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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서평/정령/시詩꽃에 내리는 비 같은 감화感化― 우중화 시인의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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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7회 작성일 20-01-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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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서평/정령/시詩꽃에 내리는 비 같은 감화感化― 우중화 시인의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


정령


시詩꽃에 내리는 비 같은 감화感化
― 우중화 시인의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



1. 시적인 울림


시인은 자기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내세워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존재의 중요성을 시에 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의 소리를 갖는 것에 대하여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여긴다. 시인은 시적인 울림과 자기고유의 방식으로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자기만의 언어를 표방한다. 그리하여 시적 사랑을 언어적 표현으로 드러냄으로써 시가 가진 시적 가치를 분리된 시공간의 변화에 끼워 넣고 자기존재의 존엄성과 문학에의 최종 목적을 실어 자연과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늘 시와 함께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청소를 하고 산책을 한다. 사유가 사유를 낳듯 시인은 사적인 일들로 시를 애태우며 빚고 있는 것이다.
우중화 시인의 언어들은 욕망을 불사르고 그것들은 다시시적 발화를 일으켜 여기저기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시름시름 앓던 말들이 딱지 앉은 시월의 밤비로 내린다.
오랜 생채기로 겹겹이 주름지고 골진 시간 틈 사이사이로.


검은 입 덥석덥석 베어 물며 쓸쓸하게 안쓰러웠던 시절,
지독하게 어리고 슬픈 말들의 놀이터는 아직 개장 중이야.


지극히 때 묻지 않은 부드러운 순수도 강요하지 마세요.
질 나쁜 말들을 꺼내 가을볕에 말린다면 다시 순수해져요.


한 편의 시詩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의 부끄러운 일탈,
필요해 덤으로 남자랑 아주 동적인 오르가즘은 어때?


시의 주검이 왈칵 쏟아지는 비릿한 내음 타고 불어오네.
그런 오늘 위로 네가 스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시인공작소」전문


우중화 시인은 작고 온화하게 그리고 표 안 나게 사람을 시 안으로 끌어들인다. ‘한 편의 시詩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의 부끄러운 일탈/필요해 덤으로 남자랑 아주 동적인 오르가즘은 어때?’ 하면서 고혹적인 대시dash를 하는가 하면, ‘시의 주검이 왈칵 쏟아지는 비릿한 내음 타고 불어오네/그런 오늘 위로 네가 스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고’ 대놓고 시와 바람을 피우는 시인은 바로 우중화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늘 시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시를 생각하고 빚어놓았으나 한때의 일탈처럼 마음에 휭하니 들어온 바람처럼 왔다가 그냥 죽거나 살짝 바람 맞은 정도의 시를 대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중이다. 시인은 시를 빚으면서 사랑을 동시에 빚어낸다. 사랑이 불 붙어서 타오를 때는 시도 여기저기서 마구 빚어졌을 테지만 사랑이 식으니 시도 시들해졌음이라. 그래서 시인은 늘 시인공작소의 자리를 늘 ‘개장 중’이다. 


꽃 피우지 못한 가시 새가 되어 울지 못한 가시
분노로 때로는 도덕으로 상실된 자아 뽑아낸 자리.
다시 나를 찌르기도 하고 당신을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교한 거짓으로 뾰족하게 당신을 찌르고,
눈물 흐르는 심장에 피가 나도록 포옹하기도 하고,
나를 빼내주세요 푸른 나무 빛나는 별 되고 싶어요.
밤이 왜 깊은지 알아요 새벽이 왜 푸른지 알아요.
미안해요 울고 싶어요 내 안에 아직 가시가 있어요.


―「내 안에 가시가 있어요」전문


우중화 시인이 노래한 이 시에는 가시가 많다. 필자인 나에게는 가시假詩로 읽혀졌다. 시가 되지 못하고 꽃이 되지 못하고 새가 되어 울지 못하는 시인의 가시假詩. 이 가시假詩들은 아직 그녀, 우중화 시인 안에 있다. 시인도 가시가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자주 그 가시를 빼내려 꾀나 열심이었던 것을 안다.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 푸르게 변하도록 시인은 가시를 빼내려 노력 하였고 결국, 그 가시는 늘 우리 곁에 남아 ‘눈물 흐르는 심장에 피가 나도록’ 나를 찌르기도 하고 당신을 찌르기도 한다. 우중화 시인의 가슴 안에 가시假詩들이 시나브로 꽃도 되고 새도 되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닐 날이 다가온 것이다.


