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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아라포럼/고명철/재일조선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문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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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아라포럼/고명철/재일조선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문제의식*
재일조선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문제의식*
―분단과 냉전에 대한 '바다’의 심상을 중심으로
발제자:고명철(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1. 문제적 시집, 『니이가타』
최근 한국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재일조선인 문학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김시종金時鍾(1929~)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의 시선집 『경계의 시』(유숙자 역, 소화, 2008)가 한국어로 번역된 이후 그의 개별 시집 중 『니이가타』(곽형덕 역, 글누림, 2014)가 처음으로 완역됨으로써 그의 시세계에 대한 연구와 비평의 의욕을 북돋우고 있다. 사실, 『경계의 시』에서는 장편시집으로서 『니이가타』의 전모가 아닌 2부만 소개됨으로써 『니이가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이 글의 본론에서 상세히 논의되겠지만, 『니이가타』는 제주 4.3사건의 복판에서 생존을 위한 도일渡日 이후 일본 열도에서 재일조선인으로서 삶을 사는 김시종의 문제의식이 장편시로 씌어졌다. 이제 『니이가타』의 전모가 완역됨으로써 『니이가타』는 일본 시문학 영토에서만 논의되는 게 아니라 한국 시문학의 또 다른 영토에서 논의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다.
그렇다면, 김시종에게 시집 『니이가타』(1970)는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우리는 『니이가타』를 어떻게 읽어야 하며, 그래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일본어로 씌어진 『니이가타』를 이미 연구한 호소미 가즈유키는 “일본 땅에서 고국을 남북으로 분단하는 북위 38도선을 넘는 것이 김시종의 이후 생애의 테마가 되고, 동시에 장편시집 『니이가타』의 근본 모티브”라는 데 초점을 맞춰 『니이가타』를 매우 꼼꼼히 분석하였는가 하면, 오세종은 김시종의 시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일본 시문학 고유의 이른바 ‘단가적短歌的 서정’을 김시종이 극복하는 것에 주목함으로써 김시종을 서구 ‘현대사상’의 계보와 연관성을 이루는 것으로 해명하였다. 그리고 후지이시 다카요는 전후 일본에서 그 기반이 소실된 장편서사시가 김시종의 『니이가타』에서 김시종 특유의 리듬과 역사의식으로 태어나 “일본현대서사시의 부활이기도 하다”고 『니이가타』의 존재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이처럼 『니이가타』에 대한 일본 연구자들의 논의는 일본 시문학사의 측면에서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번역된 『니이가타』를 읽는 것은 그들의 시좌視座에서는 온전히 볼 수 없는, 그래서 그들의 시계視界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것을 탐침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치밀한 분석이 『니이가타』의 시적 주체들을 ‘재일조선인=얼룩’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으로만 수렴시키는 것은 『니이가타』의 부분적 진실을 해명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시문학의 영토 안에서 이 문제의식을 해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본 사회에서 비국민非國民의 억압적 차별을 받는 재일조선인은 ‘얼룩’과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이것에 대한 시적 이해는 절실한 과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일본 시문학의 경계 바깥에서 또 다른 시계視界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김시종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의식인 ‘분단과 냉전을 극복’하는 그의 시적 고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시종의 역사적 트라우마인 ‘한나절의 해방’의 역사적 실존의 감각으로부터 잉태한 자기혼돈이 그의 삶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일본제국의 충실한 황국소년皇國少年으로서 제국의 번영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해왔으나 그 일본제국은 또 다른 제국인 미국에 패함으로써 그가 겪은 충격은 몹시 큰 것이었다. 특히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에 의한 친일파의 재등용은 일본제국의 낡고 부패한 권력의 귀환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편되는 아시아태평양 질서의 틈새 속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분극화된 한반도의 분단은 청년 시절의 김시종을 반미제국주의의 혁명운동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주의 4.3사건 와중에 그는 목숨을 건 도일渡日을 하였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반미제국주의 혁명운동과 재일조선인 조직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약칭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경직성에 직면하여 조총련을 탈퇴하였다. 이후 김시종은 말 그대로 재일조선인 작가 양석일의 적확한 표현처럼 “남북조선을 등거리에 두고 자기검증을 시도”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시집 『니이가타』가 문제적인 것은 유소년 시절(10대)과 청년 시절(20대), 그리고 성인 시절(30대)에 이르는 김시종의 시대경험이 그의 “무두질한 가죽 같은 언어”를 육화시켰고, 김시종 특유의 식민제국의 언어를 내파內破하는 ‘복수復讐의 언어’로써 분단과 냉전의 질곡을 넘는 시적 고투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국의 지배(舊제국주의인 일본과 新제국주의인 미국) 아래 식민주의 근대를 경험하며 그 자체가 지닌 억압과 모순 속에서 반식민주의의 시적 실천을 수행하는 김시종의 시문학이 일본 시문학의 경계 안팎에서 보다 래디컬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김시종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장편시집 『니이가타』에 나타난 ‘바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신新제국달러문명’의 엄습
김시종의 삶과 시에 드리운 제국의 식민지 근대의 빛과 어둠은 바다의 심상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얼핏 볼 때, 광막한 바다가 주는 평온함과 무경계성은 상호교류와 호혜평등의 어떤 원리를 품고 있지만, 역사상 제국의 권력들은 바다를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각축장으로 전도시켜왔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김시종은 『니이가타』에서 구舊제국인 일본을 대신하여 신新제국인 미국의 엄습을 예의주시한다.
오오 고향이여!
잠을 취하지 못하는
나라여!
밤은
동면으로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것이 좋다.
천만촉광千萬燭光
아크등ark light을 비추고
백일몽은
서면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군함이 찾아왔다.
