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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특집2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우중화/시는 노래가 되고 인생을 노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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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40회 작성일 20-01-2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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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특집2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우중화/시는 노래가 되고 인생을 노래하고


우중화


시는 노래가 되고 인생을 노래하고



‘삶에 정답은 없다’라는 말은 왠지 모호하면서도 큰 위로를 준다. 우리는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도 다 다르다. 또한 그 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경험 또한 다 다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무수한 경험들 속에 시만큼 생을 윤택하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매개체가 또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시를 읽고 또 그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을 듣고 부르며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는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시가 쓰여 졌고 그중에 어느 시들은 노래로 만들어져 수도 없이 불리어졌다.
시는 원래 노래였고 그래서 오늘의 시는 노래일 수 있다. 아름다운 시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내고 노래가 된 시는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시는 노래이고 생의 이야기이고 하소연이다. 시는 계층과 세대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듣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현실 참여적인 부분도 많다. 어느 때 노래로 만들어진 시는 대중을 모이게도 움직이게도 하고 그래서 때론 선동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게 시노래의 힘이고 다른 어떠한 문학보다 직설적이고 혁명적이기도 하다.
 시는 사전적 의미로 ‘자연이나 삶에 대하여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운율이라는 것은 시에서 악센트가 있는 음절들을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음악적인 효과를 유발하는 방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의 운율은 언어의 울림·리듬·하모니 등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시각視覺을 표현해줌으로써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게 되고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 문학작품이다.
시 노래의 시점은 여러 가설이 있는데 먼저는 원시 시대의 축제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시대에는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었다. 그때 하늘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의식을 치르게 되는 문화가 생기면서 여러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움직이며 즐기는 것에서 노래가 탄생했다고 한다. 학자들이 말하기로는 그 당시 축제에서는 사람들끼리 장단에 맞춰 말하고 소리를 내던 것이 음악으로 발전해서 가사 말이 시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이런 노래의 발전으로 몸동작인 무용도 발전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가설은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노동은 너무나도 피로한 작업이었고 그래서 옛날 사람은 이런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견해가 있다. 여러 지역의 ‘노동요’를 보면 지역마다 노동을 이기기 위한 노래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시는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음에 맞춰 흥얼거리던 것이 노래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시는 노래로 불리어지고 있다. 대중가요 속에 잊히지 않고 들려지는 시노래는 왠지 더 서정적이게 들려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많이 불리어진 시노래로는 마야가 부른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로 정지용의 시 「향수」, 높은음자리의 노래로 박해수의 시 「바다에 누워」, 故 길은정의 노래로 김초혜의 시 「사랑굿」 등 무수히 많은 시가 노래로 불리어졌다. 또한 가수 안치환은 「정호승을 노래하다」, 「도종환을 노래하다」와 같이 시인의 시를 노래하는 콘서트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현재 리토피아에서도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여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매년 1회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다. 현재까지 210여 편의 시에 곡을 붙였으며 앨범 8집을 제작하였고 올해 열일곱 번째 공연을 연다.


그녀는 가고 「바다가」 온다


의도치 않게 듣던 한 노래가 잊혀지려는 기억을 붙잡을 때가 있다. 그것이 사랑의 순간이든지 이별의 순간이라면 더 특별해진다. 가사를 집중해서 듣는 순간 그것이 어느 시인의 시라면 더 다정하게 아니 더 쓸쓸하게 감성을 건드리기도 한다. 허수경 시인을 좋아했었다. 그녀의 시들이 좋아서 시집을 밤새도록 끌어안고 잠자던 서정을 더듬거렸던 날이 있었다. 읽을 때마다 툭툭 치고나오는 아름다운 시는 음이 더해져 굳어지는 심장을 달구기도 하고 잠자던 옛 서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의 사랑하던 이들과 이별을 이룬 날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허수경 시인의 시 「바다가」 전문을 노래로 들어보자.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허수경 시인, 「바다가」 전문


 지난해 10월 3일 암투병 중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바다가」라는 시가 노래가 되어 불리어졌다. 20대 후반 한국에서 2권의 시집을 내고 시작 활동을 하다가 불현듯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어 독일로 떠났다는 시인은 독일 남자와 결혼해 독일에 정착해 살면서도 우리말로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시인이다. 허 시인은 갑자기 병을 얻어 작년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전해 많은 국내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책장을 넘겨보니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간 시인의 외로움이 절절히 다가왔다. 시인은 『혼자 가는 먼 집』, 『정든 병』이라는 시집을 내었는데 이 노래는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에 수록된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인에게 깊은 바다가 걸어왔고, 시인은 바다를 잡으려 하지만 자신에게 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서러움에 간절히 울기를 원하지만 이제는 눈이 없어 울 수가 없다. 바다는 안기지 못하고 돌아가려고 한다. 잡고 싶은 간절함에 시인은 바다에게 가지 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혀도 없다. 결국은 돌아가려는 바다에게 마음만 졸일 뿐 단 한마디도 말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내 마음 내 생각과 같이 자연스레 흘러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허망한 마음을 바다와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다는 모든 것을 감싸안는 포용과 치유의 공간 그러나 바다는 안기지 못한다.
고행을 떠난 사람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시집 갈피마다 시집의 제목인양 죽음이 그려져 있다. 90년대 초반, 머나먼 이국땅에 홀로 발을 디딘 이십대 후반의 시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낯설음을 견뎌내기 위해 시집을 끼고 도시를 천 번도 넘게 걸었다는 시인은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후에 시인은 가고 「바다가」 걸어 나온다. 시인의 노래와 함께 시집의 표제가 된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전문을 읽어본다.


