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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단편소설/최외득/이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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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단편소설/최외득/이웃집
최외득
이웃집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야.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녀가 열다섯 살에 큰 도시에 들어오면서 바뀐 건 자신의 꿈뿐만 아니라 이름까지였다. 도시로 처음 오던 날 정말 황홀했다. 명자에서 효정으로 탈바꿈이 시작되었다. 엄마를 잃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를 설레게 한 건 바로 도시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영특한 아이를 위해 아버지가 결심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큰 나무가 되려면 좋은 열매를 꿈꾸며 비바람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 어린 그녀의 말이었다.
계림으로 온 지 3년째, 호수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기관지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이사 오고 나서 한참 후에 알았다. 효정은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니다니, 저렇게 자기 몸을 학대하다니, 효정은 아무 방어대책 없이 바깥에 쏘다니는 사람을 보면 자기와 아무런 연관 없는 일임에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좋은 공기를 찾아 도시에서 먼 곳으로 왔건만 나라 전체가 미세먼지에 갇혀버리는 처지고 보니 그간의 노고가 아무런 의미 없는 짓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억울한 꼴이다. 미세먼지가 뇌세포 사이 연결을 끊어서 치매를 유발한다니, 그녀의 나이 67세고 보니 여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눈만 드러내고 온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다시피 한 그녀가 마당에서 옆집을 기웃거린다. 두 집 마당 사이에 하얗게 칠해진 나무로 만든 예쁜 울타리가 가로질러 있었다. 높이가 1m 남짓한 울타리에는 틈이나 문이 없어서 서로의 집으로 바로 왕래할 수가 없었다. 왕래하려면 돌아서 대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옆집 새댁이 몇 번인가 울타리 사이에 쪽문을 만들자고 했으나 효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일홍아, 잘 잤니? 젊은 것이 게을러서 꽃나무 가지치기도 하지 않고, 저게 뭐야. 제멋대로잖아. 우리 집 아가들은 내가 미리 예쁘게 가지치기해줬으니 올봄에는 꽃을 많이 피워야 해. 그때 옆집 현관문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옆집 새댁이 나풀나풀 스텝 댄스 걸음으로 그녀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새댁, 주말이라고 늦게 일어나고 그러면 안 돼요?
효정은 결혼 13년 차인 옆집 소희를 보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새댁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주말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게으름은 죄와 같이 사악한 것이에요.
-미세먼지가 심해서 나오기 싫었는데 우리 아가들 얼굴도 보고, 인사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네요.
소희가 자기 집 마당에 있는 꽃나무를 향해 일일이 인사하고 다녔다.
-그 집 아가들은 제멋대로 자라면서 매일 문안 인사까지 받으니 정말 행복하겠어요.
-그렇죠! 우리 집 아가들은 나를 만나서 참으로 제멋대로지요.
-가지치기를 잘해야 멋진 나무로 변할 텐데.
-선생님께서 그 집 아가들의 가지를 자주 치는 바람에 지난봄에 꽃이 아주 빈약하게 피었잖아요?
-그땐 갓 나온 가지들이 병드는 바람에 다 자를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러니까요. 나무를 너무 괴롭히면 그 나무가 건강해질 수 없다는 거지요.
고물 삽니다! 고물! 소희는 가끔 메가폰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가 옆집 뒤편에서 나는 소린지 영 분간이 어려웠으나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한 소리였다. 소희가 효정의 집 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전통 정원은 수목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두는 게 매력이고요. 나무를 싹둑싹둑 자르는 것은 일본식이라네요. 당연히 선생님께서는 전통을 택하지 않으시겠지요만.
-나는 조경 공부를 좀 했어요.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자르는 게 아니랍니다.
-그런데도 가지가 잘릴 때마다 이 아낙 가슴엔 안타까움이 팍팍 밀려오니 어찌하면 좋아요.
고물 삽니다. 고물! 아련한 소리가 다시 들리는 그때, 효정이 자신의 집 현관 쪽으로 급히 걸어가며 말했다.
-그만하시지! 또 슬슬 시비로 치달으면 안 되니까.
-들어가시게요? 이따 잔치국수 드시러 오실래요?
-점심때가 되면 그때 결정하리다.
두 사람 사이에 가시 돋친 말을 하는듯하나 실은 오래전부터 장난식의 대화일 뿐 그리 감정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나름 두 사람 간에 팽팽하게 당기는 살갑기의 역설이다.