불빛을 먹은 빗방울이 반짝이며 톡톡거린다.
핸드폰을 열면 습지에 빠진 목소리가 건너온다.
버려진 것보다 당한 것이 더 서럽다는 그 여자.
누구에게도 잘도 속을 수 있는 그 여자.
아이 러브 유, 또 속으셨군요.
다섯 글자 안의 비밀, 거짓도 항상 새롭다니,
알만큼 안다 했는데 나이 헛먹었던 것이다.
뒹구는 우산만큼이나 휘젓는 축축한 고백이다.
비 맞고 자빠진 몸으로 스르륵 피멍이 들고
피멍 든 무릎은 당차도록 살아낸 시간들이다.
살리고 싶었던 사랑은 무모했다.
헛것을 본 듯 허허로워 함부로 열어 보일 수 없는,
숫자로 만들어진 머리에 너도 나도 그러했다고,
슬프지 마세요. 이런 밤에도 꽃은 핍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밤」전문


미안해, 잠깐만 울겠습니다. 잠깐만의 시간 앞에 수없이 퍼 올린 눈물방울들. 꿈을 꾼다는 것이, 꿈을 자궁 속에 잉태해 몸에 붙은 줄기를 떼고 세상에 너를 놓는다는 것이, 이제 가능하기나 한 걸까. 말들의 손이 나오고 발이 나오고 입이 생겨 호흡한다는 것은 어느 때일까. 억척같이 세상을 견디며 서로를 사랑한 날, 요람에 들어앉은 주검은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물을 먹으며 푸른 호흡을 한다. 더 배부르지 못하고 아이들이 길을 잃고 배회한다. 떠나지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안착할 곳을 찾는다. 미안합니다, 잠깐만 울겠습니다.


―「시의 집」부분


시인은 늘 시를 생각하고 시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 밤도 있다. 마음이 ‘허허로워 함부로 열어 보일 수 없는’ 때 괜시리 받은 사랑고백에도 시인은 시를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시를 쓰지 않아도 꽃이 되는 밤이므로 시인은 슬프지 않고 ‘슬프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생각만으로도 시를 쓰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행위예술가들만 하는 줄 알았던 행위예술, 시인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시에 파묻혀 시만을 생각하고 시만을 키워온 우중화 시인이 이제 자신만의 시의 집을 나와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할 것이라며 ‘이런 밤에도 꽃은 핍니다.’ 하고 시세계에 몸 담았던 자신의 탈자아를 선언한 시이다. 꽃을 피웠으니 열매를 맺을 일만 남았으리라.
시인의 삶은 늘 조용하고 고요하였으나 시의 출범으로 인해 많은 고민과 슬픔, 고독과 외로움을 통째로 데려와 삶의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키우기까지 시인은 매번 말하듯이 시에게 앙탈을 부리며 대꾸하고 덤비고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시의 출현을 기꺼이 마중하려는 준비를 해온 것이다. 그래서 겸손한 시인은 매번 시에게 자신의 심상을 드러내고 마는 실수를 범하고, 시 앞에서 ‘미안해, 잠깐만 울겠습니다.’ 라고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잘 다듬어진 비유를 통해 사적이고 은밀한 사실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솔직한 고백 같은 구어적인 언어를 통하여 심상을 잘 드러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 자신이 시 속의 일인칭 시점의 주체가 되어 독자와의 교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독자들은 자연히 관찰자시점의 객체가 되어 주체가 이끄는 데로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슬며시 동화되어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말들의 손이 나오고 발이 나오고 입이 생겨 호흡한다는 것은 어느 때일까.’ 독백처럼 던지는 시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움찔 놀라 공감을 하면서도 시인의 시적발상에 공감하게 된다. 이처럼 경험을 토대로 써내려간 순수한 시편들을 보다보면 누구나 심적 감화를 일으키게 된다. 생생한 현실이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바짝 긴장을 하게 만든다.