긴 밤의
불안 가운데
빛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의
시계視界에
눈부시기만 한
달러문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내 불면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 「제1부 간기雁木의 노래 1」 부분
김시종의 불면은 “서면으로부터/바다를 건너/군함이 찾아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군함은 “천만촉광/아크등ark light”의 조도照度를 비추는데, 기실 그 아크등은 “우리들의/시계視界에/눈부시기만 한/달러문명을/비추기 시작했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김시종의 시적 주체는 이 ‘달러문명’의 빛으로 차마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고 잠도 온전히 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광폭한 어둠을 동반하고 있다는 모순을 잘 알고 있다. ‘달러문명’의 빛이 광폭한 어둠을 동반하고 있다는 이 모순에 대한 시적 통찰이야말로 김시종의 시가 지닌 정치적 상상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을 신구新舊제국주의의 교체 과정에서 ‘달러문명’으로 상징되는 신제국주의 미국의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김시종의 시적 응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제국을 패전시킨 미국은 ‘달러문명’의 맹목을 향해 일본 제국과 또 다른 식민주의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반문명적·반인류적·반민중적 폭력을 극동아시아의 변방인 제주에서 자행하였다. 말하자면, 김시종에게 바다는 제국의 권력이 자랑스러워하는 근대세계의 문명의 빛이 발산되는 곳이자 그 문명의 빛이 지닌 맹목성에 수반되는 어둠의 광기가 엄습하는 곳이다. 김시종은 이 양면성을 지닌 바다를 4.3사건의 끔찍한 참상으로 재현한다.
단 하나의
나라가
날고기인 채
등분 되는 날.
사람들은
빠짐없이
죽음의 백표白票를
던졌다.
읍내에서
산골에서
죽은 자는
오월을
토마토처럼
빨갛게 돼
문드러졌다.
붙들린 사람이
빼앗은 생명을
훨씬 상회할 때
바다로의
반출이
시작됐다.
무덤마저
파헤쳐 얻은
젠킨스의 이권을
그 손자들은
바다를
메워서라도
지킨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소각로를
열었다고 하는
그 손에 의해
불타는 목숨이
맥없이
물에 잠겨
사라져 간다.
― 「제2부 해명海鳴 속을 3」 부분
해방공간의 제주는 분명히 달랐다. 제주는 한반도의 일시적 분단이 아니라 영구적 분단으로 굳어질 수 있는 북위 38도선 이하 남면만의 단독선거를 통한 나라만들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제주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미군정에 의한 친일파의 재등용과 온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한 나라만들기의 숱한 노력들을 반공주의로 무참히 짓밟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또 다른 신제국주의 시대의 도래를를 부정하였다. 4.3항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이 항쟁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제주인들은 생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4.3사건과 관련하여 김시종의 『니이가타』에 주목하는 것은 이 같은 제주인의 역사적 희생과 4.3사건에 대한 문학적 진실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대한민국 건립 과정에서 생긴 무고한 양민에 대한 국가권력의 폭력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김시종이 뚜렷이 적시하고 있듯, 4.3사건은 절해고도 제주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국가권력의 폭력 양상을 넘어선 미국과 일본의 신구제국의 권력이 교체되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김시종에게 바다는 이 같은 국제질서의 대전환 속에서, 특히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세계전략 아래 제주를 살욕殺慾의 광란으로 희생양 삼는 비극의 모든 현장을 묵묵히 응시해온 역사적 표상 공간으로 인식된다. 김시종은 일본 제국도 그렇듯이 미국도 스스로 제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대상을 제거하는, 그리하여 목숨을 물화物化시켜버리는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의 반문명적 모습을 바다를 통해 뚜렷이 인식한다. 때문에 김시종은 19세기 말 조선의 문호를 강제 개방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부친 묘를 도굴하는 패륜적 만행을 저지른 미국의 손(“젠킨스의 이권”)과, 히틀러의 반인류적 살상을 멈추게 한 미국의 손(“아우슈비츠/소각로를/열었다고 하는/그 손”)이 얼마나 모순투성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 미국의 손에 의해 제주의 생목숨들은 바다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니이가타』의 4.3에 대한 문학적 진실을 향한 탐구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기존 이른바 4.3문학에 대한 괄목할 만한 성취가 없는 것은 아니되, 대부분은 대한민국 건립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과잉에 따른 무고한 양민을 대상으로 한 폭력의 양상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정작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할 4.3사건을 에워싸고 있는 또 다른 문제, 즉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을 대상으로 한 세계전략에 대한 문학적 진실의 탐구가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지 못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그만큼 아직도 한국사회 내부에서는 4.3사건과 관련한 미국의 개입 여부와 그 구체적 양상에 따른 문제를 파헤치는 데 따른 정치적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해준다. 사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이듯, 4.3문학이 답보상태에 머문 데에는 4.3사건에 대한 다양하고도 심도 있는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요구되는데, 그 중 피해갈 수 없는 것 하나가 김시종의 『니이가타』에서 곤혹스레 대면하고 있는 제주 바닷가 해안에 밀어올려진 물화된 4.3의 죽음이 핏빛바다로 물들게 한 ‘달러문명’의 종주국 미국을 뚜렷이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다각적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김시종의 『니이가타』는 기존 4.3문학에게는 또 다른 반면교사의 몫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3. 일본 열도의 바다, ‘재일在日하다’의 문학적 진실
