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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손창기/구멍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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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손창기/구멍들 외 1편
손창기
구멍들
얼어붙은 바다가 자꾸 구멍을 닫고 있다
숨구멍을 뚫을 수 없다면
얼음 아래서 죽을지도 모르므로
바다표범은 송곳니를 얼음구멍 가장자리에 꽂는다
육중한 머리를 프로펠러처럼 쉼 없이 회전시킨다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휘날리고
알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몸은 부드러워질 텐데,
물속에서도 얼음 위로 스치는 바람과
얼음을 잘 통과하는 햇살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해빙海氷의 두께가 얇은 곳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빨 빠지는 그는 닫히려는 구멍의 수호자가 된다
지상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지상으로 닿으려는
그의 가쁜 숨들이 얼음을 깨뜨리고 있다
얼어붙은 바다가 한사코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 Allu : 바다표범들이 얼음 표면에 뚫어놓는 구멍을 가리키는 에스키모어.
풍선의 기억
가볍게 차오를 수 있으므로
날개가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옛적의 풍선 기억으로 오른다
그런데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는 느낌
모자가 떨어지고
신발이 떨어지고
뒤꿈치가 떨어지고
무릎이 떨어지고
헬륨 가스 영혼이 빠져나가면
바닷가에 떨어진 풍선은 미끈한 돌이 되고
이게 풍선인 줄 모른 채
사람들은 물수제비를 뜨고
납작하고 미끈한 돌이 애초에 풍선이었으므로
물을 타면서 잘 뛰어 넘는다
날지 못하는 순간, 다시 돌이 되고 만다
돌이 풍선인 줄 아는 사람은
시지프스처럼 마지막 봉우리까지 돌을 굴린다
자꾸 굴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풍선이 제 손 안에 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또 다시 풍선 끈에 매달려 있다
떨어진 살점은
아이들이 부는 거품 풍선이 될지도 모른다
*손창기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달팽이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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