2. 시인의 향기


우중화 시인은 미사여구나 수사적인 표현들의 방법을 다 버리고 오로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시를 지었다. 시 속에 숨은 많은 상징을 시작법에서 배운 그대로 낯설게 하거나, 은유, 비유 등을 활용하여 표상하는 깃발처럼 나부끼며 보여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하여, 어떤 모습으로든 시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잘 숙성하여 한껏 시의 농도를 높여놓았다.  우중화 시인의 시는 시인을 대표하는 시적 묘사나 유명한 수사학적이고 고급스런 인용문구나 수려한 어휘들이 없다. 하지만 상징성을 우회하거나 비꼬는 일 없이 그러한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관찰력으로 이루어낸 시편들마다 독특한 시의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우중화 시인이 쓰는 단어들은 단아하면서도 수수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인의 목소리가 그대로 내재되어 있어 현실 속으로 들어가 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의 인생의 항로에서 봄직한 단어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수식을 인위적으로 하기 보다는 자연스레 꽃을 보고 인사를 하듯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 시인의 향기가 농후한 우중화 시인의 시를 보면 시 속에 품은 속뜻이 계란껍질을 벗기듯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 날계란 껍질을 깼을 때처럼 풀어지기도 하여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대고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진다.
가려운 등허리를 나무껍질에 대면 묵은 생을 긁어준다.


사람을 볼 때마다 기우는 마음 더 반듯해지려고 애를 쓴다.
나무에 기대면 나무는 튕겨내지 않고 가벼워서 좋다.


사람에게 기대어도 나무와의 결합을 꿈꾸며 쓸어안는다.
나무에 기댄 몸은 휘어진 나무가 되고 숲이 되어 둥글다.


―「나무 산책」전문


수필의 한 대목을 읽듯 읽혀지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아이처럼 때로는 인생을 달관한 어른처럼 자연과 사물을 대하고 말을 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우중화 시인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시의 형식을 이루어냈다.
시인은 늘 시와 노래하며 시를 밥처럼 먹고 시를 침실처럼 꿈꾸며 삭히고 묵혀 내어 놓는다. 위의 시 「나무 산책」에서 시인은 시를 나무 대하듯 즐기고 만끽하며 함께 산책하고 있다. 그늘 가까이에 있는 나무의 숨결 속에서도 주워 담은 언어들을 조합하여 시로 승화시켰다. 시인의 사색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풍경 속에 그려진다. 그녀의 수줍은 얼굴표정에 그윽한 풍경화 한 점 떠올려진다.


점점 새의 깃털은 창공을 벗어난 비대한 털이 되고 물고기 비늘은 윤기를 잃고 바다냄새를 구별하지 못한다. 더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는 깊음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네모난 꿈은 네모 모양을 만들다가 동그라미 꿈마저 지워버린다. 나의 세상을 만들지 못한 시인은 별을 잃는다.


나와 너는 더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의 익숙한 체위마저
잃었다. 옹이에 옹이를 박으면서도 고독하고 우울하다. 퀭한 눈 비대해진 살갗 사랑은 통속이 되고 별은 울지 않는다. 안락한 집 속의 개는 늙어만 간다.


―「생태적 삶을 찾아서」 부분
 
시인의 삶의 중심에는 늘 존재하는 많은 삶의 감정신호들이 존재한다. 그 감정신호들을 주축으로 하여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우중화 시인은 막상 자아를 버리지 않고 자기 존재의 틀 안에 가두어둔 오래된 감정의 기저들을 모으고 그것을 자세하게 나열하면서 자신을 객관화 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면서 조망한다. 누구나 큰 꿈을 꾸고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듯이, 우중화 시인도 직접경험이건 간접경험이건 많은 경험을 하였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제대로 실행되는 일은 없고 스스로 ‘별을 잃는다.’ 라고 하였다. 생태적 삶을 찾아 나서기보다 자기안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생활하는 자신을, 다른 사물을 들여다보면서 내면의 자아와 대화함으로써 삶을 통찰하는 자아의 세계로 부터 탈자아를 시도하는 것이다. 제목처럼 생태적 삶을 찾아 떠나는 시인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더 따라가 보려고 한다. 