김시종의 『니이가타』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바다가 있다. “병마에 허덕이는/고향이/배겨 낼 수 없어 게워낸/하나의 토사물로/일본 모래에/숨어 들었다.”(「제1부 간기의 노래 1」)는 행간에 녹아 있는 김시종 개인의 역사적 현존성과, “개미의/군락을/잘라서 떠낸 것과 같은/우리들이/징용徵用이라는 방주[箱舟]에 실려 현해탄玄海灘으로 운반된 것은/일본 그 자체가/혈거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초열지옥焦熱地獄”(「제2부 해명 속을 1」)을 경험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역사적 현존성을 동시에 표상하는 바다가 그것이다. 이 바다의 표상을 포괄하는 것으로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삶을 ‘재일在日하다’란 새로운 동사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재일이라는 것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만이 재일이 아니라 과거 일본과의 관계에서 일본으로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온 사람도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在日’의 因子”라는 점을 소홀히 간주해서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김시종의 이 같은 재일在日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을 에워싼 중층적 역사적 조건을 면밀히 고려한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하여 김시종은 이 ‘재일在日하다’란 동사가 함의하는 문학적 진실을 일본 열도의 바다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치열히 탐구한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1945년 8월 22일 일본 근해에서 우키시마마루 운송선의 침몰에 대한 김시종의 역사적 통찰에 깃든 문학적 진실의 울림이다. 8.15 해방을 맞이한 후 자의반타의반 일본 제국의 권력에 포획된 조선인들은 “미칠 것 같이 느껴지는/고향을/나눠 갖고/자기 의지로/건넌 적이 없는/바다를/빼앗겼던 날들로/되돌아간다./그것이/가령/환영幻影의 순례[遍路]라 하여도/가로막을 수 없는/조류潮流가/오미나토[大湊]를/떠났다.”그런데 “막다른 골목길인/마이즈루만舞鶴灣을/엎드려 기어/완전히/아지랑이로/뒤틀린/우키시마마루[浮島丸]가/어슴새벽./밤의/아지랑이가 돼/불타 버렸다./오십 물 길./해저에/끌어당겨진/내/고향이/폭파된/팔월과 함께/지금도/남색/바다에/웅크린 채로 있다.”(「제2부 해명 속을 1」)
김시종에게 우키시마마루의 침몰 사건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키시마마루는 일본 제국의 지배권력으로부터 해방감에 충일된 조선인들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가는 귀국선이다. 따라서 이 귀국선에 승선한 조선인들이 돌아가는 바다는 새로운 희망에 벅찬 말 그대로 싱싱한 기운이 감도는 바다일 터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다는 이 삶의 희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우키시마마루는 폭탄이 터지면서 승선자의 절반 이상이 미확인 희생자로서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채 일본 열도의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 이렇게 제국의 지배권력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채 소름끼칠 정도로 그 두려움의 실체를 마지막까지 피식민지인들에게 고스란히 보인다. 분명, 일본 제국의 식민주의는 태평양전쟁의 종전으로 현상적으로 종언을 고했으되, 그 제국의 포악한 지배권력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김시종은 이 귀국선 침몰로부터 이후 재일조선인이 일본 사회에서 비국민(非國民)의 차별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재일在日하다’의 정치사회적 징후를 예지한다.
그런데 『니이가타』에서 우리에게 각별히 다가오는 ‘재일在日하다’와 관련한 또 다른 귀국선이 있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중간에 일시 중단 된 적도 있음) 일본 혼슈本州 중부 지방 동북부의 동해에 위치한 니가타 현의 니가타 항에서 북한을 오갔던 귀국선이 그것이다. 특히 북위 38도선 근처에 위치한 니가타 항은 38도선이 단적으로 상징하듯, 한국전쟁의 휴전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냉전 대결구도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최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니가타는 한반도의 분극 세계를 한순간 무화시킬 수 있는 냉전과 분단을 넘어 통일과 화합을 추구하는 정념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어떤 초극적 경계다.
북위 38도의
능선稜線을 따라
뱀밥과 같은
동포 일단이
흥건히
바다를 향해 눈뜬
니이가타 출입구에
싹트고 있다.
배와 만나기 위해
산을 넘어서까지 온
사랑이다.
―「제3부 위도가 보인다 1」 부분
구름 끝에 쏟아진다는
흐름이 보고 싶다.
네이팜에 숯불이 된
마을을
고치고
완전히 타버린
코크스(해탄) 숲의
우거짐을 되살린
그 혈관 속에
다다르고 싶다.
―「제3부 위도가 보인다 1」 부분
4.3항쟁에 이어 도일渡日한 후 일본공산당에 가입하고 조총련의 조직 활동 속에서 반미투쟁을 벌인 경험이 있는 김시종이 조총련을 탈퇴하기 전까지 관념의 이념태로서 친북성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김시종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동시대를 살았던 진보적 재일조선인들 상당수는 대동소이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김시종에게 각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반미투쟁을 통해 염원하는 세계는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뉜 분단 조국이 아니다. 양면이 각자 정치사회적 순혈주의를 내세우며 어느 한면을 일방적으로 압살하는 그런 폭력과 어둠의 세계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출생은 북선北鮮이고/자란 곳은 남선南鮮이다./한국은 싫고/조선은 좋다.” “그렇다고 해서/지금 북선으로 가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순도 높은 공화국 공민으로 탈바꿈하지 못했다……”(「제3부 위도가 보인다 2」)는 시행들 사이에 참으로 많은 말들이 떨린 채 매듭을 짓지 못하고 어떤 여운과 침묵을 남길 수밖에 없는 김시종의 문학적 공명共鳴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니이가타』가 김시종의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경직성에 대한 환멸을 경험한 이후 쓰여졌고, 시집의 출간 역시 힘들게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니가타에서 출발하는 귀국선, 곧 북송선의 귀국사업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음을 간과해서 곤란하다.