소희가 주방에서 잔치국수 만들 재료를 준비하였다. 겉보기엔 두 사람 사이가 평양 나막신처럼 붙임성있게 서로를 대하진 않지만, 효정이 국수를 먹고 싶다며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소희가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음식 조리가 카레라이스와 잔치국수이다.
소희는 계림으로 오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물질적 여유가 좀 부족한 삶이라도 자연과 어울려 살면 행복할 듯했다. 자녀를 두는 문제도 하늘의 뜻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운에 맡기리라 결정했다. 소희의 독특한 생활방식 때문에 더러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또라이라는 식의 빈정거림이 잦은 것도 사실이다.
소희의 어머니는 외교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릴 때부터 프랑스를 비롯하여 외국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그래서 혼자 놀아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럴라치면 혼자서 여러 인물의 역할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해야 했다. 한번은 병원놀이를 하면서 반려견이 자연스럽게 환자 역할이 되었다. 어린 소녀는 그냥 아프지 않은 환자로는 병원놀이가 밋밋했다. 그래서 날카로운 나이프로 반려견 다리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날 밤에 어머니의 복받쳐 우는 소리가 작은방까지 들렸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소희 얼굴을 보며 자주 눈이 붉어지곤 하였다. 물론 소희는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때부터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녀는 모든 사물에 의인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스마트폰에서 탱고음이 울렸다. 효정이다. 통화 후 소희가 냄비에 물을 받았다. 주방에서 그녀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식탁 위에 검은 도자기 그릇에 담겨진 잔치국수가 아름답게 보였다.
-어머! 이거 진짜 오색이잖아? 정말 센스 짱이야!
-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우주의 조화로움을 느껴야죠.
-자기 생각주머니는 어디까지야?
-그러게요. 내 큰 생각주머니 때문에 이 세상이 나를 다 담지 못하는 게 안타깝지요.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소희 씨.
국수를 먹는 동안 효정의 눈동자가 젖는 걸 소희는 눈치채지 못했다.
효정은 정년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겠다며 부푼 꿈을 꾸었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마을이 형성되지 않는 계림 한편에 덩그렁 놓인 집이고 보니 아무리 자연과 호흡한다며 자신을 위로하지만, 자꾸만 밀려드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지금은 집을 비우고 잠시라도 나다닐 처지가 못 되었다.
벌써 이태 전이다. 옆에 집이 하나 들어섰다. 효정은 속으론 기뻤으나 겉으론 쌀쌀맞게 굴었다. 이웃이 젊은 사람인 데다, 하는 꼴이 좀 특이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긴가민가해서 정을 나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점심을 마치고 일광욕을 즐기러 밖으로 나왔다. 3월의 날씨는 좀 쌀쌀하긴 하지만 봄이 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봄기운을 느끼려는 효정의 눈에 두꺼운 털옷을 입고 나무 사이로 서성이는 소희의 꼴이 영 달갑지 않았다. 그것도 털이 긴 옷이라 더 밉상이었다.
-멋진 옷이 작은 나무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거추장스럽게 보여.
-과연 그럴까요. 사진으로 보면 완전 달라져요. 포즈를 취할 테니 폰으로 찍어보세요.
소희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소희의 당돌함에 밀려 효정이 스마트폰을 받아들긴 했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효정은 소희에게 몇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어머 그러네. 패션모델 같네.
-거 봐요.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볼 때가 중요하지.
-모르시는 말씀. 우린 절대로 원본을 볼 수 없는 존재라고요.
-무슨 뜻?
-우리 눈 자체가 사진기예요. 보는 대로 바로 뇌로 가지 않고 한번 피사체에 상이 맺혀서 뇌로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사실은 복사본을 보는 꼴이랍니다.
-그럼 새댁이 나에겐 허상인가?
-허상까진 아니더라도, 저 너머에 있는 새댁이 아닌 볼록렌즈나 오목렌즈를 통과한 새댁이라 생각하면 돼요.
-그러게. 변변치 못한 몰골인 주젠데, 우리가.
-날고 뛰어봐야 벼룩이죠.
소희가 계림으로 이사 온 때가 결혼하고 10년 뒤였다. 결혼하면서 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녀였고, 그런 그녀가 남편과 알콩달콩 잘 지내는데도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소희 부부를 압박하였다. 소희는 친정과, 시댁과 거리가 멀어지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그녀에게 자꾸만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바뀌어 갔다. 소희에게 향한 그들의 사랑이 그녀에겐 잔인했다.
