까지 걸어온 나의 시적 도정 전체를 다 부정하고 새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뜻으로 말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른바 프랑스 상징주의자들, 특히 보들레르가 말한 ‘상응’의 시학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들여, 거기에 바탕을 둔 우주관, 또는 자연관으로 세상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순간의 거울․8-항아리」 같은 작품을 괜찮은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겁니다. 순전히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낭만주의적 기법으로 그럴싸하게 표출한 단순한 서정시의 ‘아름다움’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항아리’라는 사물에 대한 일종의 ‘현상학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우주적 상상력에 의한 깊은 인식의 차원을 노래하는 게, 근래 내 시적 방향입니다.

 

누가 밤새 길어다 부었는가

뒷뜨락 항아리에 가득 고인

저 찰랑이는 옥빛 눈물의 은하수

―「순간의 거울·8-항아리」 전문

  r2.jpg

  빗물이 고여 있는 항아리를 바라 볼 때, 그것을 단순한 대상(오브제)으로만 보게 되면 ‘우주론적 교감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든 물건이든, 같은 중요성과 가치를 지닌 동등성의 위치에 놓고 볼 때 비로소 진정한 ‘교감과 대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과 물건이 다 같이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를 지닌 생명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할 때 참다운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감의 세계는 ‘신비주의적인’ 우주관에 기대어 있기보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대상, 즉 사물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현상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남석: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교감’의 시학을 얘기해주셔서 독창적 시관詩觀이란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사물인식, 또는 세계인식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시론이라 여겨집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시란 진실의 과녁을 뚫는 정확한 언어의 탄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에밀 슈타이거가 말한 서정시의 본질 즉, 회감回感의 시학에 전적으로 동의하신다 했는데, 그 회감의 시학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가림:회감은 회 떠먹기 좋은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지요. (웃음) 에밀 슈타이거가 시학의 근본개념에서 서정시의 특징을 요약하는 가운데 사용한 중심적 용어 중의 하나이지요. ‘Erinnerung’, 즉 ‘회감回感’으로 번역하는 이 말은 원래 ‘회상한다’ 혹은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슈타이거는 이 용어를 나름대로의 깊은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것을 회상한다는 뜻이 아니라 비록 과거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현재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개진되는, 그리하여 회상의 주체가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속에 활발히 참여하고 공감하는, 그러한 사고 행위를 가리킵니다. 생각하는 주체와 생각되는 대상 사이에 간격이 없이 현재적 순간에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면에서 바슐라르가 말하는 ‘단 한 순간에 있어서의 우주적 통합’이나 이브 본느푸아가 말하는 ‘현존presence’과 상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남석:5년 전쯤 거주지와 시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예로 드시면서, 자신이 터 잡고 사는 생활의 현장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 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고향에 대한 요나콤플렉스 같은 것을 지니고 계신 건 아니신지요?

 

  이가림:「내 마음의 협궤열차」, 연작, 「2만 5천 볼트의 사랑」, 「바지락 줍는 사람들」, 「수차 위의 생」, 「밴댕이를 먹으며」, 「나문재」,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 등의 작품들은 인천 일대와 황해의 토착적 현실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삭막한 도시 공간의 회색 아파트에서 부초浮草처럼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사는 나 같은 시인과, 농촌이나 섬의 토담이 있는 시골집에 사는 시인은 그 시적 어조와 주제가 전혀 다를 것입니다. 공간의 시학의 저자 바슐라르가 말한 바, 후미진 고향의 오두막집에,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감싸이듯이 아늑한 휴식의 세계, 즉 행복의 세계에 감싸이고 싶은 근원적 욕망, 다시 말해서 ‘요나 콤플렉스’를 지닌 시인의 꿈은 분명 아파트도 아니고, 주상복합 빌딩도 아니고, 빌라도 아닌,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의 아파트라는 성냥갑 속 수인囚人으로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이니, 이곳에서 경험하고 상상한 것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지요.