아이들은 장갑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천막 수용소로 들어가고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노천 화장실로 들어간다 할미의 엉덩이를 빛은 어루만진다 죽은 아들을 낳을 때처럼 할미는 몽롱해지고 손자는 문 바깥에 서 있다 빛 너머로 바람이 일어난다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하모니카를 부른다 둥근 나귀의 눈망울 같은 아이의 영혼은 하모니카 위로 날아다닌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빛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아이의 영혼에 엉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혼처럼 허덩거리며 하모니카의 빠각이는 이빨에 실핏줄을 끼워넣는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가는 시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나의 이야기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여러 그리움의 전조였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형체 없는 그리움의 나열이었다. 두 명의 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명의 오빠가 안 계신다. 난 큰오빠를 많이 닮았다. 막내에다 늦둥이였던 나는 큰오빠와 14년이라는 나이차가 난다. 늘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큰오빠를 종종거리며 따라 다녔다. 큰오빠가 책을 읽으면 나도 책을 읽고, 큰오빠가 그림을 그리면 나도 그림을 그렸다. 또 큰오빠가 짐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는 그 뒤에 바짝 올라타고 따라 나서곤 했다. 나는 늘 큰오빠의 작은 그림자였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참 많이도 닮아갔다. 책 좋아하는 거며, 그림 그리는 거 하며 그렇게 큰오빠는 나의 어린 날에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큰오빠는 내가 이십대로 들어서는 시점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큰오빠가 그렸던 시화집을 큰오빠가 읽었던 책들을 유서처럼 끌어안고 돌아왔다. 책 속에서 큰오빠의 글씨체를 발견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 죽음을 계속해서 자신의 책임인양 심장 한 가운데 돌덩이 하나를 끌어안고 있던 작은오빠는 계속되는 작은 미열들 속에서 자신 앞에 놓인 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죽음을 택했다. 그날이 사월이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시시때때로 나를 찾던 오빠의 전화벨 소리를 그날따라 무심히 흘려들었다. 그날 오빠는 마지막 생의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는 오빠가 두 분이 있었고 또 두 분이 안 계신다. 나는 <오빠>라는 호칭을 잃었다.
 생은 그렇게 우리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때가 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내 안에 끊임없이 화두처럼 던져지던 생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된 것은, 신에게 묻고 철학자에게 묻고 그러다가 시인이 되었다. 마음에 난 상처로 절망했던 시간들 속에 그래도 거기에서 희망의 한 자락이나마 잡아보려고 몸부림쳤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 속에 썼던 수많은 시는 가난한 마음과 아픈 정신을 서서히 치유해 갔다. 그것이 시만이 가진 비밀의 세계이고 노래로 불리어진 시 노래의 위대함이다.

 

시인 허수경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울컥했다. 걸으면서 몇 시간이나 김보미 가수가 부른 「바다가」를 반복해서 들었다. 신기하다. 들려지는 시 속에서 20년도 지난 시간과 공간들이 마구 달려 나온다. 허수경 시인의 시는 이렇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손이 없어도 눈이 없어도’, ‘바다처럼 아는 사람’을 안을 것이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고’ 보낼 수 없는 것들에 다시 인사를 하며 오랜 이별을 한 이들을 치유해 갈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또는 이별하는 이들을 그리고 아는 사람들을 두고 가지 않고 다시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가기를 바라며 남을 것이다.
가끔 노래로 불리어지는 시들을 찾아 들어보곤 한다. 시 속에 들어찬 사람의 그리움이 그리운 것이다. 두 오빠를 보내고 오빠들이 읽던 책을 유서처럼 끌고 왔다. 그 남겨진 글씨체들은 또 다른 유언으로 나에게 시를 쓰게 한다. 마지막 인사조차도 허물어진 죽음은 남겨진 자에게는 늘 크고 깊은 그리움의 「바다가」 된다. 시란 이런 것이고 그 시가 불리어진다는 것은 아픈 이들에게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 더 많은 시들이 노래가 되어 불리어지기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도 우리의 이야기도 시가 되고 노래로 불리어지기를 바라며 두 오빠와 시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우중화 2019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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