이와 같은 김시종의 비판적 거리두기는 1960년대 초반 조총련 계열의 재일조선인 시, 가령 강순의 장시 「귀국선」에서 “나더러 오라 하시니/나 무엇을 서슴하리오/나더러 오라 하시니/목메여 가슴 설레임이여/나더러 날아 오라 하시니/온 몸이 나래 되어 퍼덕임이여”와 같은 싯구가 내장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향한 맹목적 정염과 비교해보면, 김시종이 얼마나 귀국사업에 대해 냉철한 이성을 벼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시종에게 이러한 북송 귀국선은 해방의 기쁨을 간직한 재일조선인들이 조국에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심해에 침몰된 우키시마마루처럼 조국에 선뜻 귀환하지 못한 환멸과 비애의 정감으로 ‘얼룩’된 재일조선인의 또 다른 ‘재일在日하다’의 정치사회적 징후를 표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귀국사업이 인도주의란 미명 아래 일본 정부와 일본적십자사가 주도한 것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 팽배한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 사회의 골칫거리인 재일조선인에 대한 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북한 역시 귀국사업을 통해 북한식 국가주의와 국민주의를 한층 공고히 했다는 것은 이 사업이 전후 일본과 한국전쟁 이후 북한이 서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지향형 내셔널리즘’을 공모하고 있는바, 그렇다면 일본 혹은 북한에서 재일조선인이 향후 심각히 맞닥뜨릴 비국민非國民과 관련한 차별적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징후를 김시종은 “정지한 증오의/응시하고 있는/눈동자”(「제3부 위도가 보인다 4」)를 통해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4. 냉전과 분단의 위도를 가로지르는 바다
『니이가타』는 다음과 같이 대미를 장식한다.
해구海溝에서 기어 올라온
균열이
궁벽한
니이가타
시에
나를 멈춰 세운다.
불길한 위도는
금강산 벼랑 끝에서 끊어져 있기에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를 빠져나간
모든 것이 떠났다.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
한 사내가
걷고 있다.
― 「제3부 위도가 보인다 4」 부분
김시종은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 “걷고 있다.” 김시종은 제국의 식민지배 권력이 군림하는 바다의 운명과 함께 하고 있다. 구제국주의 일본에 이은 신제국주의 미국의 출현은 식민지 근대의 빛과 어둠을 지닌 채 재일조선인으로서 ‘재일在日하다’의 동사에 대한 문학적 진실의 탐구를 그로 하여금 정진하도록 한다. 그 구체적인 시작詩作을 그는 북위 38도에 위치한 일본의 니가타에서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 혼신의 힘은 『니이가타』의 서문격이라 할 수 있는, “깎아지른 듯한 위도緯度의 낭떠러지여/내 증명의 닻을 끌어당겨라.”하는, 엄중한 자기 결단의 주문에 표백돼 있다.
우리는 『니이가타』를 통해 김시종의 ‘증명’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증명’은 “불길한 위도”에서 읽을 수 있듯, 20세기 냉전질서에 기반한 신제국의 권력에 의해 북위 38도에 그어진 식민지배의 구획선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며, 이렇게 획정된 위도 때문에 분단을 영구히 고착시킬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길한 위도로 지탱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염결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염결성의 내밀한 자리에는 김시종이 4.3항쟁의 복판에서 도일渡日하여 언어절言語絶의 지옥도를 벗어나 목숨을 연명한 것에 대한 자기연민을 벗어나 한때 반미투쟁의 혁명운동을 실천하면서 조국의 영구분단에 대한 저항은 물론, 재일조선인으로서 ‘재일在日하다’가 함의한 중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학적 진실이 오롯이 남아 있다.
사실, “『니이가타』의 마지막 일절은, 해석이 곤란한 부분이다.”고 하는데, 그것은 『니이가타』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시인의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김시종 시인은 『니이가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마지막 시구를 위해 이 장편시를 썼는지 모른다. 여기에는 이 시집의 제목을 ‘니이가타’로 설정한 시인의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잠시 ‘니이가타’가 놓여 있는 지질적 특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해구에서 기어 올라온/균열”에 위치한 ‘니이가타’란 지역은 동북 일본과 서남 일본을 둘로 나누는 화산대의 틈새다. 이곳은 북위 38도선과 포개진다. 말하자면 이 화산대의 틈새로 일본 열도는 둘로 나뉘며(동북 일본/서남 일본), 김시종의 조국은 북위 38도선에 의해 둘로 나뉘고 있다(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묘한 동일시가 아닌가. 이 ‘니이가타틈새’에서 김시종은 현존한다. 그리고 이것은 김시종의 ‘바다’로 표상되는 정치사회적 상상력, 즉 재일조선인으로서 이중의 틈새와 경계―일본 국민과 비非국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김시종의 이 같은 시적 상상력은 이 틈새와 경계, 바꿔 말해 냉전의 분극 세계뿐만 아니라 국가주의 및 국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이것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틈새와 경계로부터 구획되지 않는, 그리하여 막힘 없이 절로 흘러 혼융되는 세계를 표상하는 바다 위를 걷는 시적 행위를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망망히 번지는 바다를/한 사내가/걷고 있다.”는 것은 재일조선인으로서 냉전과 분단의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는 김시종의 시적 고뇌를 보여주되 그 현실적 고통을 아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극복하고자 하는 시적 의지의 결단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분단체제에 균열을 내고 급기야 분단에 종언을 고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치사회적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시적 행동이다.
5. 남는 과제
이상으로 재일조선인 김시종의 장편시집 『니이가타』에 나타난 ‘바다’를 중심으로 냉전과 분단을 넘는 그의 시적 고투를 살펴보았다. 일제 강점기 원산에서 태어나 황국소년으로서 유소년시절을 보낸 김시종은 청년시절 제주에서 4.3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그 복판에서 생존하기 위한 도일渡日의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재일조선인의 삶을 살아왔다. ‘재일在日하다’의 동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일본에서 김시종의 삶은 한때 일본 제국주의의 피식민인으로서 억압적 차별 아래 일본의 비국민非國民이란 민족적 차별을 온몸으로 감내하였다. 더욱이 그는 4.3사건으로 표면화된 대한민국 건립 과정에서 구제국주의 일본에 이어 등장한 신제국주의 미국에 의해 새롭게 재편되는 아시아태평양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에 따른 한반도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김시종의 『니이가타』의 ‘바다’의 심상과 관련한 정치적 상상력에서 보이듯, 재일조선인으로서 그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이뤄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모두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분단과 냉전을 극복한 세계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재일조선인을 짓누르는 일본의 국민주의와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억압적 차별의 문제점을 예각적으로 묘파한다.