소희는 길을 가다 떠돌이 개나 고양이를 보면 일일이 큰소리로 안부 인사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길로 접어들면 길에게 안부 인사하고, 차를 몰고 가면서 이정표가 나타나면 그것을 보고 인사하고, 만약에 인사하지 못하고 지나치기라도 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방정떨 때면, 마치 정신 줄이 여러 개 빠진 사람처럼 보이는 게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녀를 함부로 속단할 수가 없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지능과 남들이 예상치 못하는 지혜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집안 어른들이 그녀를 예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소희는 마당 넓은 이 집에 이사 오고부터 세상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아니 그동안 불편하게 했던 가까운 그들에게서 벗어난 평화로움이었다. 그녀는 늘 똑같이 하는 패턴 속에 산다면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여자였다. 무엇이 되었든 어제처럼 같은 생각을 하면 그녀의 머리가 녹슨 것처럼 느껴져서 종일 우울해졌다. 그래서 그 같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온갖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그녀를 본 남편이 처음엔 피곤해했고 때론 그녀에게 심한 말로 퍼붓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도 실없는 짓을 잘하는 것을 볼 때 아내를 닮아가고 있었다.
소희의 하루는 정원에 있는 많은 나무를 향해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계림의 아침은 늘 그랬지만 평화로웠다. 소희의 남편은 계림으로 들어오고 나서 자신이 꿈꾸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싶다며, 그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낭만을 선물한다며 호숫가에 분위기 있는 카페를 열었다.
호수 건너편 북쪽에는 가문비나무 원시림이 울창하였다. 숲속에는 계곡이 있고, 숲의 동쪽 경사지엔 여름이면 보랏빛 노루오줌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그 계곡이 이어지는 숲은 호수와 또 다른 풍경의 평온지대였다.
효정은 가끔 숲을 찾곤 했다. 소희에게 숲속을 같이 거닐자고 청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거절이었다. 그때마다 효정의 마음속엔 소희가 정말 나무를 사랑할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효정의 아버지는 나무에 있어 박사였다. 나무 종류는 물론 나무의 습성까지 꿰뚫었다. 그래서 효정이 지저분하고 험한 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묘목 사업을 할 것을 권하였으나 정원에 갇히는 나무를 기르는 것이 싫다며 끝내 당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효정이 도시로 왔어도 시골 출신답지 않게 여전히 학교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 바람대로 법대에 가질 않았다. 일류 사범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녀는 교육자로서 열정이 대단했다. 그 결과 학부모로부터 평판이 좋았다. 효정은 목표가 정해지고 틀이 갖춰지기만 하면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았다. 일찌감치 이사장의 눈에 들어 교장까지 역임하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유로운 적이 없었던 그녀의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느리고 정지된 계림의 환경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무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 달을 못 버티고 이곳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효정의 나무 사랑은 유별났다. 어쩌면 병적일 정도로 집착이 강했다. 그것이 오히려 잦은 가지치기로 인해 광합성 할 잎이 적어서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녀는 나무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할 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조경사의 지적마저 절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효정의 집 정원엔 무성하게 피는 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빈약한 꽃나무를 보면서 자신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자책하는 것이, 그녀의 안타까운 내리사랑의 방식이었다.
소희가 효정의 사는 모습이 궁금했다. 효정이 소희 집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효정은 소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효정의 그런 점에서 늘 소희에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소희는 효정의 집을 방문할 구실로 음식을 만들었다. 아직 꽃이 피기 이른 시기라 말린 포도를 이용하여 화전처럼 만들었다. 분명히 효정이 반가워할 거란 기대로 그녀가 현관문 앞에서 혀짧은 애교 목소리로 현관님 안녕하세요, 라며 고개 숙여 인사한 후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고 기다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돌아설까 망설이는 그때 인기척이 났다. 말없이 문을 열던 효정이 소희를 보자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아니, 새, 새댁. 불쑥 찾아오면 어떡해욧!
갑자기 사막에서 열풍이 확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전 선생님 집을 한 번도 와 보지 못해서, 이웃에 살면서 내가 야박하게 굴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큰 맘 먹고 찾아왔어요.
소희는 말을 하고 나서 어색한 목소리로 웃었다.
-누가 그렇게 생각한대요! 나 서운하다고 한 적 없으니 이러지 말아요.
소희의 굳어버린 입에서 말이 겨우 튕겨 나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까요?
