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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성숙옥/질경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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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성숙옥/질경이 외 1편
성숙옥
질경이
양평군에 농장을 갖게 되었다
팔순 엄마
정신 나간 여자의 머리 같은 밭을 보더니
주말마다 밭에 가자고 성화다
나는 엄마의 땀방울로 키운
풋고추와 상추를 맛있게 먹곤 했다
내가 냇가와 바람과 연애하고 있을 때
엄마는 땅을 호미로 어르고 달래며
뙤약볕에 앉아서 풀을 뽑았다
싹 틔우고 열매 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데
점점 몸이 안 따라 준다며
가을걷이 끝나면
다시는 농사 안 짓는다는 엄마
먼 산이 뿌옇게 아지랑이만 올라오면
양평 가자며
대문을 쿵쿵 때린다
쥐똥나무 향기
바람도 코를 대는 풍경이 나를 부른다. 마음에 그윽한 리듬을 넣어주는 쥐똥나무 하얀 울타리, 작은 꽃이 핀 길을 걸으면 느려도 즐겁다 나비처럼 내게 날아와 코 끝에 머무는 향기, 그리움은 오랜 시간을 돌았어도 여전히 성성하다 그대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공중이 두근거린 이야기는 들숨과 날숨 사이를 뒤적이고 길이 아닌 길에서 찾는 그대는 물음, 저 향기는 빛과 어둠을 알지 못하는가 나무는 시간을 제 속에 남길 때 나는 뒤로 간 메아리를 찾아 나비의 매듭을 풀곤 했다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가 번져올 때 나 오래 전 눕고 일어서는 일을 생각하며 겹겹이 접힌 그믐달의 눈썹을 세어 본다
*성숙옥 201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빛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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