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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우중화/꽃은 다시 필라나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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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우중화/꽃은 다시 필라나요 외 1편
꽃은 다시 필라나요 외 1편
우중화
그의 어깨 위로 그늘이 쏟아지고
축 처진 바짓단이 계단을 쓸며 지하로 내려가요.
맑은 얼굴들이 그의 등을 부지런히 밀고
어깨를 밀며 만원 전동차 안으로 밀어 넣어요.
발바닥 까진 구두가 새 구두들에게 채이고
서류가방은 열려 찢긴 서류들이 되어요.
술 취한 구두뒤축이 비틀거리고
넥타이 줄이 한없이 조여오고 출근복은 매번 울어요.
벌게진 얼굴 앞으로 젊은이의 단단한 이마가 박혀들어 오고
생소한 말들이 엉덩이를 밀어내요.
반복되는 고지서는 끝이 없고
청구서들은 기간을 연장하여 덕지덕지 눌러 붙어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지만
넥타이를 풀고 구부리고 앉은 등짝에는 해가 뜨지 않아요.
반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난 등껍질들이 터지면서
두 번째 꽃은 다시 필라나요.
아파야 별이 뜨는
앓을 때까지 앓아야 한단다.
실컷 앓고 나야 오히려 별을 볼 수 있단다.
아홉수를 넘기는 거라고
아프게 넘길수록 오십에 꽃을 피울 거라 한다.
뼈마디마디를 달구고 두들기고
온몸의 수분이 마를 때쯤이면 더욱 선명해지는 것
독감이 몸속을 파고들수록 불들이 켜지고
그 사람은 얼음송곳이 되어 파고든다.
잠복기를 지나 터진 열병은
여자의 머리채를 붙들고 놓지를 않는다.
서로의 경계가 달라붙어
불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한 겨울밤의 몽상 사이로
불면의 밤들이 한 백년쯤 이어지고
그제야 더 자라지 못했던 별들이 뜬다.
어두움의 가장 깊은 구멍은 뜨겁고
그 구멍 속에 오십의 여자가 산다.
*우중화 2019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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