당신에게로 나있는 숲길을 걷습니다. 길가에 키 낮은 꽃들은 온통 재잘거리고 가볍게 걷는 발등 위로 새들이 내려앉습니다. 커다란 떡갈나무 잎 제 손을 잡고 당신께로 이끕니다. 나는 좀 천천히 걸어보렵니다. 이 풍경을 조금 즐겨보렵니다. 한 그루 나무로 뿌리내리고 있을 당신은 견고할 테니까요. 조금 늦는다 해서 자리를 옮기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를 숨기기도 하고 당신을 비밀스럽게 하기도 하고, 톡톡 내 몸을 투명하게도 하는 안개는 당신 숨결입니다. 투명해지는 속살은 연분홍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노랑나비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손바닥 위로 별이 쏟아집니다. 당신의 손이 별빛 안으로 숨습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됩니다. 팔딱팔딱 뛰는 혈관이 황소가 되어 끌고 온 봄입니다.
내가 찾아냈어요. 살아낸 당신의 生이 아름다워요. 나를 먹이시는 당신


―「춘곤증春困症」 전문


만찬이 된 시집은 취해서 졸고 시인의 눈이 불그레해진다.
좋은 시 많이 쓰라 고기 한 점 더 얹어주는 이 남자 시인이다.


―「고깃집 남자」부분


춘곤증은 겨울 동안 움츠렸던 인체가 따뜻한 봄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호르몬 중추신경 등에 미치는 자극의 변화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라고 하는데, 이는 봄이 되면 밤이 짧아지고 피부의 온도가 올라가며 근육이 이완되면서 가지는 나른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를 곤란에 빠뜨리는 요물이다. 우중화 시인은 봄이 당신을 먹이신다고 하였다. 시인은 언어를 주물러 조화를 부리는 요물이므로, 봄에 더욱 왕성한 교태를 부리며 시인을 호리고 시인의 눈과 귀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모든 꽃과 나비와 나무들에게서 시의 정령을 이끌어내고자 도술을 부리며 조화를 부리는 것이다. 우중화 시인은 시적인 귀여운 요물인 셈이다.
요물이 된 우중화 시인을 더 호리는 이 남자를 주목하시라. ‘만찬이 된 시집은 취해서 졸고’ 어느 출판기념회를 연상시키는 이 대목은 시인의 시어를 잘 버무렸다. 우중화 시인을 잘 떠올리게 하는 환한 얼굴과 매치되면서 장면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누구든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알리는 일은 어색하고 서투르기 마련인지라 시집이 ‘먼저 취해 졸고’있는 시집만찬이야기는 흐뭇한 풍경이다. 
그러한 풍경마저도 시로 승화하여 표현해내는 우중화 시인의 다음 시에서는 톡톡 튀는 재치가 시에 그대로 들어간  작품이다.


물고기들은 초저녁 붉은 등 아래서 엉거주춤 춤을 추지요.
수직으로 올라만 가던 그림자를 잘라내 의자에 앉히지요.
술잔은 물고기 한 마리 끄집어내어 차고 날기를 원하죠.
물 만난 물고기 한 마리 언제든 떠오를 기세로 준비합니다.


마주한 물고기들 함께 춤추다가 상대를 먹어치우려 하죠.
뿌려주는 밥 먹고 갈아주는 물을 마시며 물고기는 살다가,
지느러미 자라면 대양의 파도 따라 유유히 헤엄치지요.
뱃속에서 생명 떠오르고 마침내 한 마리 고래 되어 날지요.


―「물고기 날다」전문


물고기가 어떻게 날까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시적 발상으로 시작하여 시적 발화로 꽃피운 독특하고 기지 넘치는 시다. 철학자들에 의하면 죽음에 대한 염려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 속의 인간들의 세상에서 존재의 유한성은 물고기가 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물고기라도 날아가게 그것도 ‘고래 되어 날지요.’ 하고 크게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주변의 영역들이 그러하듯이 존재의 이유는 같으므로 한 가지 길로 통하는 것이리라.