효정의 목소리가 돌아서 나오는 소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네요. 잠시 들어왔다 가요.
소희의 머릿속이 찡찡거렸다. 집 현관으로 들어서자 타는 향내가 강했다. 마치 군내를 잡기 위해 태우는 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의 심장이 계속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효정과 마주 앉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라서 분위기가 냉랭했다. 그래서 바로 소희가 일어서려 하자 효정이 울상의 얼굴을 하며 말했다.
-새댁 미안해요. 내가 지금 기분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만.
효정이 소희에게 사과했지만, 소희는 금방 일어났다. 지하층으로 가는 층계인 그 입구에 누런색의 메가폰이 놓여 있는 것이 현관 쪽으로 걸어 나오는 소희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
효정은 소희가 다녀간 후로 극도로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혼자 중얼거리며 설거지를 한다든지 집 안 청소를 한다든지 하는 게 노인으로서는 무리한 행위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마당에 나가 발밑에 낙엽이라도 툭툭 차면 기분이 풀리련만, 그녀는 민망해서 밖엘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땐 술이라도 한잔 마시면 기분이 풀릴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생 술을 입에 대 본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엄두를 낼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오로지 목표 하나에 꽂혀서 나쁜 것이라는 것은 아예 단절시키며 살아온 그녀의 비운이기도 했다.
효정의 가슴에서 분노가 일었다. 그녀가 안절부절, 우왕좌왕, 튀는 불똥같이 서성거리다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에 뒤엉킨 웅얼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벽을 타고 위로 올라왔다.
소희는 갑자기 숲속에 가고 싶어졌다. 낮에 있었던 효정과의 일을 생각하자 다시 그녀의 심장이 불규칙해졌다.
-자기야, 그 집이 이상해.
소희가 창밖을 쳐다보며 남편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 집이라니?
-창밖에 저 집.
자비가 전혀 없는 냉랭한 소희의 목소리였다.
-그 집이라고 하는 걸 보니 뭔가 심사가 틀어진 거 같네. 무슨 일이야?
이제 남편도 그녀의 독특한 어투마저 꽤 뚫고 있었다.
-분명히 저 늙은 여자는 제자들을 기계처럼 만들어 놓았을 거야. 최고 최고만 외치는 전형적인 1등 주의자였을 거야.
소희 표정에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을 태세였다. 남편은 스마트폰에 집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대꾸하듯 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흥분하고 그러지 마.
소희는 창밖을 응시하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내가 저 집을 찾아갔잖아. 그런데 속상한 건 찾아간 사람 무안하게 문전박대지 뭐야. 아무리 남남이라지만 그동안 울타리 하나를 두고 지내온 이웃인데,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냐고.
남편이 나른한 몸을 누이듯 소파에 넘어지면서 기지개를 켰다.
-자기 사생활이 있는 거야.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뭔가가 있겠지. 함부로 속단하지 마세요. 평소 이웃으로 지내는 데 별 무리 없었잖아.
-자기야! 혹시 저 여자 간첩 아닐까?
-어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고 그래.
-우씨, 약이 올라서 그러지. 맞다, 맞다. 그건지 몰라.
남편이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희가 흥분한 말투로 바뀌었다.
-그건지 몰라. 집 안에 시체를 숨겨 놓은 거. 무슨 냄새를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향을 피우고 그랬어.
-참나, 별 상상을 다 하고 그러네.
남편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에 무서워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가 창문 옆에 서 있는 소희를 떼 내기 위해 그녀를 침실로 강제로 데려갔다.
-꺄악! 아아악! 어떡해어떡해어떡해. 임신이라니, 나 이제 어떡해! 나 임신하면 안 되는데, 어떡해.
병원이 소란스러웠다. 소희는 소리소리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옆에 남편이 소희를 끌어안았다.
-늙은 엄마를 둔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아직은 괜찮아. 늙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애 키우는 일을 서둘러야지.
-뭐야! 자기 맘이 바뀌었어?
-맘이 바뀐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뀐 거잖아.
-속맘은 그게 아닌 거였잖아. 이중인격자였어.
-그렇게 말하지 마, 아기가 아빠를 나쁘게 받아들이면 안 되니까.
소희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그 광경을 보던 늙은 의사가 말했다.
-내 평생 의사 노릇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 어찌 귀한 생명이 잉태되었는데, 엄마가 저리 통곡하는 상황이라니, 도대체 이해 불가요.
