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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특집2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김생수/시의 목소리 목소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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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63회 작성일 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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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특집2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김생수/시의 목소리 목소리의 시


김생수


시의 목소리 목소리의 시



시는 노래가 언어에 있지만, 노래는 시가 목소리에 있다.
노래는 음정과 음색의 저마다 다른 목소리에서 시를 느낀다, 시는 언어들의 침묵속에서 노래를 듣는다.
시가 저마다의 특별한 신분증이 있듯이, 노래도 각자의 독특한 목소리와 감성에 시적인 예술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어휘가 시에 서는 진부하지만 노래에서는 부르는 이의 감정과 음색의 독특한 목소리에서 시적인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기타를 치며 내가 노래를 부르는 주요 이유다.
기타를 치며 무슨 노래인가를 ‘아……’ 하고 발성하다가,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나는 문득 눈시울이 뭉클 젖기도 한다. 시가 세련되고 깊이 있는 언어로 예술적 완성도가 이루어진다면, 노래는 곡조와 목소리로 시가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노래와 시가 탄생되는 순간도 나는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시가 어떤 영감이나 사유와 생의 감동이 오는 순간에 예술적 상상으로 쓰여지는 것이라면, 노래도 마찬가지다,
시도 노래도 그 효능은 삶의 치유에 있다
나의 유일한 작사 작곡 노래가 딱 한 곡 있다, 젊어 한때 낭만의 바닷가 추억을 떠올리며 만든 노래이다, 악보에 옮겨 놓은 것은 꼭 이 노래 한 곡이다. 그래서 나도 ‘싱어송 라이터’(?)라고 한 잔 하면 자랑을 하곤 하는데, 이 노래를 만든 순간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꽤 여러해 전, 밤 이슥할 무렵 ‘행복한 막걸리 주점’에서 홀로 막걸리를 마셨다.
기타를 혼자 딩동거리며 일부러 아무도 안 앉혀놓고 홀로 마셨다. 밤 이슥한대도 떠나지 않고 수다를 떨며 마시는 건너편 여자들을 바라보며 기어이 홀로 마셨다. 오래도록 홀로 마셨다.
 
아련한 추억의 정동진 동해 바다 여행이 떠오른다.
유월의 기차가 덜컹거린다. 그녀는 서울 청량리에서 나는 밤 12시 원주에서 승차를 해 동해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차다. 정동진에 아침에 도착하는 시간의 기차를 맞춘 거다. 나는 원주에서 승차했다, 승차를 해 원주를 지나 몇 정거장을 지나가도 그녀와 미리 예약해둔 3호 열차 27, 28 좌석, 그녀가 있는 열차 칸으로 가지 않는다. 놀래주려고 그리고도 몇 정거장을 더 지나 그녀 앞에 나타나니 어쩔 줄 모르는 그녀 얼굴 표정이라니, 그리고 곧 환하게 웃는 그녀의 천진한 얼굴.
캄캄한 밤 유월 중순의 기차가 덜컹거린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느껴보는 낭만의 바다로 가는 밤기차 여행 정동진 행, 이대로 영원히 날이 밝아오지 말았으면 했다. 곁에는 죽을 만큼 좋은 살과 뼈와 목소리를 보유한 그녀가 있으니 이 기차가 피안행 기차가 아니고 무엇인가, 순간 순간의 시간을 재촉하며 기차가 덜컹거린다.
어느덧 차창이 밝아온다. 새벽이 온다. 정동진이 가까워 오나 보다. 이윽고 차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아득하게 이어진 수평선이 보인다.
아, 그리고 태초의 닭 우는 첫날인 듯 푸른 바다가 붉은 알을 하나 쑤욱 낳는다, 나도 모르게 옆자리 그녀의 입술을 살짝 살짝 훔친다. 달콤한 꿀이 넘친다.


(한 알 모래에 우주가 있고 한송이 들꽃에 천국이 있다.-윌리엄 블레이크-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법성게法性偈-의상대사)
 
‘행복한 막걸리 주점’ 밤 이슥히 홀로 마시는 막걸리 맛이 점점 황홀해 온다. 나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빈 술 잔을  탁!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 놓는다.


세상에 세상에 덜컹거리는 기차 차창에서 동해 일출을 맞이할 줄이야, 유월의 정동진행 기차, 오늘을 기억하리라, 심장에 붉게 새겨놓으리라,
저 일출을 내가 먹어야겠다. 저 붉은 바다의 알을 내가 먹고 나도 바다처럼 붉은 알들을 쑥쑥 낳으며 붉게 붉게 뜨겁게 한세상 살아야겠다. 배낭을 열고 필수 지참물인 쐬주와 투명한 소줏잔을 꺼낸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띠며 투명한 소줏잔에 박쿠스, 디오니소스의 선물, 신의 물방울을 하나 가득 채운다. 맑디 맑은 소줏잔을 차창에 댄다. 붉은 해, 바다의 알이 맑고 투명한 잔에 가득 담긴다. 소줏잔에 그득 담긴 붉은 해를 잔과 함께 끌어당기며 그녀 입술에 가볍게 댔다가 나의 입술로 가져온다. 신의 물방울과 함께 바다의 붉은 알을 꿀꺽 목구녕 깊이 삼킨다.
 
‘행복한 막걸리 주점’ 주변 탁자에는 화류계인 듯 여자 둘, 술꾼 몇 만이 남아 있다, 홀로 마시는 깊은 밤이 점점 황홀하다.
    
기차에서 내려 둘이서 재재발거리며 걸어간 정동진 남단 심곡항,  너무 깊은 포구라 육이오도 모르고 살았다던 심곡항, 그 아련한 바닷가가 펼쳐진다. 낮달 같은 조각배에 둘이 앉아 사진을 찍고, 바닷가 길지 않은 백사장을 그녀를 등에 업고 내달리던 그 날들이 점점 선명해지며 눈시울이 젖어온다. 그녀와 함께 나눈 청춘의 날들, 그리고 ‘미성년자관람불가’의 푸른 첫날 밤, 꿈엔들 잊힐리야, 생시엔들 잊힐리야. 바람이 불어온들 잊힐리야. 


다시 막걸리잔을 탁! 소리나게 탁자에 내려 놓고 기타를 잡는다. 시가, 아니 노래가 떠오른다. ‘미라미라도미’ am 코드를 딩동댕딩동댕 퉁기며 흥얼거려 본다.
저절로 저절로 노래가 생겨난다. 순식간에 노래가 만들어진다. 기타를 치며 그 날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러 본다.    
                   
바닷가 조각배에 그대와 둘이 앉아
사진을 찍으며 얼마나 행복 했나


바닷가 백사장을 그대를 등에 업고
신이나 내달리며 얼마나 즐거웠나


구름은 하늘에 꽃이 되어 피어나고
파란 수평선엔 우리의 사랑 붉게 떠올라라


바닷가 조각배에 그대와 둘이 앉아
사진을 찍으며 얼마나 행복 했나


─「조각배에 앉은 사랑」





*김생수  1995년  《문예한국》으로 등단. 시집 『지나가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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