그리하여 김시종의 “재일조선인문학이 역사를 짊어지게 되면서 현재화懸在化하는 폭력과 멸시의 체계로서의 일본어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은 문제적이다. 비록 그는 그의 모어母語인 한국어로써 창작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 한국의 국민문학으로서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일본어로써 창작 활동을 하여 일본의 국민문학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시종의 시문학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틈새’(혹은 ‘경계’)에서 이들 문학과 다른 김시종만의 시문학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분단과 냉전에 대한 가열찬 문학적 대응을 펼쳐오면서 지구화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글을 맺으면서, 김시종의 『니이가타』로부터 이 문제와 연관된 한국문학의 전망을 향한 어떤 시사점을 남는 과제로 생각해본다. 김시종에게 한반도에 드리운 분단과 냉전의 질곡은 신구제국의 교차로부터 기원한다. 이것은 한반도의 분단을 지구적 시계에서 좀 더 래디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단의 맥락 속에서 재일조선인이 겪는 분단과 냉전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은 국민주의와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억압적 차별에 따른 문제점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다. 덧보태고 싶은 것은 그의 이러한 시적 상상력은 이 모든 것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구미중심주의 ‘근대의 국민문학’을 넘어 새로운 세계문학의 도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분단과 냉전에 맞서는 김시종의 시문학에 우리가 관심을 쏟는 것은 그의 시문학이 지닌 이러한 문제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국문학이 기존 구미중심주의 세계문학의 제도화된 질서 안으로 애써 편입할 것인지, 그래서 구미중심주의에 기반한 탈근대의 각종 기획들에 자족할 것인지, 아니면 구미중심주의가 배태하고 있는 근대 자체를 근원적으로 심문하는 고투 속에서 탈근대를 구축하는 한국문학으로서 세계문학의 새로운 지형도 그리기에 참여할 것인지, 한국문학은 그 기로에 서 있다. 구미중심주의의 냉전과 분단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해소하면서 활달히 넘어설 수 있는 한국문학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1)‘재일조선인’이라는 명칭 외에 ‘재일 한국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혹은 교포)’, ‘자이니찌在日’라는 명칭이 병행하여 그 쓰임새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그들의 역사적 존재를 고려하여, ‘재일조선인’이란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여기에는 “국적에 관계 없이 조국의 분단 구도 자체를 부정하며 그 어느 면의 정부 산하 단체에도 가담하지 않고 통일된 조국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이란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국적을 초월해 있으면서 일본에 살고 있는 한민족을 총칭하는 용어”(한일민족문제학회 편, 『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 삼인, 2003, 216면)인 바, “역사적 개념으로서는 역시 ‘재일조선인’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윤건차, 박진우 외 역,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 창비, 2009, 163면)되기 때문이다.
2)김시종은 1929년 원산에서 출생한 이후 제주도에서 유소년시절을 보내다가 1949년 제주에서 4.3사건의 화마火魔를 벗어나 일본에서 현재까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그는 일본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는데, 1949년 8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조직활동을 시작하면서, 일본정부에 의해 강제 폐쇄조치된 ‘나카니시(中西) 조선소학교’를 개교시켰고, 1951년 10월 오사카에서 결성된 ‘재일조선문화인협회’에서 발간된 종합지 『조선평론』에 참가하였으며, 1953년 2월 시 동인지 『진달래』 창간을 주도하였다. 이후 『진달래』(1957년 7월호)에 발표한 「장님과 뱀의 입씨름」 및 시 「오사카총련」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약칭 조총련)로부터 정치적 비판을 받은 후 조총련을 탈퇴하였다. 그는 1986년 수필집 『‘재일’의 틈새에서』를 출판하여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지평선』, 『일본풍토기』, 『니이가타』, 『이카이노 시집』, 『광주시편』, 『화석의 여름』 등을 펴냈다. 1991년 집성시집 『원야의 시』로 ‘오구마 히데오상 특별상’을, 그리고 2011년에는 일본시단을 대표하는 ‘다카미 준상’을 수상을 수상했다. 일역日譯으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재역 조선시집』을 펴내면서, 일본문단과 일본사회에 한국시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리아 국제학원’의 설립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본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민단과 조총련의 대결 구도를 넘어 재일조선인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데 중심적 역할을 다 하였다.
3)그동안 한국에서 소개된 김시종 시세계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호소미 가즈유키, 『세계문학으로서의 김시종』, 『지구적 세계문학』 4호, 2014년 가을호; 후지이시 다카요, 「장편시 『니이가타』를 니이가타에서 읽다」, 《제주작가》, 2014년 여름호; 오세종, 「『니이가타』를 읽기 위해」, 《제주작가》, 2014년 여름호; 호소미 가즈유키,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동선희 역), 어문학사, 2013; 하상일, 『이단의 일본어와 디아스포라적 주체성』,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 소명출판, 2011; 고명철, 『식민의 내적 논리를 내파하는 경계의 언어』, 『지독한 사랑』, 보고사, 2010; 유숙자, 『‘틈새’의 실존을 묻는다』, 『경계의 시』 해설, 소화, 2008; 유숙자, 『민족, 재일 그리고 문학』, 『한림일본학연구』 제7집, 2002; 유숙자,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세계』, 《실천문학》, 2002년 겨울호; 마츠바라 신이치, 『김시종론』, 『재일한국인문학』(홍기삼 편), 솔, 2001; 호소미 가즈유키, 『세계문학의 가능성-첼란, 김시종, 이시하라 요시로의 언어체험』, 《실천문학》, 1998년 가을호.
4)호소미 가즈유키,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동선희 역), 어문학사, 2013, 104면.
