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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채재순/이야기하는 지도 외 1편

채재순

이야기하는 지도

마을의 개소리가 나는 집을 넣은 지도
다람쥐길 지도
호랑나비길 지도
동네 언덕에 올라
밤하늘 올려다보고 또 보며
누워서 그린 밤하늘 지도
살구나무가 있는 집을 머금은 지도
쑥부쟁이 지도
토끼풀 지도
먼저 길부터 없애고 축척도 없앤 지도
아기 웃음소리 고스란히 담아
온 세상을 이어주는
전쟁, 투기 사라지고 이야기 가득한
지도
어디에 떠나 살아도 마음에 밟힐

황금 측백나무

경칩날, 홍매화 만발한 정원
비바람으로 거칠어진 정자 마루바닥을
오후 햇살이 어루만지고

산수유 노랑꽃잎 벙글고
수양버들 물 오른 연둣빛으로
담채화 그리느라 분주한 시간

긴 가뭄 끝 봄비 내린 물웅덩이에
선연하게 내려앉은 꽃나무 그림자
하염없이 바라보는 당신과

촘촘한 가지들로 시름시름 앓는
그대 곁을 서성이며 글썽이는 나와

삐뚤삐뚤 걸어온 발자국과
우리의 간격에 대해 생각 깊어지는 저녁

성글어진 틈으로 바람 드나들고
햇살 들어와 매만지면
어느 날 문득 가지끝이 황금빛으로
허공 물들이며 그늘 드리우리

*채재순 1994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복사꽃 소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