3.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시를 쓰는 작업은 시인들마다 각기 다르다. 20세기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를 쓸 때, ‘무언가 뭉클하고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치밀 때’라고 하였고, 19세기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머리 전체가 폭발해 나간 것 같은 느낌 일 때’ 글을 쓴다고 하였다. 또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셸리는 ‘시란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의지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즉 나는 지금부터 시를 쓰겠다는 의지만으로 시가 써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 어깨를 움직여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이상 시인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오직 시를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바람을 타고 오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차디찬 불모의 땅을 휭단하기도 하다가, 여전히 머물지 못하고 떠다니는 섬을 돌아 결국은 그대를 물고 옵니다. 바람은 닿는 곳마다의 사연을 품고 발 닿았던 곳의 얼굴을 살려냅니다. 바람에 묻은 얼굴은 사람의 머리카락에 묻어 불기도 하고, 가슴에 붙어 불기도 하고, 손 안에도 입속에도 눈 속에서도 붑니다. 헤어진 사연들이 많은 이에게 가벼이 달라붙습니다. 그럴 때면 바람의 색채는 왜 그렇게 다양한지요. 바람의 주름 속에 스며든 여러 기억들은 한동안 바빴던 서정을 일으킵니다. 가로놓인 경계를 넘어 계속해서 몸을 건드립니다. 결코 가볍지 않게 그대를 써서 보냅니다. 그곳의 바람은 이러했군요. 당신이 좋아했던 자작나무의 숲을 안고 있군요. 타닥타닥 달빛에 나무 타는 소리는 당신이 부르던 노래를 담아내는군요. 당신의 옷자락 속에 담긴 정다운 말을 풀어 놉니다.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붑니다.


―「바람의 방문」 전문


그래서 시인들은 늘 낯선 누군가와의 대화도 서슴지 않고 시도한다. 낯 선 경험, 익숙한 경험, 대리경험, 등 많은 경험들을 토대로 독백처럼 거울을 보듯이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려한다. 그 이유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시인은 끝없는 자기성찰과 자아의 발견을 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고 감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붑니다’ 우중화 시인은 그 바람을 기다리는 꽃잎이고 나뭇잎인 것이다.


시를 쓰는 것보다 시를 읽는 것에 안도하게 되는 밤이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는 노동이 되는 하루의 끝이다.
시인이 지녀야할 낯선 낭만을 품어보다가 너덜해지는 밤,
새로울 것 없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알아차릴 것이다.
매의 눈으로 분석하며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엑스레이로 몸을 찍듯 문장 행간을 여실히 잡아낼 것이다.
시는 이러해야 한다고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 쏟아지겠지.
절절한 연애문장 하나 만들지 못한 시를 흔들 것이다.


우리가 시로 노래하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결국은 너였다는 것을 기억해내.
너를 어떻게 비밀스럽게 집어넣고 써볼까를 연구하게 돼.
너를 붙잡고 연애하자고 덤벼들며 시다운 시를 노래할까.
노골적인 가을이 화들짝 놀라 저만치 달아나고,
새벽이 다 지나도록 훔쳐본 시들이 꿈틀대며 일어선다.


―「연애감정을 느껴요」 전문


시인은 늘 시를 가까이 하며 서정적인 시각과 세세하고 세밀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대하고 느끼며, 오감으로 시를 음미하며 지으려 한다. 우중화 시인은 그 못지않게 늘  시를 가까이 하며 밥을 먹는 일과처럼 시와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평생 시를 써야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 누군가 평생 시를 업으로 여겼던 일처럼.


눈비 내리고 비, 비 안으로 스미는 눈, 눈으로 흐르는 비,
마디마디 꽉 조였던 기억이 느슨해져가는 하루의 풍경.


보고 싶어요. 같은 공간을 서성거리고 싶어요. 그리워요.
그대 온기 사라질까 불안했던 날들엔 살갗을 두드려요.


누군가의 행복은 내 슬픔 위로 지나가고,
누군가의 죽음은 내 기쁨 위로 스쳐간다.


오각형 무늬 만들어 밤하늘에 올리면 별이 될 수 있을까.
늘 공존하는 세상 미묘한 간극 사이로 눈비가 춤을 춰.


읽히지 않는 불안한 시집 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도망칠 수도 없는 아름답지 못한 기억이 지나간다.


슬픈 이야기가 슬며시 목구멍으로 파고든다.
똬리 틀고 어딘가에서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이중의 계절」 전문


시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행복은 내 슬픔 위로 지나가고,/누군가의 죽음은 내 기쁨 위로 스쳐간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읽히지 않는 불안한 시집 위에 맹목적으로’ 암묵적으로 우리는 ‘복종하며’ 살아가는 형편이니까. 그래도 시인들은 시를 놓지 않고 품으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꽃으로 환하게 필 것을 기다리며.