5)호소미는 오세종의 이 같은 연구 성과(『リズムと敍情の詩學-金時鐘と‘短歌的敍情の否定’』, 生活書院, 2010)를 주목한다. 다만, 호소미가 “『니가타』를 ‘현대사상’의 한 예증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니가타』에서 우리의 현대사상을 직조하는 것, 우리는 어렵더라도 이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호소미 가즈유키, 위의 책, 106면)라는 행간에 녹아 있는 비판의 핵심은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호소미의 매우 적실한 비판 이후 오세종은 최근에 발표한 그의 「『니이가타』를 읽기 위해」(《제주작가》, 2014년 여름호)에서는 김시종을 서구 현대사상의 한 사례로서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재일조선인으로서 김시종이 구축한 시사상詩思想의 시적 고투를 펼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6)후지이시 다카요, 「장편시 『니이가타』를 니이가타에서 읽다」, 《제주작가》, 2014년 여름호, 44면.
7)김시종의 시집 『화석의 여름』(1998)에 수록된 시 「얼룩」은 재일조선인의 삶을 단적으로 표상하는 것 중 하나다. 가령, “얼룩은/규범에 들러붙은/이단異端이다/선악의 구분에도 자신을 말하지 않고/도려낼 수 없는 회한을/말(언어) 속 깊숙이 숨기고 있다”(「얼룩」 부분, 『경계의 시』, 소화, 2008, 159면)
8)김시종은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과 좌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에게 찾아온 해방의 그날, 그 충격을 ‘한나절의 해방’이라고 고백한다. “8월 15일이 해방의 날이라는 건, 저의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한나절의 해방이지요. 오전 내내 저는 제국, 황국소년이었어요. 되살아났다는 조국도 8월 15일 오전 중에는 아직 식민지통치하에 있었습니다.(중략) 정말 정오에 이르러서도 저의 그림자는 발밑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자신을 생각할 때, ‘南中을 품은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남중이라는 것은 해가 바로 위에 왔을 때, 정오지요. 정오에도 그림자는 발밑에서 북면으로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8월 15일 하루 전부가 저의 해방이었던 게 아니라 엄밀히는 오전 내내는 황국소년이었던 저였어요.”(김석범·김시종,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해 왔는가』, 문경수 편, 이경원 · 오정은 역, 제주대학교출판부, 2007, 163면)
9)유숙자, 「재일 시인 김시종의 시세계」, 《실천문학》, 2002년 겨울호, 138면.
10)김석범, 위의 책, 130면.
11)김시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일본어에 대한 자의식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 핵심은 재일 시인으로서 일본을 위한 맹목적 동일자의 삶을 완강히 거부하고, 오랜 세월 아시아의 식민 종주국인 일본 사회에 내면화된 식민 지배의 내적 논리에 균열을 냄으로써 마침내 그 식민 지배의 권력을 내파內破하는 것이다. 김시종의 시적 언어와 일상어는 이와 같은 원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사회 내부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일본어는 아직도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 침전돼 있는 식민 지배의 권력을 겨냥한 것이자, 자칫 일본 사회의 내적 논리에 그가 내면화될 것을 냉혹히 경계하는 자기결단의 ‘복수復讐의 언어’이며, ‘원한怨恨의 언어’인 셈이다. 필자는 김시종의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춰 김시종의 시선집 『경계의 시』를 분석한 바 있다(고명철, 「식민의 내적 논리를 내파하는 경계의 언어」, 『지독한 사랑』, 보고사, 2010). 김시종의 이 언어적 특질에 대해 일본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을 보인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일본어’임과 동시에 어딘지 삐걱대는 문체라는 생각이 든다. 장중하면서도 마치 부러진 못으로 긁는 듯한 이화감이 배어나오는 문체.(중략) 만일 ‘포에지’라는 개념이 단순히 시적詩的 무드라는 개념을 넘어 지금도 시인 개개인의 언어의 기명성記名性의 표상으로 통용된다면 이 어딘지 삐걱대는 문체를 통해 이면으로 방사放射되고 있는 것을 일본어에 의한 일본어에 대한 ‘보복報復의 포에지’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호소미 카즈유키, 「세계문학의 가능성」, 《실천문학》, 2002년 겨울호, 304-305면)
12)김시종, 장편시집 『니이가타』(곽형덕 역), 글누림, 2014, 24-25면. 이후 시의 부분을 인용할 때는 별도의 각주 없이 본문에서 시가 인용된 부분만을 밝히기로 한다.
13)미군정 소속 경무부장 조병옥은 4.3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토에 휘발유를 뿌리고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태워 없애야 한다.”(오성찬, 『한라의 통곡소리』, 소나무, 1988, 295면)는 반인류적 폭언을 내뱉었는가 하면, 당시 제주 지역 미군 총사령관으로 특명을 받은 최고지휘관인 미 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은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조덕송, 「유혈의 제주도」, 『제주민중항쟁 3』, 소나무, 1989, 48면)라는 반인류적·반문명적·반민중적 폭력을 자행하였다.
14) 미국으로 대별되는 제국의 통치방식은 기존 유럽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구제국의 직접지배(프랑스)와 간접지배(영국)의 식민통치와 다른 신식민주의의 통치방식에 역점을 두는 것으로, 피식민지를 구제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시켜주지만 일정 기간 군정軍政을 수행한 이후 미국의 지배 헤게모니를 대행할 권력을 통해 새로운 식민통치를 시도한다. 여기서 미국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기존 구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은 명백히 새로운 형태의 예속을,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이론에서만 분명히 해명되어 있었던 자본주의 권력의 경제체제에의 예속을 드러”(로버트J.C.영,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역, 박종철출판사, 2005, 92면)낸다. 그리하여 구제국의로부터 독립을 얻은 “민족 주권이란 실제로는 허구라는 것이며, 외관상 자율적인 민족 국가들의 체계란 사실상 국제 자본이 행사하는 제국주의적 통제 수단”(같은 책, 93면)으로 전락한다. 미국으로 대별되는 신제국주의 시대에 대해서는 Walter Lafeber, The New Empire, Cornell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15)현기영의 단편 「순이 삼촌」(1978)이 발표된 이후 모든 문학 장르에서 4.3에 대한 역사적 진실 탐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숱한 성과들 중 4.3의 직접 당사자인 제주문학인들이 일궈낸 4.3문학의 성과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사)제주작가회의가 꾸준히 펴낸 시선집 『바람처럼 까마귀처럼』(실천문학, 1998), 소설선집 『깊은 적막의 꿈』(각, 2001), 희곡선집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각, 2002), 평론선집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진실』(각, 2004), 산문선집 『어두운 하늘 아래 펼쳐진 꽃밭』(각, 2006) 등은 그 대표적 성과다.
