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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이 시인을 다시 본다/천선자/파놉티콘·1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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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5회 작성일 20-01-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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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이 시인을 다시 본다/천선자/파놉티콘·1 외 4편


천선자


파놉티콘·1

─cctv



뚝배기 소머리국밥을 후후 분다.
매운 깍두기 숟가락에 올리며 카메라를 본다.
카메라도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눈알을 굴린다.
숟가락은 입으로 가고 눈은 카메라와 싸운다.
눈덩어리 커다랗게 만들어 무작정 던진다.
거지발싸게 같은 놈, 앞뒤 가리지 않는다.
집채만 한 덩어리가 머리통을 맞힌다. 웃는다.
째려보는 것 좀 봐, 금방이라도 펀치를 날릴 기세네.
달래고 어르고 치고 빠지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전략을 바꾸어 주먹으로 턱을 한 방 날린다.
앞차기, 옆차기, 엎어치기, 돌려차기로 마구 팬다.
다리가 풀리자 쌍코피가 터져 코허리로 흐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중얼거리며 노려본다.
괘씸한 카메라 국밥에 말아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카드로 국밥 값을 지불하고 돌아 나오는데,
등 뒤에서 웃는 눈동자, 나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파놉티콘·2
─무인 정산기



주차카드를 넣고 기다린다.
요금은 만삼천 원입니다. 빤히 쳐다본다.
지갑을 찾고 있는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어처구니없는 기계를 씩씩거리며 노려본다.
빨리빨리 넣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벌건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며 꼼짝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여섯 시간 삼십 분을 따라다닌 놈,
지하 삼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갓집에서 너비아니, 동그래죽, 민어구이를 먹고,
바람에 흔들리던 강물이 커핏잔 속으로 뛰어들고,
강물에 투신한 햇살을 건져 올리며 나누는 잡담,
통지기 같은 앞집 여자가 불풍나게 드나들며 외간 남자,
아우르다 들켜 머리채 잡히고 신발 들고 도망 갔다는 애기,
뒤로 넘어지고 코가 비뚤어지고 배꼽이 빠진 광경,
마트에서 얌통머리 없이 시식코너만 바닥 내던 광경,
공중화장실까지 몰래 훔쳐보는 엉큼대장, 이 나쁜 놈,
그림자도 없는 귀신 같은 놈, 숨도 쉬지 않은 놈,
온몸에 눈을 달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고슴도치와 엘리베이터걸



머리, 어깨, 무릎, 발, 삭신에 삭풍이 불어 잠이 달아나고 찾아온 말똥구리 삼신이 삐걱거리는 뼈 마디마디에 구멍을 파며 난리굿이다. 굿거리장단에 맞추랴, 새마치 장단에 맞추랴, 동풍, 서풍, 북풍지대까지 온 도가니를 끌고 한의원으로 간다. 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 어머님 어디가 아프세요, 말을 할 때마다 한 옥타브씩 올라가는 코맹맹이 한의사 선생님은 금강산에서 약초를 캐고, 양다리, 양팔에 수십 개의 침을 꽂고, 고슴도치가 되어 물리치료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코맹맹이 한의사 선생님이 엘리베이터걸이 되어 안내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도레미파, 이곳은 수선가게가 있는 구층입니다. 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도레미파, 어깨를 잡는 옥타브를 뒤로 남기고, 복도 끝에 있는 수선가게로 간다. 문이 열리고 토깽이가 깡충깡충 달려와 인사를 한다. 토깽이의 귀를 잡아당겨 악수를 하다가 바늘을 보고 기절을 한다. 바느질하는 토깽이의 손끝에 목덜미가 잡힌 채, 안녕하십니까 도레미파, 코맹맹이 엘리베이터걸의 옥타브가 달팽이관을 흔들어도 꾸벅꾸벅 졸다 의자 모서리에 머리를 박는다. 수선을 마친 가시를 매만지며 서리병아리, 자웅눈이, 장구머리와 손잡고 지하 이층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달려간다. 귓가에 남은 코맹맹이 엘리베이터걸이 압력솥을 몰고 밥 냄새 솔솔나는 구간을 달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나무늘보가 세월아 네월아 씨름하는 사이 코 박고 엎드려서 굴을 판다. 판다, 판다, 판다곰과 굴을 판다, 밤낮 굴을 파다가 도착한 곳이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이다. 머리를 쏘옥 내밀고 냉면을 먹는 사람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여러분 물꼬를 트려고 왔어요, 사람이 우선입니다.