 

  정남석:선생님은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신 실력파 학자이십니다. 특히 19, 20세기 프랑스 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 물과 꿈, 꿈꿀 권리 등 ‘문학의 상상력’에 관한 주요 저서들을 번역 소개한 번역문학가로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들레르, 랭보, 발레리, 엘뤼아르, 본느푸아 등에 관한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하시기도 했습니다. 평생 프랑스 문학과 함께 살아오셨기에 은연중 불문학이 선생님의 시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데요.

 r3.jpg

  이가림:나는 젊은 날 프랑스 말과 문학을 가르치면서 밥을 벌어먹고 살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대학 강단에서 30여년 넘게 불문학을 가르치는 훈장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대의 젊고 빛나는 눈망울들 앞에서 프랑스 낭만주의 시가 어떻고, 상징주의 시가 어떻고, 현대시가 어떻고,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시를 해석해 주고 설명해주고 하는 일이 늘상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연구업적을 쌓기 위해 의무적으로 시인론을 써야 하는 일은 힘겹고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보들레르, 랭보, 아폴리네르. 엘뤼아르, 본느푸아 등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깊이의 시학’은 나의 시 쓰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이브 본느푸아Yves Bonnefoy(1923∼ )의 ‘현존presence’의 시학을 만나면서 내가 느낀 동류항적同類項的 교감은 에로틱하다 할 정도였습니다. ‘생성임과 동시에 소멸인 현존’의 실체를 언어로 포착하려는 진실 탐구의 끝없는 시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내가 본느푸아의 시집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을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 소개하기도 하고, 유학 시절 파리에서 직접 만나, 시란 ‘진실에의 접근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관詩觀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 것은 내가 불문학 교수라는 직업을 가졌었기에 얻게 된 소중한 선물이라 여겨집니다.

 

  정남석:이브 본느푸아 시인을 상당히 좋아하시나 봄니다. 그 분에 대해 에로틱하다 할 정도로 동류항적 교감을 느낀다 하실 정도이니 말입니다. 본느푸아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이가림:내가 본느푸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말 무렵입니다. 물론 그가 폴 발레리 이후 프랑스 시의 물줄기를 잇는 세대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풍문을 들은 바 있었으나, 그 이전엔 본느푸아의 시를 구체적으로 읽고 감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 ‘현대문학사’에서 발간한 ≪시문학≫ 창간호에 「두우브는 말한다」 외 4편의 본느푸아 시를 처음 번역 소개하게 되었고, 그 후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어 프랑스 현대 시인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불문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시인을 연구대상으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쓴 논문의 제목이 「돌의 이미지를 통해서 본 본느푸아의 상상적 세계」(1978)였는데, 제법 테마비평다운 방법론을 구사한 패기만만한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불문학도로서의 전문적 접근을 계기로 해서, 본느푸아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한층 깊이 갖게 되었고, 1987년에는 작고한 최하림(당시 열음사 주간) 시인의 권유로, 본느푸아 시선집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을 펴내기까지 했습니다. 본느푸아의 첫 시집 두브의 운동과 부동에는 「하나의 돌」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붙인 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다른 시집들 속에도 돌의 이미지가 빈번히 등장하며, 세 번째 시집의 제목은 아예 글씨 씌어진 돌, 즉 비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본느푸아가 얼마나 깊이 돌의 몽상에 빠져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느푸아의 돌의 시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돌을 주제로 한 시를 몇 편 썼습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한 「돌의 언어」가 공교롭게도 돌을 시적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계시적 의미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그 외에 「돌」, 「또 하나의 돌」, 「돌의 꿈․1」, 「돌의 꿈․2」, 「오래된 돌확」 등은 ‘돌’이라는 낱말 자체가 직접 제목으로 쓰여진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나의 「돌」이란 시는 소멸이면서 생성인 순간 또는 찰나를 포착함으로써 영원을 노래하는 이른바 본느푸아적 ‘현존의 시학’과 맥을 같이 하는 시적 탐구의 동질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애드거 앨런 포에게서 형제적인 정신성을 우연히 발견하고 열광했던 보들레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향을 끼치는 쪽과 영향을 받는 쪽이라는 주종관계 내지는 우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동류항적인 시적 사유의 상동성이 있는 것이죠.

 

  정남석:선생님은 산문집 사랑, 삶의 다른 이름, 미술과 문학의 만남, 흰 비너스 검은 비너스 등을 펴낸, 단단하면서도 유려한 필치의 빼어난 산문가이시기도 합니다. 특히 미술과 문학의 만남은 출간 당시 예술 장르 부문에서 1년간의 베스트셀러로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과 미술에 대한 남다른 조예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시인․작가와 화가의 내밀한 정신적 교감의 세계를 치밀하게 밝혀낸 선구적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미술과 문학의 만남의 저자로서 시와 그림의 근원적 친연성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r5.jpg

