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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서평/정치산/희망의 편린을 낚는 긍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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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27회 작성일 19-07-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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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서평/정치산/희망의 편린을 낚는 긍정의 힘


희망의 편린을 낚는 긍정의 힘
―명호경 『어머니의 난중일기』


정치산



시인은 보편성을 추구하며 가능한 세계를 탐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임무는 특정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인간에게 일어날 법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잘 그리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명호경 시인의 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공감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의 시들이다. 질박한 삶의 바다에서 희망의 편린을 낚아 올려 펼쳐 놓는 시인의 시들은 ‘바다’와 ‘섬’,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게 공감하게 한다. 그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이야기한다. 시인은 전남 고흥의 나로도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살고 있다. 바다와 섬의 이야기들, 그 질박하고 힘겨운 난투의 시간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살아내며 그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여러 상황을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러한 시인의 감성이 잘 담겨 있는 시들이 있다.


산에서부터 소나무가 쳐내려오고
마을 쪽에서부터 대나무 밀고 올라오고
유자밭이 진퇴양난이다
성근 두충나무 방호벽을 뚫고
가장자리는 대나무 첨병들이 점령하자
유자밭을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노모는 낫을 들고 올라갔으나
웃자란 잡초들의 저항에
낫질할 엄두조차 내질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놉을 사려 해도
젊은 사람일 마을에 없다는 사실에 시름하다
봉화를 대신한 휴대폰을 들고
만만한 막내아들에게 지원요청을 한 후
주말에 내려가 풀을 베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신다
토요일 내내 예초기 굉음이 유자밭을 지배하고
대나무와 어린 소나무 밑동이 잘리며 내는
단말마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포연탄우砲煙彈雨 시간이 지나고
유자밭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
이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아들에게 수건을 건네시는데
노모는 내년 봄까지 휴전을 이어갈 것이다
잡초들이 차지했던 자리마다 푸른 햇살을 받으며
유자나무는 노란 꿈을 키우다
은은한 향을 바람결에 풀어놓을 것이다.


―「어머니의 난중일기亂中日記」


명호경 시인의 시집 제목인 「어머니의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유자밭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낫질로는 엄두도 못 내고 사람을 사서 하려고 해도 젊은 사람이 없어 결국 막내아들까지 불러낸다. 대나무와 소나무에 둘러싸이고 웃자란 잡초들과의 사투에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예초기로 주변을 정리하며 유자밭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모습과 아들이 함께 한다는 것으로 인해 흐뭇해 하는 모습에서 우리 내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겹고 따뜻하면서도 다시 한 번 우리네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 떨어져 얼굴 한 번 보기가 대통령 얼굴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대통령은 벗 삼아 보고 있는 텔레비전에서 늘상 볼 수 있지만 이놈의 자식들은 명절이 아니면 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일도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자식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유자밭을 핑계로 막내아들을 불러들인다. 예초기로 유자밭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있는 아들의 모습 또한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시인은 첫 행을 어머니의 말인 ‘소나무가 쳐내려오’고 ‘대나무가 밀고 올라와’ 유자밭이 진퇴양난이라는 재미난 표현으로 시작해서 끝에는 ‘유자나무는 노란꿈을 키워서 바람결에 은은한 향을 풀어놓을 것’이라는 시인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시의 제목을 「어머니의 난중일기」라고 붙인다. 전쟁을 치루듯이 치열하고 힘겨운 농사일을 밝고 긍정적으로 풀어내어 읽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에서 시인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편 「창우와 어머니의 이야기」에서는 울컥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감정을 관조하고 거기서 울림을 일으킨다.


거친 막일로 가족을 부양했던 창우 어머니는 고단한 삶의 흔적으로 정수리 부분에 머리카락이 없어 연세보다 훨씬 늙어 보이셨다. 창우 말을 빌리자면 부산 대야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막노동으로 아들들 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해 살갗이 벗겨지도록 일해 머리카락이 빠졌단다.
자신이 어른이 되면 고생하신 어머니를 이곳 호텔로 모시고 좋은 음식을 드시며 편안히 주무시게 하겠다는 각오를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마다 했다는데 막상 원양어선을 타고 생활이 나아질 만하자 어머니가 위암말기 선고를 받으셨고 작은 것을 누릴 시간조차 주지 않느냐며 신과 세상에 원망과 울분을 쏟아냈다.
승선계약을 미루고 간병하던 중 암환자에 좋다는 약을 백방으로 찾아다녔고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차가버섯 분말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고가로 구입했지만 다 드시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자 슬픔이 바다보다 깊었다.
고생고생만 하시다 가셨다고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이면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내 손도 떨렸다.