릴reeal·6

─부동산사기꾼



강태공이 울고 가는 그녀의 솜씨가 맥을 못 춘다. 얼뜨기, 팔푼이, 새물청어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좀팽이, 끄나풀을 잡고 분풀이 하다가 중얼중얼, 정신줄 놓지 않으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지 암, 지나가는 날치꾼에게 참새그물을 뒤집어씌우고, 풍각쟁이 따라다니며 노래와 춤으로 휘몰아쳐서 얼간이 한 마리를 낚아 어항 속에 넣는다. 넌 나에게 간택을 받은 놈이여, 날이며 날마다 오는 장돌뱅이가 아니란 말이지, 무술이가 임금님의 간택을 받은 거여, 오늘부터 너의 이름은 얼간이, 마음에 들면 얼른 손들어, 왜 마음에 안 드나, 오무래미, 애꾸눈으로 째려보면 어쩔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가자미의 사촌이라서 그러니 이해하라고, 내가 너를 부리는 건지, 네가 나를 부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단 말이야. 알다가도 모를 세상, 물을 조금씩 덜어내고 수초더미 속에 반짝이는 두 눈을 숨겨두고 어항 속을 나온다. 그물바늘로 그물귀를 잡아당겨서 수초더미를 조금씩 건져 올리고 산소호스를 뺀다. 얼간이가 마른 수초 숲을 헤매다가 아가미 숨을 쉬며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녀가 히죽이죽 웃으며 던지는 말씀, 너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여. 


   * 부동산 용어의 유래, 스페인의 화폐 단위인 ‘릴’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릴”의 본의는 ‘국왕의 것”(국가의 것)이라는 의미로 스페인이 점령한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부동산의 뜻을 ‘릴’이라 부름으로써 스페인이 점령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졌었다.





봄의 입덧



입덧이다.
헛구역질에 낙엽이 뚝뚝 떨어진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잡고 신트림한다.


배가 나온다.
달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커가는 배다.
물소리, 새소리, 생명水의 소리가 들린다.


수水의 소리에서 수壽가 보인다.
작은 손가락, 발가락이 수壽와 수水를 퍼 올린다.


만삭이다.
달의 달을 걸치고 온 날이다.
산통이 시작된 뒤에 봄의 자궁이 열린다.
파릇한 새싹의 울음소리 으앙으앙 우렁차다.





●시작메모


꿈에서조차 시를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이 신기해서 시를 쓰게 된 동기를 생각하다가 멈춘 곳이 나의 유년시절이다. 외소하고 수줍은 많은 아이의 놀이는 상상이었고, 상상은 금나라와라 뚝딱하면 금이 나오고 은나라와라 뚝딱하면 은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었다. 생각 속에 있는 그림이 사라질까봐, 툇마루 끝에 누워 하늘이라는 큰 도화지를 펼쳐놓고 상상이라는 연필로 그림을 그렸었다. 애벌레를 그리면 애벌레가 꼬물꼬물, 강아지를 그리면 강아지가 멍멍멍, 먹구름 뒤에 숨겨둔 보물을 훔치다가 거인의 발소리에 놀라 휘둥그레진 눈은 형광등으로 달아두고, 콧물 한 번 스윽 닦은 뒤, 솜사탕을 그려서 설탕물에 풍덩풍덩, 어둠 속에서 나온 마녀와 양탄자를 타고 은하수 건너 보름달 속의 토끼와 절구를 찧으면 상상의 연필이 날개를 펴곤 했었다. 별똥별과 오로라가 있는 마을에서 빛이 되고 별이 되고, 고래뱃속을 여행하다가 해수면을 통째로 쏟아버리면 상상의 연필은 금방 몽당연필이 되었다. 도화지가 물에 젖은 날에는 상상의 연필이 부러져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먹구름 뒤에 걸린 두루말이구름 풀어서 눈물을 닦으며 병아리와 같이 삐악삐악 울었다. 젖은 도화지의 물기를 털어내고 안개의 목젖을 통과하면 비문을 새긴 이슬방울이 나를 먹고, 난 또 어둠과 안개 속에 서 있었지만, 어제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내일이라는 무지개다리를 그렸었다. 자연의 넉넉한 마음은 나의 고향, 엄마의 품이었다. 지금도 슬프거나 아픈 날이면 기억의 태엽을 풀어서 그때 그려놓은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 내게 있어 상상의 연필은 시를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단한 시, 좋은 시를 쓰려고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시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생각 하려고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어떤 세상을 보고파서 시를 쓴다. 곧 나를 알기 위해서 시를 쓴다.





*천선자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외. 전국계간지작품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리토피아》 부주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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