  이가림:시와 그림,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근원적 친연성을 최초로 명확히 언급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입니다. 그는 ‘시는 말하는 그림이며, 그림은 말없는 시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이 말은 두 장르를 미학적 차원에서 동일한 것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랜 전통의 동양미학에서 줄곧 접하게 되는 시화일체詩畵一體 혹은 시화일률詩畵一律의 견해에 그대로 이어진다 하겠습니다. ‘시는 형상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형상 있는 시無形畵 有形詩’라는 동양적 표현과 시모니데스의 말은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고전주의 시대 이래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져 왔던 호라티우스의 ‘시와 그림은 같은 것Ut pictura poesis’이라는 정의에 대해, 붉은 구름-시학에 관한 시론試論에서 근본적인 모순점을 지적한 본느푸아에 의하면, 시와 그림의 동등성을 더 이상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느푸아는 시가 그림보다 우월하므로 두 장르가 가치 면에서 결코 동등해질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시가 그림을 식민화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동등성의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시를 ‘말하는 그림’이라 했을 때, 시가 그림으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그림 요소들이 강조되어 시가 그림처럼 시각화되어 버립니다. 또한 그림을 ‘말 못하는 시’라 했을 때, 그림이 시로 변형될 수 있어 시가 그림을 ‘식민화하게’ 됩니다. 이 경우, 각각의 시행이 지니고 있는 언어의 음성적 특성이 배제되어 버리는 허점을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의 작가들이 내린 ‘시와 그림은 같은 것’이라는 정의는 시의 언어 기호적 가치와 그림의 물질적 가치를 동일시해 버린 모순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본느푸아의 근본적인 예술 시학적 성찰에 근거하여 이제 시와 그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정남석:너무 진지한 이야기만 나눈 것 같습니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단의 대선배이신 고 김구용 선생께서 술이 거나해지시면 ‘이가림. 내 원수를 꼭 갚아주라’ 라는 말씀하셨다는데 그 원수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또 그 원수는 갚아드렸는지요?

 

  이가림:그건 특정한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용 선생 당신이 쓰려고 했으나 끝내 쓰지 못한 회심의 역작을 네가 대신 꼭 써서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후배 시인에 대한 일종의 애정 표현을 하신 것이죠. 사실 나한테만 원수를 갚아달라고 한 줄 알고 내심 좋아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강우식 시인을 비롯해서 여러 후배 시인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실망스럽긴 했지요. 그럼에도 첫 시집 빙하기의 내지內紙를 독특한 구용체丘庸體 글씨로 빛내준 소중한 인연으로 김구용 시인은 내 뇌리에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정남석:더 많은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다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여쭙는 걸 빠트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니까요.

이가림:건강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서, 하고자 했던 계획을 과감히 줄였습니다. 그래도 약속했던 일만큼은 조금 지체되더라도 마무리할 작정입니다. 시집 바람개비 별 이후, 여기저기 발표한 작품들을 정리하여 새 시집 돌꿈(가제)을 낼 생각입니다. 일단 시집으로 묶어 시집을 보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느푸아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집 눈의 처음과 끝 번역도 올해 안엔 끝마칠 작정이에요.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테마인 문학과 미술의 만남 제2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겠지요. 영혼을 담는 그릇인 몸을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 같아요.

 

  정남석:무더운 날씨에 장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이 호전되셔서, ‘영원한 아마디스’로서 변함없는 열정 바이러스를 선생님 둘레에 퍼뜨리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가림:소래에서의 뜻 깊은 대화,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을 마친 뒤, 오랜 만에 근처에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 중 한 곳으로 선생님을 모셨다. 그 자리에는 장종권 주간을 비롯해서 이외현, 정치산, 박하리, 이연희, 김영덕 시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횟집에 들어서자 선생님은 ‘교감의 시학’이니, ‘회감의 시학’이니 하는 무거운 이야기에서 벗어난 게 홀가분하신 듯, 이내 거침없는 유머로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셨다. ‘자, 이제 어려운 회감의 시학은 제쳐놓고 맛있는 횟감의 미학을 즐깁시다.’

  r6.jpg

 

이가림 시인의 인천 테마시

 

바지락 줍는 사람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내 마음의 협궤열차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장남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떠난다

 

너의 간이역이

끊어진 철교 그 너머

아스라한 은하수 기슭에

있다 할지라도

바람 속에 말달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

열띤 기적을 울리고

또 울린다

 

바다가 노을을 삼키고

노을이 바다를 삼킨

세계의 끝

그 영원 속으로

마구 내달린다

 

