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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김시내/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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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0-01-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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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김시내/후 외 1편


김시내




근육이 육포처럼 굳어지도록
죽어라 우체통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탄산수에 깻잎을 넣어 먹던 여름 가고
붕어빵 꼬리부터 먹을지 머리부터 먹을지 고민하는
겨울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대체로 무사합니다 불행은 고작 나팔꽃처럼 자라
꼼짝달싹 못하게 혀를 묶어버렸습니다
입술이여 산세베리아처럼 날카로워져라
이런 주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태양을 보지 않았는데 뺨이 오렌지 같구나
이런 문자에 행복했던 시간도 끝났습니다
나는 무사하지 않습니다
당신 뒤꿈치에 박힌 굳은살을
이빨로 긁어 주고 싶은 날에는 맨발로 골목을 걷기도 했습니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니라면 미친 거겠지요  복숭아뼈에 날개가 돋아 날아갈지 모르고
곧추서서 환하게 웃는 사람을 바라만 봤으니
이런 죄를 당신의 행성에선 뭐라 부른답니까?
앞머리를 잡았어야 했는데 허리를 잡아
내 손을 빠르게 빠져나간
부드럽지만 강렬했던 푸른 도마뱀





소년 H



내성적인 이마를 가진 H가 쪽방에 들어간다 책상 서랍 속에서 부러진 리코더와 돌멩이를 꺼내준다 손때 묻은 플레이보이지를 앉은뱅이책상 속으로 숨기며 웃는다 언제 한 번 화륵에 가자는 빈말도 할 줄 아는 애늙은이 H, 어긋나게 붙어 펴지지 않는 팔로 깨진 거울에 건담스티커를 붙인다 방안 가득 적나라한 오후 햇빛, 피리 부는 사나이와 건담 중 누가 더 쎄냐고 물어 보는 철부지 H, 낮술에 취해 두들겨 패던 아버지와 밤에 도망간 엄마를 바다로 유인해 죽이려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낫겠다는 싹수가 노란 H, 그런 발목의 복숭아뼈가 유난히 붉다 붉어서 뜯어먹기 좋게 부풀어 오른 내 팔을 눌러 본다 새로 산 하얀 아디다스 운동화 너 줄까? 월급 타면 줄무늬 마린셔츠를 꼭 사줄게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화륵 가는 기차를 타자 화륵은 새벽에 도착하기 좋으니까 역마다 내려 인증 샷을 찍자 올 때는 첫 번째 기차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 소문이 무성한 바다를 잊어버리자 끊임없이 약속하는 날 보며 웃는 H,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특기인 고아는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하고도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는 H, 친절의 시대는 끝나버렸고 이젠 배타적인 지구에서 살아남는 일만 남았다며





*김시내 2010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북쪽 강에서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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