4. 의식의 환원적 감화感化


시인은 모름지기 새로운 시어의 방향과 새로운 기법의 탐구를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은 시인이 시에 대한 탐구와 모색, 연구와 창조에 앞장서는 언어의 선구자이면서 독자들의 감화를 얻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화라고 하는 것은 나츠메 소세키가 『문학예술론』 중에서 말한 감화와도 같다. 그는 책에서 감화感化란, 일치한 의식의 연속이 우리들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와서 우리들이 이미 작품을 떠난 뒤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이른바 감화感化라고 하였고, 일치라고 하는 것은 나의 의식과 상대방의 의식이 있어서 그 두 가지 의식이 합해져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며, 그러나 그것은 일치하기 전에 말할 수 있는 표현으로서 이미 일치한 뒤에는 하나도 없고 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단지 마음껏 즐기는 순간은 시간도 공간도 없고 단지 의식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의식의 연속 가운데서 비교적 연속이라는 것을 위주로 해서 이상이 나타나면 대부분 문학이 된다면서, 의식이 움직이는 모양을 이상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환원적 감화를 쉽게 받도록 하는데 이것을 움직임의 환원적 감화라고 하였다.
그런 문학적 자료를 들추어보지 않더라도 우중화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저절로 감화를 일으킨다. 여기에 배려와 겸손, 인내와 인정이 넘쳐나는 우중화 시인의 작품을 보면 알게 된다.


죽은 자가 그리운 건 잘 살아내지 못한 미안함이다.
잘 살겠다고 약속한 무덤가에 꽃을 피우지 못함이다.


꽃이 피기 전 초록잎 솟기 전 눈물 씨 고이 심어놓고,
잿빛 무덤가 물 주지 않고 마냥 바라보기만 하는 까닭이다.


살다가 문득 떠난다는 말도 없이 죽은 이가 그리운 건,
지켜내지 못한 약속이 퇴색하여 못내 미안한 것이다.


하루종일 물기 머금고도 푸석해지는 하늘 올려다보고,
눈뜬 자는 다시 그가 살아내지 못한 생의 시간을 걷는다.


어떤 날 별빛이나 달빛이 어둠 속으로 부셔져 내리는 것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대가 나를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리.


―「모호한 감정의 어느 하루」 전문


누구든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대가 나를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리.’ 시인의 심상은 읽는 이의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시를 읽고 감화를 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씨앗으로 뿌려져 심상이 자라는 것과 같이 심상이 꽃 피워 가슴이 저미는 통증을 실감하는 것이라고 한다. 감화를 느꼈을 때 그것은 서로가 교감을 통하여 교통을 했다는 것이고, 교통을 한 교감은 서로의 심상이 언어만으로도 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면 우중화 시인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말 한 마디 언어 한 소절 잘 다듬어놓은 격조 있는 시편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모호한 감정의 어느 하루」는 실제로 누구나 그렇게 느끼지만 막상 표현하기 어려운 심상을 고스란히 잘 드러내었다. 툭툭 고랑에 씨 뿌리듯 던져둔 어휘들이 착착 빛을 발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한다. 처량한 듯 슬픈 듯 진혼곡 한 소절을 들은 것같이 깊은 울림이 감돈다.


게으른 봄이다. 봄이 온다고 노래하는 입춘. 아직은 아니야, 보도블록 틈새로 눈이 녹아내린다. 오래전 잊지 않고 올 거야 했다가 불쑥 오기도 했던 약속 몰래 지키며, 10여 권의 시집 성급하게는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긴 겨울밤이다. 동면의 시간을 잔잔한 호흡으로 견디어내는 봄은 여전히 느리구나. 겨우내 꾸던 꿈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다시라는 시간이 올 수 없다고 믿은 그 언제쯤, 몰래 숨겨둔 흔한 거짓말 키워내며 허겁지겁 삼킨 그리움. 고백이 준비되지 못한 날것의 정서, 우리들의 봄이 느린 건 아직은 덜 여문 열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는 길고양이 등으로 잉여의 빛이 쏟아진다. 날이 풀리며 새 한 마리 노래하는 틈새로 달려나올 아이의 웃음이 덮인 연한 초록빛 영역, 봄, 그대 오는 시간이다.