창우는 아직 거친 바다에 있다. 가난을 벗어나 보겠다는 일념으로 혹독한 추위의 남빙양에서 심해어종 파타고니아이빨고기를 잡는 연승어선 일등항해사로 있는 그 역시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머리카락이 없는 정수리 때문이다.


―「창우와 어머니 이야기」


창우의 어머니와 창우는 머리카락이 없는 정수리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으로 슬픔이 가득한 한 개인의 인생사를 담담히 풀어낸다. 그 행간의 사이에서 「공자가어孔子家語」의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來者年也왕이부래자년야
不可再見者親也불가재견자친야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부모를 공양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질 않는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며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인 것이다.



부산 대야호텔 신축 공사장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막노동으로 아들들 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살갗이 벗겨지도록 일해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고생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자 다짐하면서 창우 본인도 거친 바다에서 원양어선을 타며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일했다. 이제 조금 살만해져서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했다. 자신이 어른이 되면 어머니가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고생해서 지어 놓은 대야호텔에 모셔서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편안하게 주무시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는 작은 것조차 누리지도 못하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 창우의 슬픔이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느낀 시인의 손도 떨려온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먼바다를 떠도는 친구의 모습을 창우는 가난을 벗어나 보겠다고 추위를 견디며 먼바다를 누비는 일등항해사로 아직도 거친 바다에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살아낼 것이기에 시인의 관조적 표현들이 읽는 이의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장인을 떠나보내며 슬픔을 달래며 작은 새의 동선을 쫓는 「환생」에서도 시인의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눈보라가 꽃처럼 나부끼던 날
뼈 속을 파고드는 한기 느끼며
나의 편 한 분을 보내드렸다


고관절 수술 후 무릎을 세운 채
여덟 해를 자리보전 하시다
입관식 때도 부메랑처럼 다리를 구부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마치 돌아올 거라는 표식을 남기며
영면의 길로 떠났셨다


묘자리 황토 구덩이에
눈과 바람과 추위도 유골과 함께 묻고
좋아하시던 담배에 불을 붙여드리자
거친 바람통에도
작은 새 한 마리가 묘 주변을 서성거렸다
막내처제는 아버지 영혼이 오신 것 같다며
더 슬프게 우는데
굽은 무릎이 보낸 메시지를 생각하고
내 눈길도 한참동안 새 동선을 쫓았다.


―「환생幻生」


‘눈보라가 꽃처럼 나부끼던 날’에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고관절 수술을 하셨지만 무릎을 마음대로 펴시지도 못하고 여덟 해를 보내신 장인은 ‘입관식 때도 부메랑처럼 구부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마치 돌아올 거라는 표식을 남기며 영면의 길로 떠나셨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표현에서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묘 주변에 서성거리는 작은 새를 보며 ‘아버지의 영혼이 오신 것 같다며 더 슬프게 우는’ 막내 처제를 보며 ‘한참 동안 새의 동선을 쫓았다’라는 시인의 표현을 만나게 된다. 시인도 막내 처제와 같은 마음으로 작은 새의 동선을 한참 동안 쫓고 있었으리라 짐작 된다. 누구나 한번은 왔다가는 길이지만 그것이 내 편 하나를 잃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면 또 얼마나 다른 마음이 될까 짐작해 보기도 하지만 나의 일이 아닌 이상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의 슬픔의 깊이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명호경 시인은 그러한 슬픔도 여전히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시인은 바다에서 낚싯줄을 당기며 쪽잠을 자며 고통과 아픔을 겪어낸다.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키워내며 담담함으로 긍정과 희망의 마음을 키웠을 것이다.