소희 남편이 의사를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전히 남편 품에서 울고 있는 소희였다. 남편이 의사를 향해 말했다.
-40 중반의 나이다 보니 많이 걱정스럽습니다.
-에이, 그런 말 마쇼. 요즘은 의술이 좋아서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건 저희도 압니다만, 아이에게 늙은 부모가 된다는 거죠.
-나이도 예전과 달리 본 나이에 비교해서 한 15년 이상은 젊어지지 않았겠소. 걱정하지 말고 잘 낳아서 잘 기를 생각이나 하세요.
병원에서 길길이 날뛰던 소희가 집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 임산부 행세였다. 과장된 몸짓에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이 피식 웃고 말았다. 소희의 속뜻은 남편을 부려먹기로 잔뜩 벼룬 사람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소희가 요구하는 일을 재바르게 척척 처리해냈다.
-늦쁨아! 아빠 잘하고 있는 거 보이지.
-뭐야. 우리 아가 태몽이야?
-늦게 얻은 기쁨이라고 해서 늦쁨이야. 어때 괜찮지?
-응, 대박. 늦쁨아! 내가 엄마야! 좋은 엄마로 느껴지지!
-이제 기분도 좋아졌으니 어른들께 소식을 알려드려야지?
-막상 내 입으로 말하려니 부끄럽네. 자기가 해주면 안 될까?
-알았어. 제일 걱정이 많으신 장모님께 먼저 연락할게.
소희는 남편의 전화 통화가 길어지는 걸 보면서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소희를 바꿔 달라는 어른들의 요청에 남편이 소희에게 수신호를 보내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남편이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남편이 전화 말미에 산모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니 집에 막 찾아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어른들께 당부했다. 그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배려였다. 어른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보지 않아도 소희의 눈이 선했다.
그 사건 후로 효정이 마당에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 소희는 효정의 안부가 궁금했다. 지난번 좋지 않았던 일로 오래도록 마음 상하게 할 이유가 없다며 그때의 좋지 않은 감정을 훌훌 털어냈다. 뒤끝 없는 소희라지만, 가깝고도 먼 사이란 게 실감 나는 요 며칠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그녀의 집에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았다. 그녀에게서 들은 유일한 가족 얘기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가 딸을 위해 헌신했으나 유학 간 딸이 모로코계 미국인과 일찍 결혼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유학이 영영 먼 이별이 되고 말았다며, 딸이 그녀의 잔소리 때문에 엄마의 품을 빨리 벗어나려고 한 것 같다며, 섭섭해 하다가도 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으면 결혼은 천천히 생각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세상에 나가서 도전해봐야 할 것 아니냐면서, 그동안 공부한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소희는 효정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홀몸노인이 고독사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경찰서에 신고할까, 라는 생각에 미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연신 창밖을 주시하면서 손은 부르지도 않은 배를 연신 만지고 있었다.
다음날, 소희가 창밖을 보다가 119구급차가 옆집 대문 앞에 세워지는 걸 보았다. 그녀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건가. 뛰어나가 사정을 알아보려고 한 그때 소희가 행동을 멈추고 창밖을 계속 응시했다. 구급용 들것에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남편인가?
효정이 구급차에 오르기 전 소희의 집을 향해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소희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어떻게, 분명히 시체일 거야. 소희가 안달하는 반려견마냥 낑낑거렸다. 남편에게 전화하려는데 손이 떨려서 제대로 번호 누르기가 안 되었다. 통화하는 동안 남편이 냉정하게 판단하여 소희를 안심시켰다. 그때야 소희도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렇지 살인사건이면 경찰차가 와야지 119구급차만 올 리가 없지.
-어떻게 이 병원인 줄 알고, 이렇게 찾아주고, 고마워요. 그것도 남편분과 같이.
-구급차를 봤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알게 된 거지요.
소희는 병원에 오게 된 연유를 효정에게 말하지 않았다. 소희는 구급차를 본 후 마음이 초조하였다. 갑자기 빈집이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자 마치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기분에 유기견처럼 마당을 배회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정원에서 그만 발을 삐끗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평소에도 호들갑이 심한 그녀가 임신한 몸으로 넘어졌으니 그녀의 과장된 행동이 가관이었다. 전화를 받고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온 남편이 소희를 의료원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발도 멀쩡하고, 아기도 멀쩡하고,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소란을 피웠으니, 소희는 남편 보기가 조금은 멋쩍었다. 그때 머리에 스치는 것이 119구급차였다. 분명히 이 지역에서 큰 의료원이고, 다른 의원이나 의료원이 가까운 것에 없는 곳이라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효정이 이 의료원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로 되어 있었다.