츨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

내 철없는 협궤열차

 

오늘도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

 

 

 

 

 

수차水車 위의 생

 

 

눈 쓰린 땀방울 훔치며

훔치며

걷고 또 걸어서

가까스로 다다른 땅 끝엔

언제나 아픈 외발로 디뎌야 하는

낭떠러지뿐

 

한 줌의 소금을 위해

한 가마니의 가난을 위해

우리 모두는

해가 지지 않는 수차水車 위에서

제 그림자를 밟고

또 밟는 걸까

 

땡볕 아래

눈 쓰린 땀방울에 젖어 걷는 자여

그대 부질없는 인생

한없이 바닷물을 퍼 올리고

또 퍼 올리노라면

언젠가

열명길에 들어

눈물로 빚은 소금 한 부대는

내놓을 수 있으리

 

 

 

 

2만 5천 볼트의 사랑

 

 

 

나는 지하철을 사랑한다

2만 5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인천행 지하철에 흔들릴 때마다

2만 5천 볼트의 사랑과

2만 5천 볼트의 고독이

언제나 내 안에 안개처럼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징그러운 발을 감추고

안 보이는 한 쌍의 촉각을 세운 채

음습한 곳에 묻혀 사는 벌레들을

마구 잡아먹는

한 마리 길 다란 지네

 

그 꿈틀거리는 몸뚱어리 마디마디

환히 불 밝힌 방안에서

학생 공원 선생 군인 회사원

창녀 수녀 신문팔이 소매치기

이 땅의 눈물겨운 살붙이들 모두가

서로 뺨을 맞대고

서로 어깨를 비벼대고

 

서로 밀치고

서로 부추기고

서로 껴안으며

즐거운 지옥의 밧줄에 묶여 끌려간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쓰러지는

그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물결 속에

몸을 던져

나 또한 즐거이 자맥질한다

 

너의 살결에

나의 살결이 닿고

너의 숨결에

나의 숨결이 섞이는

황홀한 세상

 

거대한 군중의 파도가

물거품의 자취조차 없이

나의 파도를 삼킨다

 

나는 지하철을 사랑한다

2만 5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인천행 지하철에 흔들릴 때마다

2만 5천 볼트의 사랑과

2만 5천 볼트의 고독이

 

언제나 내 안에 안개처럼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

 

 

소래포구 어디엔가 묻혀 있을

추억의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도

우연히 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셈을 슬그머니 감춘 채

몇 컷의 흑백풍경을 훔치러 갔다

가을은 서둘러 떠나버리고

미처 겨울은 당도하지 않은

서늘한 계절의 어중간

버젓이 갯벌 생태공원으로 둔갑해 있는

옛날 소금밭에 들어가서

찰칵, 찰칵, 찰칵,

사정없이 풍경을 자르는

재단사의 가위질 소리에

빼빼 마른 나문재들이 어리둥절

몸을 웅크렸다

시커먼 버팀목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소금창고와

버려진 장난감 놀이기구 같은 수차水車

시들어가는 홍시빛 노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

마른 뻘밭에 엎드린

나문재들의 흐느낌 소리를

엿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을 베끼러 갔다가

오히려 풍경의 틀에 끼워져

한 포기 나문재로

흔들리고 말았음이여

 

 

 

 

밴댕이를 먹으며

 

 

무게 없는 사랑을

달아보고 또 달아보느냐

늘 입속에 말을 우물거리고만 있는

나 같은

반벙어리 보라는 듯

영종도 막배로 온 중년의 사내 하나

깻잎 초고초장에

비릿한 한 움큼의 사랑을 싸서

애인의 입에 듬뿍 쑤셔 넣어준다

하인천역 앞

옛 청관으로 오르는 북성동 언덕길

수원집에서

밴댕이를 먹으며

나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그렇지 그래

사랑은

비릿한 한 움큼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서로 입에 싸서 넣어주는 일이지……

 

 

 

  r8.jpg

나문재

 

 

누구라도

밀물 드는 저녁 갯벌에 서서

나문재 밭을 보거든

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

바라보지 말 일이다

 

기쁜 숨 몰아쉬며

익사하는 태양이

각혈하듯 검은 피 쏟아놓아

갯벌이 팥죽으로 어두워진 뒤에도

나문재 뜯으러 간 어메

영 돌아오지 않아

 

