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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산문/김형숙/곁에 있는 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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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46회 작성일 20-01-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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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산문/김형숙/곁에 있는 먼 당신


김형숙


곁에 있는 먼 당신



하고많은 이별 중에서 가장 원통하고 가슴 아픈 이별은 사별이다. 오늘은 아내가 내 곁을 떠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슬픔과 그리움으로 보낸 날들이 벌써 7년이 흘렀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허전하고 텅 빈 가슴은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아내와 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 신의 뜻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벌을 준 것은 아닌지 가슴이 미어진다.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가라 하는지 비통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그 모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용케도 잘 버텨온 것 같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말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나갔느냐고 묻고 싶지만 목이 메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뿐이다.


아내의 제사상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우연히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산지가 30여 년, 켜켜이 쌓인 애환의 역사가 너무 절절해서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어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도 신의 허락이 없으니 어찌할 수 없지만 영혼이라도 함께한다면 다소나마 슬픔이 가실 것 같다.     


제사를 지낸 후 그동안 방치해둔 서랍장을 정리하려고 열어보니 가족, 직장동료, 사회친구들이 몰려다니면서 마구 찍은 빛바랜 사진들이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채 어지럽게 널려 있다. 먼지에 쌓인 사진 속에는 내가 살아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사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말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사진 속에서 천사처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너무도 사실 적이어서 살아 있는 듯 체온과 촉감이 느껴진다. 추억을 더듬어서 지난날로 여행을 하는 동안 복받치는 감정을 잠시 잊었다. 기쁨만 누리는 사람은 슬픔을 잘 모르고 슬픔에만 잠겨 있는 사람은 기쁨을 누릴 여유가 없을 테니, 그리 보면 나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갖고 사는 평범하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외국에 사는 작은 딸이 4년여 만에 고국이 그립다고 귀국하여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 집이 있는데도 굳이 아빠 집에 머무르고 싶단다. 덕분에 밥 짓고 청소하는 집안일은 잠시나마 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다. 한 달 여 있는 동안 가까운 뒷산을 산행하면서 부녀지간에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다니는 아빠 친구들과 어울려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늘은 큰딸, 작은딸과 함께 아내가 잠들어 있는 에덴동산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얼싸안고 기쁘고 슬픈 이야기들을 원 없이 나누기를 바란다. 엄마 살아생전에는 서로 떨어지면 큰일 날쌔라 붙어살았다. 남들은 세 자매처럼 다정하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화목한 가정에 사랑이 넘쳤으니 즐거운 노래만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홀연히 떠나버렸다. 가족들이 떠안은 슬픔은 견디기 힘들었다. 두 여식에게 불어 닥친 아픔은 한으로 남아서 지금도 눈물을 훔치곤 한다.


그런데 세월이 슬픔을 잊게 하는 묘약인가 보다. 또 시간이 아픔을 낫게 하는 자연치료제인 것 같다.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인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발걸음이 더디어진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사별의 슬픔이 점점 누그러진다. 그의 또렷한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진다. 속물 인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이 편할 때는 잊어버리고 언짢거나 힘들 때 찾아와서 푸념을 털어놓는다. 그래도 언제든지 찾아와서 맺힌 응어리를 풀라고 웃음 띤 얼굴로 포근히 대해준다. 언제나 내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그가 있어서 슬픈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것 같다. 이제 나를 내려놓고 극락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곁에 있지만 너무 먼 당신, 마음에 상처가 깊으면 몸도 마음도 상하기 쉬우니 애틋했던 호시절만 이야기해요.





*김형숙 《시문예》 수필 등단. 저서 『곁에 있는 먼 당신 』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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