16)이와 관련하여 비록 그 접근 시각에서 단순화된 면이 없지 않으나 이른바 ‘국가보안법 시대’라고 불리운 전두환 정권 시절 무크지 《녹두서평》 창간호(1986. 3)에 수록된 이산하의 장편연작시 「한라산」 1부에는 4.3항쟁과 미국의 관련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이산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필화사건에 휘말린다. 이후 이산하는 「한라산」을 완결시키지 못한 채 『한라산』(시학사, 2003)을 간행하였다. 이산하 외에 특기할 만한 또 다른 시도로 김명식의 4.3민중항쟁서사시 『한락산』(신학문사, 1992)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17))김시종은 『니이가타』의 ‘제2부 해명 속을’의 곳곳에서 4.3의 죽음이 섬찟하게 물화物化된 채 제주 바닷가 해안 도처에 흩어져 있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그 특유의 뚝뚝 끊어진 건조한 서정으로 형상화한다. 그 몇 대목을 소개해본다. “날이 저물고/날이/가고/추錘가 끊어진/익사자가/몸뚱이를/묶인 채로/무리를 이루고/모래사장에/밀어 올려진다./남단南端의/들여다보일 듯한/햇살/속에서/여름은/분별할 수 없는/죽은 자의/얼굴을/비지처럼/빚어댄다./(중략)/조수는/차고/물러나/모래가 아닌/바다/자갈이/밤을 가로질러/꽈르릉/울린다./밤의/장막에 에워싸여/세상은/이미/하나의 바다다./잠을 자지 않는/소년의/눈에/새까만/셔먼호가/무수히/죽은 자를/질질 끌며/덮쳐누른다.”(「제2부 해명 속을 2」 부분) 이러한 시적 형상화는 김시종이 일본에서 강연한 다음과 같은 고백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게릴라 편에 섰던 민중을 철사로 묶어 대여섯 명씩 바다에 던져 학살했는데, 그 사체가 며칠 지나면 바닷가에 밀려와요. 내가 자란 제주도 성내城內의 바닷가는 자갈밭인데, 바다가 거칠어지면 자갈이 저걱저걱 울리는 소리가 나지요. 거기에 철사로 손목이 묶인 익사체가 밀려오는 거죠. 오고 또 오고……. 바다에 잠겼으니까 몸은 두부 비지 같은 형상으로 파도가 칠 때마다 방향이 바뀌고, 피부가 줄줄 떨어져요. 새벽부터 유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와서 사체를 확인해요.”(김시종, 「기억하라, 화합하라」, 『圖書新聞』, 2000. 5. 27; 호소미,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 131면 재인용)
18)김시종 ㆍ 김석범, 위의 책, 163면.
19)재일조선인은 “역사 서술의 주체 세력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 무학에 빈곤했던 이들은 계급적 약자였으며, 영토 밖에 거주하는 이들은 공간적 약자였고, 일본 문화에 어설픈 형태로 동화된 이들은 문화적 약자였다. 무엇보다도 민족적 범주의 변방에 위치한 그들은 민족적 약자였다.”(이붕언,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윤상인 역, 동아시아, 2009, 9면)
20)우키시마마루는 태평양전쟁 중 일본 해군에서 쓰인 감시선이었다가 전쟁 직후 1945년 8월 23일 일본 동북지방에 징용됐던 조선인을 해방된 조선으로 귀국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우키시마마루는 아오모리현 오오미나토항에서 부산으로 떠나다가 중간에 들른 마이즈루만에서 원인 모를 폭파로 침몰했다.
21)김시종은 일본 정부가 인양하지 않는 우키시마마루 침몰선에서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잠수부의 눈에 비친 재일조선인 희생자의 모습과 심해의 침몰선에서 죽은 원혼이 바다 밖 권양기에서 떨어지는 해저의 물방울로 표상하는 것을 통해 일본의 비국민非國民으로서 펼쳐질 질곡의 삶을 응시한다. “흐릿한 망막에 어른거리는 것은/삶과 죽음이 엮어낸/하나의 시체다./도려내진/흉곽 깊은 곳을/더듬어 찾는 자신의 형상이/입을 벌린 채로/산란散亂하고 있다./역광에/높이높이/감겨 올라간 원념怨念이/으르렁대는/샐비지 윈치에/거무스름한/해저의 물방울을/떨어지게 할 때까지./되돌아오는/거룻배를 기다리는 것은/허공에 매달린/정체 없는/귀로다.”(「제2부 해명 속을 4」 부분)
22)한국전쟁 시기 진보적 재일조선인운동에 대해 일본의 카지무라 히데키는 “일본에서 미군에 대해 과감한 저항투쟁이 재일조선인에 의해 전개되었고, 일본공산당도 일시적이지만 반미 무장투쟁 노선을 취하고 있었습니다.(중략) 재일조선인 운동을 수동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고, 지도 받아 할 수 없이 전면에 동원되어 갔다는 식으로만 조선인의 생각을 파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카지무라 히데키, 『재일조선인운동』, 김인덕 역, 현음사, 1994, 58면)고 하여 재일조선인의 반미투쟁을 주목한 바 있다. 여기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전쟁 도중 진보적 재일조선인의 이러한 친북 성향의 반미투쟁은 그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또 다른 판본인 미국에 의한 신제국주의 시대의 도래로 민족의 분단을 외국에서 방관할 수 없다는 반전운동의 일환으로서의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도중 재일조선인 운동의 구체적 양상과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도노무라 마사루,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학적 연구』, 신유원·김인덕 역, 논형, 2010, 475-481면 참조.