효정은 소희를 간병인용 의자에 앉게 하고서 자신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 병상에 누운 노인의 코에 호스가 끼워져 있었다. 소희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 중에서 여태 저렇게 죽음을 앞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허상과도 같은 자신의 눈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생전 처음이다. 내가 나이만 먹었지 세상 물정에 어두웠구나. 소희의 마음이 짠했다. 효정이 말했다.
-좋은 이웃이 있어 이제는 외롭지 않네요.
소희가 쑥스러워할 때 하는 몸짓을 하며 말했다.
-저 아기 가졌어요.
-어머! 어머머, 경사스러운 소식이네. 새댁 축하해요. 아빠도 축하드려요.
효정이 자기 일처럼 반가워했다. 효정은 소희 손을 잡고 말했다.
-지난번 일은 정말 미안해요. 난 아버지 없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가 곁에 없으면 내가 곧 죽을 것만 같았지요. 그런 아버지와 이별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생각을 하자 극도로 마음이 불안했어요.
-이젠 괜찮아요. 다 이해합니다.
효정이 침상에 누운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어야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아서 법대에 가는 걸 포기했지요. 아버지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어서 남편과 이혼까지 했어요. 그 바람에 나의 퍼즐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지배할 수 있는 건 자식이었어요. 나의 집착이 아이에겐 가혹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아버진 진달래꽃을 무척 좋아했어요. 한번은 촌스럽게 보이는 진달래꽃을 뭐 그리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그 꽃이 엄마래요. 그 순간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눈물이 끝없이 흘러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에겐 내가 당신의 아내이자 자식이었을 거 같아요. 당신을 버리고 나를 위해 희생하셨죠. 저희 아버진 까막눈이었어요. 그런데 모르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버지더러 만물박사라고 불렀어요.
소희는 간병인용 의자에 앉아있는 게 불편했지만 효정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아버지를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제 가슴에서 일어나지 않아요.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가슴에서 솟구치는 무언가 애절한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아무래도 내 감정에 문제가 있나 봐요.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버지의 거칠어진 손을 보면 그냥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난 그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울면서 새벽까지 공부했어요. 어떨 때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는데, 이상한 건 한숨도 못 잤는데도 불구하고 학교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아이들과 달리 과외 한 번 받지 않고서도 줄곧 전교 1등을 했어요. 그 1등이 오히려 우리 아버지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고 봐요. 아버진 딸이 1등 하는 그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고 했지만, 그 1등을 지켜주기 위해서 아버지가 딸의 노예로 살았던 겁니다.
소희가 카페에 가려는 남편을 붙잡았다.
-자기야, 나랑 숲속에 가자. 나 한 번도 숲속 길을 걸어보지 못했어.
-거기 가는 걸 싫어했잖아.
-싫어한 게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던 거 같아. 보기보다 나 엄청 소심하다는 걸 자기도 잘 알잖아.
-내가 뭘 안다고. 베일에 싸인 사람이라 아직도 비밀투성이인데.
-놀리지 말고.
남편이 카페 가는 걸 포기하고 소희의 말을 들어주었다. 숲속으로 가로지른 길가에 쌓인 풀죽은 낙엽들이 흙으로 돌아갈 준비태세였다.
-자기야, 우리가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일 수도 있겠다.
-나는 땅이란 말 보다 흙이란 말이 더 좋아. 그래서 나는 지금 흙 위로 걷는 중이야.
-앞으로 우리 늦쁨이랑 자주 이 숲속으로 와야겠다.
소희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남편과 팔짱을 끼었다.
-늦쁨이 아빠, 나무는 자꾸만 땅에다 자기 분신을 내려놓고 있는 거네.
-우리가 전원 속으로 왔지만, 생활방식은 여전히 도시인의 시간에 맞춰져 있는 거 같아. 소희가 처음으로 가문비나무 군락지에 다다랐다.
*최외득 2012년 《문학저널》 소설 등단. 한국문협 편집위원. 시집 『껍질을 가진 나무는 얼지 않는다』, 『반듯한 보도블록』, 『행복한 하루 살기』. 소설집 『월식 인간』. 영랑문학상(우수상), 무궁화문학상, 한국문협 서울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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