단발머리

깡마른 막내 고모의 등에 업혀

옴마한테 얼릉 가아,

옴마한테 얼릉 가아,

보채고 또 보채는

새까만 코흘리개 하나 있었으니

 

배고파서

부엉이 새끼같이 눈 껌벅이는

한밤중

 

쉰 나문재 몇 줄기

씹어 삼키고서야

가까스로 잠들었으니

 

꿈속에 무시로 떨어지는 별똥별들

하얀 튀밥 되어

머리맡에 수북이 쌓여갔느니

 

누구라도

밀물 드는 저녁 갯벌에 서서

나문재 밭을 보거든

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

바라보지 말 일이다

 

 

 

이가림 자술년보

1943년 만주 열하熱河에서 부친 이용남과 모친 권혁례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 본적은 전북 정읍. 본명은 이계진李癸陳. 전주 이씨 효령대군 22대손으로 주로 전주에서 성장.

1956년 전주 중앙초등학교 졸업. 크레파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6학년 담임 공순도 선생께서 ‘이게 진짜’라는 별명으로 출석을 불러주시던 기억이 잊히지 않음.

1959년 전주 서중학교 졸업. 공수空手(오늘날의 태권도)를 배움.

1962년 전주고등학교 졸업. 국어를 가르쳤던 시인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 등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 눈뜸. 3학년 때, 전국고교문예현상(전북대학교 신문사 주최)에 응모한 시 ‘철로부근’(신석정 선생 심사)이 당선됨. 성균관대학교 문리대 불문과 입학. 특히 손우성(해외문학파) 선생의 감화를 많이 받음. 한편 진념(전 재정경제부 장관), 오홍근(전 국정홍보처장),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강인한(시인) 등과 ‘원시림’ 동인 활동.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돌의 언어」 가작 입선(조지훈 선생 심사). 육군에 입대 카투사로 복무하다가 1966년 제대.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빙하기」 당선(조지훈, 김현승 선생 심사). ‘신춘시’ 동인에 참여, 박봉우, 황명, 강인섭, 윤삼하, 김원호, 이근배, 이탄, 조태일, 권오운, 강인한, 윤후명, 박정만, 김종철 등과 동인 활동.

1970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불문학과 입학. MBC-TV 프로듀서로 입사하여 1974년까지 근무.

1971년 김원옥(숙명여대 불문과 졸업)과 결혼. 첫째 딸 지원知爰 태어남.

1973년 성균관대 대학원 불문과 졸업. 첫 시집 빙하기(민음사) 출간. 둘째 딸 지영知玲 태어남.

1975년 숭전대·성신여대 등에 출강.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문예출판사) 번역 간행.

1977년 숭전대학교 불문과 전임강사. 김종철(현 녹색평론 발행인) 교수를 만남.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문예출판사) 번역 간행.

1978년 현대 프랑스 시론집 불사조의 시학(정음사) 번역 간행.

1980년 일본 시코쿠四國 대학 초청 ‘한일학술대회’에 참석. ‘한용운의 상상적 세계’ 발

표. 일본, 대만, 태국, 홍콩, 싱가포르 여행. ‘가스통 바슐라르의 물과 꿈(문예출판사), 꿈꿀 권리(열화당) 간행.

1981년 시집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창작과비평사) 출간.

1982년 인하대학교 불문과 조교수. 프랑스 정부초청, 파리 4대학Sorbonne에서 불어교수법 과정 수료. 남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 여행.

1983년 쟝 꼭또의 데상 시집 내 귀는 소라껍질(열화당), 가스통 바슐라르의 풍경 번역 간행.

1984년 인하대학교 불문학과 부교수. 쥘 르나르의 홍당무(문예출판사) 번역 간행.

1985년 프랑스 루앙Rouen대학교 제3기 박사과정 입학.

1986년 프랑스 루앙 한국학교 교수(1986~89).

1987년 이브 본느푸아 시선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열음사) 번역 간행. 이브 본느푸아 시인 파리에서 만남.

1989년 루앙대학교에서 조셉 마르크 벨베Joséphe-Marc Bailbé 교수의 지도하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학 연구로 불문학 박사 학위 받음. 데카당스의 상상력의 저자로 유명한 장 피에로Jean Pierrot 교수의 지도하에 프랑스 현대시인 연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 여행. 시집 슬픈 반도(예전사) 출간.

