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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권두칼럼/정미소/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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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8회 작성일 20-01-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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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권두칼럼/정미소/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정미소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다. 라디오에서 영화 ‘선생 김봉두’의 배경음악인 양희은의 노래 ‘우리학교’가 흘러나온다.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서 내 어린 날의 초등학교를 떠올려본다. 지금은 쌍용양회 동해공장이 들어선 부지에 학교가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가 황토흙 운동장을 울타리처럼 둘러서서 오고 가는 계절을 알려 주었다. 봄 가을이면 가까운 무릉계곡으로 소풍을 다녔다. 무릉반석에 모여 앉아서 수건 돌리기를 하며 술래가 되기도 하고 벌칙으로 엉덩이춤을 추기도 하였다. 같은 반인 경찰서 지서장 딸도 읍사무소 소장 아들도 교장선생님의 일란성 쌍둥이도 함께 벌 받고, 운동장을 구보하고, 분수를 못 풀어서 ‘나는 분수를 모릅니다’ 피켓을 들고 복도를 순회하였다. 누구도 특별하다거나 차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는 잡동사니 일을 보는 소사 아저씨가 계셨다. 아저씨는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우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배급으로 나오는 우유를 나누어 주고, 빵을 나누어 주고, 운동회에는 그가 달아놓은 만국기와 회벽으로 그어놓은 금을 따라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재미로 박을 터트리며 청백 이어달리기를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찐 달걀, 삶은 밤, 과일종류를 들고 쪼르르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어른들이 그에게 막걸리를 권하며 격의 없이 대하던 모습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을 알지 못했다. 그런 그가 돌아가시자 학교 운동장에는 꽃상여가 놓여졌다. 전교생이 모여 합창으로 ‘고향의 봄’을 불렀다.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은 발전을 하였다. 전 세계는 지구촌 한 가족이 되어 빠름, 더 빠름의 속도에 실려 질주하고 있다. 학교는 콩나물학급이 사라지고 개인의 삶과 물질적인 풍요는 이전에 없었던 축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속도에 떠밀려 여유 없이 내달리는 삶이 오히려 불안하고 고달프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은 다양하게 형성되었지만 소외감이 존재하고, 자본주의가 내포한 빈부 간의 격차는 갈수록 크다. 풍요와 편리함 이면에 고독사와 자살의 빈도수가 늘고, 분단국가가 겪는 전쟁의 위협까지 일상생활이 되었다. 어쩌다 인터넷이 말썽을 부리면 원인이 해결될 때까지 느긋하지 못하고 좌불안석이다. 손에서 잠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안함이다.


한 때 시인은 국가적 영웅이어서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도 하였고, 모국어 수호에 이바지하여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같이 속도로 내달리는 디지털의 시대에서는 문학은 죽었고, 시는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비평가들은 시는 시인들끼리만 읽는 전유물이고, 작년도 국세청의 발표는 국민 1인당 도서구입비 지출이 5천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학이나 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각박하고 좌절하기 쉬운 이 시대의 폭풍 속도를 역주행하며 느리게, 더 느리게 살자고 한다. 알 수 없는 불안에 휘둘리지 말고 한량처럼 시간을 베고 누워 자기성찰을 하자고 한다. 풍요로운 삶이 어떤 것이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알자고 한다. 양희은의 노래 ‘우리학교’를 따라 부른다. ‘미루나무 따라 큰 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이 정체는 풀리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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