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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근작조명/김보숙/뱀눈그늘나비 외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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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8,027회 작성일 14-03-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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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조명/김보숙

뱀눈그늘나비 외 8편

 

  박제 액자 속 뱀눈그늘나비가 사라졌다. 잠결에 잠별했다. 아프게 꽂아 둔지 모르고 날개에 박아둔 옷핀이 못이 되어 하늘에 박힌다. 하늘을 뒤집으면 호두가 떨어졌다. 호두나무에 목을 매단 두더지는 죽어서도 땅을 팠다. 오그라든 손으로 흙을 주워 먹던 박가네 셋째 고모처럼 죽어서도 땅을 팠다. 뒤집혀진 하늘에서는 백색의 포도주 같은 노을이 흐른다. 입을 벌리고 노을을 받아먹는 사람들의 목청에는 하얀 옷핀이 차례로 박혀갔고 입 속에는 노을이 번져갔다. 양 날개에 뱀눈을 문신한 나비를 찾습니다. 나에게는 호두가 많아요. 내가 가진 호두를 전부 드릴게요. 뱀눈그늘나비는 나의 오래된 애인이죠. 박제 액자 속으로 검은 알이 슨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문양으로 검은 알이 슨다. 고양이 왈츠에 발을 맞추던 나의 구두 속에서 잠이 들던 뱀눈그늘나비. 날개 속에 어둠을 훔쳐와 심장 위에 내려놓고 조용히 날개를 접던.

―리토피아(2011년 겨울호)

 

 

 

 

변신byeonsin

 

 

  소년 앨리스가 소녀 앨리스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년 앨리스의 보조개는 그대로였지만 눈썹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눈동자 색을 따라서 눈썹이 물들었고, 눈썹 색을 따라서 혀가 물들었습니다.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던 남동생은 소년소녀 앨리스의 브래지어끈을 자르고 티팬티끈을 자르고 긴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슬퍼하지 마, 네가 아침에 먹은 굴은 주기적으로 성이 변해, 네가 아침에 먹은 송사리도 나이에 따라 성이 변한단다. 소녀 앨리스는 공기의 요정 실프의 몸짓으로 고통에 관한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소녀 앨리스는 팔굽혀 펴기를 자랑하는 동급생들의 등짝을 발로 차고 2호선 초록색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 지하상가에 내려 초록색 하이힐을 고르고 장님들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가볍게 탭댄스를 추었습니다. 앞에 떨어진 동전 몇 개를 주워 소녀 앨리스는 우표를 샀습니다. 내일까지 도착할 수 있나요. 소녀 앨리스는 미국에 사는 소녀 앨리스에게 편지를 씁니다. dambae han gae piman billyeo jullae?

―리토피아(2011년 겨울호)

 

 

 

 

마차, 낙타, 썰매, 당나귀 그리고 자동차

―빨간 병 속의 모시나비

 

 

  할머니는 빨간 병을 조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빨간 병에 걸리면 모시나비가 목구멍에 걸려 한동안 아플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명한 날개는 속에 찬 아픔을 다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칫솔을 못처럼 갈은 삼촌은 조국이라는 말을 쓰고 입 속에 거품을 물고 대중이라는 말을 쓰고 애자 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빨간 병에 걸린 애자 언니의 얼굴에는 올긋볼긋 석류씨가 박혀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모시나비를 삼킨 탓이라며 쇠붙이 같은 긴 손가락으로 모시나비를 찾아 뱃속을 휘저었습니다. 킁킁 자고 있는 자궁이 딸꾹딸꾹 흔들렸습니다. 슬로건을 찾기 전에 우리는 동굴 같은 방에 동거하며 칫솔을 못처럼 갈았습니다. 빨간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낙타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썰매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당나귀를 타고 온 그가 떠나는 동안 애자 언니의 배는 부르고 불러 뜨뜻한 모시나비를 토해 냈습니다.

―리토피아(2011년 겨울호)

 

 

 

 

마리아상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다락방

 

 

  천장에 그려진 계단을 밟고 돌돌 말린 아들의 팬티를 찾으러 다락방으로 들어간 베트남 엄마는 최초의 밀실을 발견하고 최초의 기도를 올린다. 베트남 엄마는 베트남 엄마가 되지 못하고 베트남 엄마는 베트남 엄마가 되었다. 다리를 조금만 오므리면 다락방에 버려 놓은 소파와 쌀통 사이에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치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멀리 있고, 가까운 곳에는 마리아상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신은 바쁘십니다. 고해는 짧게 해주십시오. 마리아상에 붙은 바삭바삭한 모기를 마리아상 손 위에 올려놓고, 죽음이여. 주금이여. jug-eumijyeo. 망고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던 마더가 가르쳐준 다중언어는 다중에게 외면당하고, 다중은 모국어를 가져오라 하고, 모국어는 마더muder뿐.

―리토피아(2011년 겨울호)

 

 

 

 

낭만적 엔딩에 관하여

 

 

  연주를 끝내고 이빨로 기타줄을 물어뜯는 너의 습관은 땅콩 몇 알에도 체하기를 반복하는 내 아버지와 그럼에도 간장 종지에 땅콩을 수북하게 쌓아 놓기를 반복하는 내 어머니의 습관을 닮았는데. 이빨 사이에 낀 기타줄을 뺄 때면 들리던 삐그덕 소리가 부스스 땅콩을 까던 소리처럼 들려와 아 버 지 제 발 땅 콩 좀 그 만 까 드 세 요 제 발. 유독 간지럼에 약한 아버지를 간질일 때면 얘 야 나 좀 따 다 오. 내 아버지를 따고 나온 검붉은 피 한 방울은 내력을 숨기지 못하곤 했었는데, 연주를 끝내고 이빨로 기타줄을 물어뜯는 너의 습관은 바늘을 쥐고 땅콩을 까먹는 내 아버지의 습관과 검붉은 내력을 지우려는 내 어머니의 습관과 닮았는데.