가로의 시선으롤 바다를 본다
네 눈 속 아름다운 그 곳
내 기억 속 아픔의 그 곳


쪽잠으로 나던 긴 하루
손톱 밑 새 살이 자라
밖에서부터 안으로
회색 선들이 영역을 넓혀가던 고통


손마디 사이 굳은살이 갈라져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데
낚싯줄 당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곳에서
넌 아름다움을 말하고
난 뼛속까지 그리웠던 간절함을 얘기한다


이제 세로의 시선으로 바다로 나서는데
고난으로 나지막이 희망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바다에서」


명호경 시인의 「바다에서」는 일상적인 바다의 모습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는 아름다운 바다지만 본인의 눈에는 아픔이 가득한 곳이다. 쪽잠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손마디 사이 굳은살이 갈라져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데 낚싯줄 당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삶의 터전이고 아픈 기억이다. 타인은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시인은 ‘뼛속까지 그리웠던 간절함을 얘기한다’ 바다를 먼 거리에서만 보는 사람들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얼굴만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파도치고 세상을 뒤집어 놓을 듯이 으르렁대는 바다의 기억은 없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그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 지난했던 삶의 아픔과 고통이 굳은살로 쌓여 이제는 어제의 고통을 이겨내고, ‘고난으로 나지막이 희망을 속삭이기 시작한다’라고 내일의 희망을 말한다. 시인이 겪어낸 언어만큼 생생하고 감동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바다의 모습은 우리에게 담담하면서도 큰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을 읽어내는 시인의 생생한 삶의 언어들에서 희망의 언어들을 자꾸만 건져보는 것이기도 하다.
명호경 시인은 바다라는 넓고 깊은 세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시 속에 담아낸다. 삶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손 놓을 수 없는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들을 겹겹이 담아낸다. 시 속의 인물들이 활어처럼 팔딱이며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희망으로 출렁거리게 한다. 「득량만 일출」에서도 이런한 면면을 느낄 수 있다.


부표 끝 깃발을 흔들며
바람이 얹혔다 지나가길 수차례
어둠도 미명으로 빗장을 풀었다


저시정주의보가 발효되고
안개는 바다 위 바다로 일렁이다 걷히면
물결이 햇살 태운 채 만을 향해 달려갔다


득량만 너른 품에서 평생을 산 어부가
밤새 조류 탄 그물 갑판 위로 올리고
싱싱한 파닥거림 잦아들 때 기다려
바쁠 것 없이 포구로 회향했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붉었다가
전어의 등 닮은 유선형 해안으로
에멜랄드 빛 바다 위로
둥근 희망만이 차오르고 있다.


―「득량만 일출」


바람이 ‘부표 끝 깃발에 흔들며 얹혔다 지나가길 수차례 어둠도 미명으로 빗장을 풀었다’고 시작하여 ‘둥근 희망만이 차오르고 있었다’라는 「득량만 일출」에서는 시인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평생을 득량만 너른 품에서 살아온 어부가 그물을 갑판으로 올리고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포구로 회항할 때는 하늘과 바다가 함께 붉고 둥근 희망만이 두둥실 떠오른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같은 기쁨이 가득 바다를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쪽잠으로 나던 긴 하루 손톱 밑 새 살이 자라 밖에서부터 안으로 회색 선들이 영역을 넓혀가던 고통 손마디 사이 굳은살이 갈라져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데 낚싯줄 당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그 바다에서 ‘밤새 조류 탄 그물 갑판 위로 올리고 싱싱한 파닥거림’을 가득 싣고 포구로 회항할 때의 기쁨과 뿌듯함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으로 봄을 맞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명호경 시인의 시집 마지막 시편 「봄비」를 살펴보면 그냥 오는 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견딤과 독려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봄은 오는 것이다.‘봄은 볕으로만 오지 않는다’고, ‘가벼운 가지 엉덩이를 토닥이며 끊임없이 독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봄은 예년에도 볕으로만 오지 않았다’라고 ‘그저 오는 계절이 없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 어려운 과정과 그것을 이겨내는 시간 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마음을 『어머니의 난중일기』라는 시집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명호경 시인의 시들은 ‘시인의 임무는 특정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인간에게 일어날 법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잘 그리는 데에 있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산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바람난 치악산』. 강원문학 작가상,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원주문학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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