1993년 작품 「석류」로 제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1994년 캐나다 요크대학 국제학술대회 참석, ‘Translation of French Symbolist Poetry during the Formative Period of Modern Korean Poetry’ 발표. 중국작가협회 초정 한·중문학세미나 참석. ‘한국시와 한의 미학’ 발표. 중국의 북경, 연변, 소주, 항주, 상해 등지 여행(백두산 천지 답사). 인천 민예총 초대회장

1995년 시집 순간의 거울(창작과 비평사) 출간.

1996년 제6회 편운문학상 수상. 파리 7대학에서 객원교수Maître de Conférencesassocié로 1년간 강의.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 여행.

1997년 불역시집 Le front contre la fenetre,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Paris, L'Harmattan)

출간. 알랭 주프루아Alain Jouffroy 시인과 현지 대담. ‘시인아, 서랍 속에서 뛰쳐나오라’(시와 시학) 발표.

1998년 산문집 사랑, 삶의 다른 이름(시와 시학사) 출간. 인천작가회의 초대회장. 인하대 출판부장.

1999년 정지용 불역시선집 Nostalgie, 향수(Paris, L'Harmattan) 조르주 지겔메이어 교수와 공역 간행. 제7회 후광後廣문학상 수상. 대학교과서 문장작법(인하대학교 출판부)에 「반항과 모험의 길-샤를르빌의 랭보를 찾아서」 수록.

2000년 문학과 미술의 만남(월간미술사) 출간. 시집 내 마음의 협궤열차(시와시학사) 출간.

2001년 인하대 문과대 학장. 성균문학상 수상.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기념 ‘고창 고인돌휴게소’ 상징조형물 시비 세움.

2002년 가스통 바슐라르의 순간의 미학(영언문화사) 번역 간행. ‘시의 날’(프랑스 문화예술학회) 참가, 알랭 주프루아 · 클로드 에스트방 · 질 주아나르 · 카티 라팽 · 고은 · 김광규 시인 등과 시낭송. 수능 독해서 예술독해 지문을 찾아서(문학동네)에 「인간파괴를 고발한 예술가의 양심-피카소와 엘뤼아르」 수록.

2003년 윤대녕 불역소설 Voleur d'Oeufs, 달걀도둑(Paris, L'Harmattan 출판사) 조르주 지겔메이어 교수와 공역 간행. 고교검정교과서 문학(하)(교학사)에 「인간파괴를 고발한 예술가의 양심-피카소와 엘뤼아르」 수록.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2004년 보들레르에서 생텍쥐페리까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어머니, 그 이름 안에는 바다가 있다(문학수첩) 번역 간행. 비평적 에세이 흰 비너스 검은 비너스(문학수첩) 출간.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만해축전) 참가, 웰레 소잉카(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장 -미셸 몰푸아(프랑스 신서정주의 기수) 등의 시인들과 금강산 시낭송. 아시아 환태평양시인대회(Asian & Pan-Pacific Poets Conference, 도쿄) 참가, 한국측 대표로 기조강연(‘생명의 소리를 세계에’). 재미시인협회(미국 LA) 초청 문학 강연(‘한국현대시의 흐름과 갈래’).

2007년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열화당) 신개정판 출간. ‘2007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전주’ 시낭송 참여. 계간 ≪시와 시학≫ 편집주간 직을 맡아 2010년

말까지 수행.

2008년 작품 「귀가, 내 가장 먼 여행·2」로 제6회 유심惟心작품상 수상. 도라산 평화공원 상징조형물 「개벽」(조각: 김연수) 시비 세움. ‘21세기 국제학술심포지엄’(만해사상실천선양회) 집행위원장.

2009년 인하대학교 문과대 서양어문학부 정년퇴임.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대통령) 수훈.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국제교류위원장. 펜번역문학상 수상. 만해시인학교

(백담사 만해마을) 교장. ‘향수30리 시문학 아트벨트’(충북 옥천군 장계)에 「석류」 시비 세움.

2010년 ‘2010 세계작가페스티벌’(단국대 주최) 시낭송 참여. 향수시인학교(지용회) 교장.

2011년 시집 바람개비 별(시학사) 출간. 활판인쇄본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시월) 출간. 미동부문인협회(뉴욕) 초청 문학 강연(‘한국현대시에 끼친 프랑스시의 영향’). 고교검정교과서 문학(천재교육)에 시 「석류」 수록.

2012년 제10회 영랑시문학상 수상. 우현又玄예술상 수상

2013년 한국대표명시선100 모두를 위한 시간(시인생각) 출간. 현재 인하대학교 문과대 프랑스문화과 명예교수.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