―애지(2012년 봄호)

 

 

 

 

달이 삐긋

 

 

  너의 왼쪽 발목이 삐긋하여 복숭아뼈가 파랗게 부어오른 날 나는 너의 발목을 흐르고 있는 착한 핏줄을 보았네. 나는 핏줄은 물보다 진하여 독한 줄로만 알았었네. 발목을 지나가는 착한 핏줄은 둥글게둥글게 부풀어 올라 복숭아뼈를 푹신하게 해주었네. 내 아버지의 폐를 지나간 적 없는 착한 핏줄은 파래서 더 아름다웠네. 삐끗한 달을 지나가는 착한 핏줄이 너의 왼쪽 부은 발목 위로 지나갈 때 나는 달을 보고 울던 내 어머니가 내 아버지의 폐에 얼굴을 묻고 우는 밤을 기억하네. 달이 삐끗하여 고통을 느끼는 밤을 기억하네. 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에 귀를 대고 내 아버지의 밤을 지키던 내 어머니가 내 아버지의 착한 핏줄이었음을 알아내네. 달이 삐끗한 밤엔 착한 핏줄이 흐르네.

―미네르바(2012년 봄호)

 

 

 

 

오아시스 배달원

 

 

  그니는 오아시스 배달원이죠. 동네 슈퍼마다 오아시스를 배달해요. 사라진 골목에서 용역원들은 오아시스를 몸에 뿌리곤 했어요. 그들의 입속에는 털이 가득했죠. 입을 열면 혀가 바삭바삭 부서졌어요. 오아시스를 뿌려 적셔주어야 했죠. 발가락 양말은 기형의 포도알갱이 같아요. 껍데기를 찢고 나오지 못한 포경은 발가락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오아시스 배달원은 사라진 골목에서 검은 낮을 경험해야 했죠. 배롱나무를 긁으면 잎은 간지럼을 타고 깔깔대고 웃었어요. 침 같은 진딧물이 질질 흘러나와요. 오아시스를 뿌려 적셔주어야 했죠. 233번지 용태는 아버지가 먹고 버린 소주 뚜껑으로 초록색 배를 만들어 상을 받아 왔대요. 초록색 배에 동생들을 태우고 어머니를 찾으러 나가려다가 초록색 트럭 바퀴와 부딪혔대요. 팝콘처럼 튀어 올랐대요. 오아시스를 뿌려 적셔주어야 했죠. 오아시스 배달원은 목이 말라요. 주억주억 졸고 있는 저녁이 지겨워요. 발가락 양말을 벗어요. 포경을 기다리는 귀두가 발가락 양말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오아시스를 뿌려 적셔주어야 하죠.

―미네르바(2012년 봄호)

 

 

 

 

절름발 고양이 튀튀

 

 

  튀튀, 손잡이의 달려있는 손들의 지문을 핥아먹고 있는 너는 육교 위에서 뽕짝을 부르던 맹인부부의 고양이. 동전을 훔치다 걸린 너는 절름발이가 되었네. 꼬리를 발라먹고 있는 비둘기 무리에서 원죄를 토하고 있는 너를 안아 옥탑방으로 숨어들었네. 자위를 끝낸 한낮이 혼절해 있었네. 너의 발톱에는 할퀴어진 세상이,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낙숫물처럼 흘러내렸네. 꾸르륵 소리에 아끼던 겔포스를 먹여주었네. 개미들은 죽은 개미를 어깨에 이고 지맥을 찾고 있네. 고상한 얼굴로 밀린 월세를 받으러 다니는 페르세포네니 다이달로스, 그는 그의 발등을 한 번도 본적이 없네. 발등을 핥고 있는 튀튀를 개미쯤으로 알고 있네. 개명된 나의 이름을 재투성이 신발 한 짝 아궁이의 고양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 라고 적어 놓고 괄호 열고 신데렐라, 하고 괄호 닫네. 튀튀가 따온 토마토가 익으니 페르세포네니 다이달로스의 얼굴이 파래지네. 절름발이 튀튀 발에 정중히 나비타이를 묶고 언니의 정체를 밝히러 가네.

―리토피아(2011년 겨울)

 

 

 

 

허파를 씹다가

 

 

나는 그 해 구토하는 법을 배웠네. 아버지의 잦은 해소기침은 구토였네. 기침에 내장이 묻어나왔네. 기침이 바닥에 쏟아질 때 나는 눈을 감았네. 아버지의 귀바퀴가 흔들렸네. 쏟아진 기침을 쓰레기통에 담고 아버지의 굽은 등을 탁탁 두드리면 녹슨 철근이 만져졌네. 나는 귀를 막았네. 어머니가 사온 쪼그라든 돼지허파를 씹어 먹다가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네. 그것은 숨소리가 아니었으므로 숨이 아니었네. 손에 든 허파가 흔들리네. 흔들리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네. 허파를 씹어 먹다가 혀를 깨무네. 톡, 건강한 피가 흐르네.

―다층(2012년 여름호)

 

김보숙∙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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