23)김시종은 김석범과의 좌담에서 그가 주축이 돼 1952년에 창간한 시 동인지 『진다래』에 발표된 시와 에세이로 인해 조총련의 비판을 받은 후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문제제기를 경험하면서 북한과 조총련의 교조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환멸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서는 김시종ㆍ김석범, 위의 책, 124-127면 참조.
24)김시종은 조총련을 탈퇴한 이후 재일조선인으로서 한반도의 남과 북에 대한 등거리 비판적 시선을 지니면서 장편시집 『니이가타』를 집필하고 있었다. 『니이가타』 한국어판 간행에 붙이는 글에서 그는 귀국선 사업이 시작될 무렵 이 시집은 거의 다 쓰여진 상태였는데, 조총련 탈퇴 이후 “모든 표현행위로부터 핍색逼塞을 강요당했던 터라, 오로지 일본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내 ‘재일’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 발견해야만 하는 입장”을 숙고하면서 일본에서 1970년에 출판될 때까지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고 한다.
25)물론, 강순의 시세계 전반이 이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1955년 조총련이 결성된 직후부터 1960년대 초반 조총련 산하 ‘문예동’의 노선에 충실한 시기까지 그는 조총련 애국사업을 위한 선전선동과 북한에 대한 찬양 시를 써왔다. 이에 대해서는 하상일, 『재일 디아스포라의 민족정체성과 실존의식』,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 소명출판, 2011, 166-172면.
26)일본 정부에 의한 귀국사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전 출간된 일본적십자의 출간물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귀국사업이 일본의 철저한 국가주의와 국민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일본 정부는 확실히 말하면 성가신 조선을 일본에서 일소함으로써 이익을 갖는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을 전부 조선으로 강제 송환할 수 있었다면 [……] 일본의 인구과잉 문제에서 볼 때 이익인지 아닌지는 잠깐 제쳐놓고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과 조선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되어 일본으로서는 이상적인 것이다.”(일본적십자사, 『在日朝鮮人歸國問題の眞相』, 일본적십자사, 1956, 9-10면; 도노무라 마사루,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학적 연구』, 위의 책, 486면 재인용)
27)오세종, 「『니이가타』를 읽기 위해」, 위의 책, 66면.
28)사실, 김시종의 시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틈새’는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틈새’는 제주 4.3의 화마를 벗어나 일본 열도로 피신한 이후 조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재일조선인’으로서 김시종의 현존을 성찰하도록 한 시적 메타포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의 부분에서 ‘틈새’에 놓인 김시종의 시작詩作에서 그만의 독특한 ‘복수(復讐)의 언어’로서 일본어의 기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애당초 눌러앉은 곳이 틈새였다/깎아지른 벼랑과 나락을 가르는 금/똑같은 지층이 똑같이 음푹 패어 마주 치켜 서서/단층을 드러내고도 땅금이 깊어진다/그걸 국경이라고도 장벽이라고도 하고/보이지 않는 탓에 평온한 벽이라고도 한다/거기엔 우선 잘 아는 말(언어)이 통하지 않아/촉각 그 심상찮은 낌새만이 눈과 귀가 된다”(김시종, 「여기보다 멀리」 부분, 『경계의 시』, 유숙자 역, 소화, 2008, 163면) 이러한 ‘틈새’의 시적 메타포가 장편시집 『니이가타』에서는 북위 38도에 위치한 ‘니이가타’란 구체적 지명과 맞물리면서 김시종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점화시킨 것이다. 김시종의 ‘틈새’에 대해서는 ‘마이니치每日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에세이집 『‘在日’のはざまで』(平凡社, 1986)에 피력돼 있다.
29)다카하시 토시오,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일본 현대문학』(곽형덕 역), 글누림, 2014, 350면.
30)호소미 가즈유키는 최근 발표한 「세계문학으로서의 김시종」(『지구적 세계문학』, 2014년 가을호)에서 김시종의 시문학이야말로 기존 서구중심주의에 의해 제도화된 세계문학―세계문학은 각기 다른 근대의 국민문학이 다른 국민문학의 영토로 굴절되면서 형성돼 가는데, 서구중심의 근대에 기반한 국민문학이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비서구의 국민문학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연스레 서구에 편향된 국민문학을 ‘세계문학’의 실재인 것으로 제도화 한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호소미 가즈유키의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김시종 특유의 ‘복수復讐의 언어’가 지닌 문제의식이 근대 자체를 근원적으로 심문하는, 그리하여 “국민문학의 테두리를 굳이 말하자면 탈구축déconstruction하는 형태로 쓰여진 것”(위의 글, 143-144면)과 연관된다. 이러한 세계문학의 새로운 지형도 변화와 관련하여, 김재용은 재일조선인문학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김시종의 재일조선인문학처럼 구미중심의 근대가 고착된 문학 내부에서 이른바 변경인(적 사유) 문학의 출현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 팽창한 세계문학 장의 불균등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중요한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변경인이 만들어가는 세계문학의 장」, 『지구적 세계문학』, 2014년 가을호, 138면)는 견해를 피력한다.
*필자는 2019년 2월 9일 ‘아라포럼’ 초청으로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에 대해 특강 을 하였다. 특강의 주된 내용은 그의 시집 『니이가타』를 중심으로 한 것인데, 시간 관계상 이 시집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다. 특강에서 미처 얘기하지 못한 내용을 고려하여, 『반교어문연구』 38집(2014)에서 발표한 이 글을 재수록하기로 한다.
*고명철 1998년 《월간문학》으로 평론 등단.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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