―「봄이 온다」 전문


우중화 시인은 섬세하고 여리고 투명한, 속이 훤히 내비치는 유리거울 속에 많은 것들을 감추고 서서히 유혹하는 만화경이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봄은 많은 사연과 많은 사유들을 품고 재생산되어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하고 다시금 봄을 그리게 한다. 시인이 보는 봄은 열정의 봄이면서 막 승선하려고 제일 높은 곳에 돛을 다는 여객선처럼 부풀어 있다. ‘10여권의 시집 성급하게는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긴 겨울밤’을 보내고 얼마나 ‘그대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나. 시인은 늘 그리움을 안고 사는 것이다.


하늘 향해 팔 들어 거리를 재보지만 손끝에 닿는 건 무한의 공간이다. 낮은 키로 올려다본다는 것은 가장 단단하게 본다는 것이다. 빈틈없이 들여다보는 시선은 결코 높음이 부럽지 않다. 결코 작음이 아프지 않게 사실을 본다는 것이다. 자신이 있는 위치와 하늘의 위치 사이에 많은 것을 품고 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낮은 자리를 고수한다. 거친 흙 속에 뿌리내리고 주어진 환경을 자신의 영토로 개척한 견고한 생과 마주한다.

네 옆에 누워 시를 읽는다. 길을 걸을 때마다 바닥을 본다. 들려주는 너의 향기를 맡는다. 오늘도 낮은 자리에서 높은 곳을 바라본다. 대지의 낮음을 듣고 지상의 높음을 동경하며 일부러 발돋움 하지 않는다.


―「제비꽃」 전문


우중화 시인과 꼭 닮은 꽃이다. 시인을 닮은 낮은 꽃들은‘대지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낮은 자리를 고수한다. 거친 흙 속에 뿌리내리고’ ‘대지의 낮음을 듣고 지상의 높음을 동경하며 일부러 발돋움 하지 않는다.’ 시인은 늘 해맑다. 시원한 표정으로 함박웃음 짓는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그래서 우중화 시인의 주위는 항상 웃음꽃이 만발한다.


절정의 날 위해 오랜 시간 품었을 바람만 아는 꽃씨의 꿈
서릿발 내린 달빛 한 줌 강렬하게 내리꽂던 붉은 빛살
바람은 흔들어 깨워 꽃만이 누릴 수 있는 계절을 열고


경계를 넘어선 꽃잎은 오르가즘 앞에 환희의 몸을 떤다
먼 훗날 아주 오랜 후에 꽃은 기억할 수 있을까
바람이 준 최고의 환대와 분홍빛 연정은 부끄러울까.


―「다시 꽃으로」 부분


우중화 시인은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로의 반전과 미반전의 묘미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시적 소화능력을 발휘하여 시적 소화불능으로 인한 통증을 잠재우는데 시인의 진술전략이 돋보인다. ‘먼 훗날 아주 오랜 후에 꽃은 기억할 수 있을까/바람이 준 최고의 환대와 분홍빛 연정은 부끄러울까.’ 특히 독백적인 언어의 재미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숨어있는 시어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것이다. 이 시 에서는 제목처럼 「다시 꽃으로」 자신의 능력을 믿고 계속 꽃을 피워 나가야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중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녀의 사랑과 사랑을 나누는 체위들이 그녀의 시각과 촉각 그리고 그녀의 시어들의 조합으로 인하여 시詩꽃이 피고, 고차원적이고 사유를 요하는 어려운 그것들과는 다르게 비처럼 줄줄 감화를 얻게 된다. 그래서 고요하고 단아한 울림 있는 품격이 뿜어져 나온다.
우중화 시인은 항상 시와 따로 떼어 부를 수 없는 시인 중에 시인인 것이다. 그녀의 시를 음미하다보면 내면의 바다에서 일렁이는 물결과 같은 출렁이는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심연의 바다 깊숙이 자리한 시인의 순수한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언어와 조화를 이루어 물결치고 있다. 오늘도 우중화 시인은 일렁이는 언어들을 심연의 깊은 바다 속으로 불러 모아 아마도 깊은 사색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정 령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본지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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