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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특집Ⅱ내 시의 스승/박일/창작의 바탕을 생각하게 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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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25회 작성일 19-07-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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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특집Ⅱ내 시의 스승/박일/창작의 바탕을 생각하게 되는 시


창작의 바탕을 생각하게 되는 시


박일



1. 시는 영원한 물음표와 같다
시를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이다. 가치 있는 의미의 맥락과 언어의 조합, 시상의 결집, 그리고 형상화를 통한 승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기에 시 한 편을 쓰기가 늘 조심스러워진다. 시 한 편에 응축되는 ‘시의 힘’은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보편적이지만 특수성을 겸비한 객관화는 언어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마음의 울림으로 남는다. 그래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시인들은 수많은 사색을 하며 글을 가다듬어 시를 쓴다.
시의 정의에 관해 고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설說이 있지만 명확한 해답은 없다. 시 창작 기법에 관한 책들도 많이 있지만, 스스로 터득해 자기만의 개성적인 문체를 창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 모방을 많이 해야 창작이 된다고 하지만 모방은 어디까지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시인들의 시작법을 흉내 내어 얼기설기 엮으면, 시가 아니라 혼이 없는 누더기일 뿐이다.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쓰면 그건 더 우습다. 우물 안 개구리 형상의 언어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쳐다본다.
‘시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이렇듯 자신의 길을 찾는 시 창작 여행은 고통스럽다. 이성으로 언어의 천을 만들어 시 형식에 꿰어 옷을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는 감성의 언어이다. 의미를 가진 언어를 감성으로 감싸서 형상을 통해 개념을 보여주자니 청춘의 언어가 기본인 셈이다.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의식 속에 밑바탕이 된 생활 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럴까? 이성으로 무장한 시도 많이 있다. 독트린doctrine에 의거한, 또는 이데올로기ideology에 입각한 작품도 많이 있다. 참, 어렵다.
한편에서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적 의미를 가지고 인간내면의 탐구를 보이는 시도 있다. 더 나아가 일상 속에서 읊조림, 욕설, 비난, 비판, 자기학대 등등의 모순적 시각이나 변형된 시선으로 뒤틀림 속의 세상을 통해 자아를 찾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신문의 일부나 삽화, 메뉴판의 일부를 차용한 시도 있고, 산문적 여행기에다가 종교적인 구도의 내용을 첨가하고, 외국시 번역투의 세계화된 스타일까지 각인각색의 신종 이론과 작법이 나온다. 최근에는 섬세한 자기 의식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소소한 부분까지 들추어 퓨전fusion화된 시까지도 볼 수 있다.
글쎄, 정답은 없다. 예술과 반예술反藝術의 경계처럼 시가 거울에 비추어져 내면인지 외면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어렵다. 뒤집어보고, 꼬아서 보고, 해체해서 보고, 탈피해서 저 멀리에서 또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아도 어렵다. 보고 또 보아도 시인의 시심詩心을 이해 못하면 진짜 시가 어렵다. 일반 독자가 읽어 보면 이해하기 난해한 언어의 집합이 되어버린다. 하물며 형식까지 경계가 사라지는 접점에 이르면 더욱 어렵다.
장르genre가 분화를 거쳐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는 행태도 보인다. 시, 소설 등으로 확실하게 분화된 특성을 보이던 것이 근래에는 두루뭉술하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변화무쌍하며 개인적 특성이 강한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모양이다. 게다가  ‘상대성 알고리듬algorithm’에까지 이르면 언어의 조합에 의한 난해한 정신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현학적衒學的이며 고상한 문학이 ‘자기만족自己滿足’ 속에서 탄생한다. 개연성 있는 말하기telling를 지나 무절제한 보여주기showing로 확장이 되고 있다. 마치 신형 전자제품의 신제품을 보듯, 신인류의 순간적인 변환 속에 시가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시가 나에게 묻는다. 왜 어렵게 시를 쓰려 하는가. 하고 싶은 대로 써 봐, 쓰지도 않으면서 생각만 많아서 무엇을 쓰겠느냐고.

 

2. 시인은 삶 자체가 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문학적 가치價値’에 대한 변화가 심하다, 강자는 강자의 논리로 약자는 약자의 방식대로 ‘문학권력’의 주변에 산재散在하며 존재한다. 문학 세계도 인간 세상과 똑같다. 문학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탄생했으니. 인간은 처음에는 쉬운 언어를 사용하나, 세상을 살다가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어려운 용어를 구사한다. 어려운 용어가 장식품처럼 자신의 정신성을 돋보이게 하는 가치로 변해 버렸다. 가치의 물적 욕망이 언어화하는 세상인데 시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981년도 겨울이었다. 편운片雲 선생님을 찾아뵙고 습작 노트 첫 페이지에 “선생님, 시에 대해 생각해야 할 점을 써주십시오.” 하고 청을 드렸더니 “좋은 시는 열심히 사는 곳에서 샘 틉니다.”라고 적어 주셨다. 편운片雲 선생님이 문과대학 학생들에게 늘 말씀하셨던 ‘꿈’을 기반으로 치열하게 살며, 열심히 쓰면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격려였다. 그리고 젊은이라면 지녀야 할 정신적인 ‘멋·사랑’이 포함된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꿈·멋·사랑’―단순하며 가벼우나, 무겁다면 무거운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들. 그 단어들에 대해 대학 시절에는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
편운 선생님의 시를 읽어보면 곳곳에 이 단어들의 확장된 의미가 특유의 어법과 철학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지가 명징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인생’ 자체에 대한 존재 의미를, 그리고 그것이 시임을 늘 깨닫게 된다. 선생님은 열심히 사시며, 그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시로 치환하실 줄 아는 분이셨기에 이렇게 명쾌하게 써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삶 자체가 시였으니, “나는 시가 허락하는 인간을 살고 있다. 영혼에서, 육체에서, 지성知性에서, 본능本能에서.”라는 말씀과도 같이 많은 시집을 내셨던 거다.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사랑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죽기 위해서 시를 쓴다


때론 쓰리게
때론 아리게
때론 축축히
때론 멍멍히
때론 줄줄히


버리기 위해서 시를 쓴다
빈 자리가 되기 위해서 시를 쓴다
혼자 있기 위해서 시를 쓴다


아름다움의 외로움을
사랑스러움의 쓸쓸함을
깨달음의 허망함을
연습하며
실습하며


비켜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놓아 주기 위해서 시를 쓴다
물러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삶과 죽음,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소유와 포기,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상봉과 작별, 그걸 같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널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


― 조병화, 「어느 生涯」


시가 생활인 삶, 삶 자체가 시가 되는 삶. 선생님은 시인의 삶을 이렇게 알기 쉽도록 명확하게 써놓으셨다. 이 시는 인간이라면 느끼는 ‘순수 고독, 순수 허무’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시어들로 이루어져 절제되고 응축된 선생님 내면의 목소리가 담겨 있음을 느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렵지만, 표면상으로는 마치 곁에서 속삭이듯이 쉽게 읽히고 선생님의 평소 말씀처럼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깃들어 있다. 이 시 자체가 말하는 시의 생명력은 곧 시인의 생애요, 생애는 시이니 시는 곧 삶과 등가 관계를 이룬다. 가치 있는 삶이 시인의 삶이고 그 가치가 투영된 시야말로 ‘인생의 가치’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시 창작을 하는 근본 바탕이다.





*박일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랑에게』, 『바람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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