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4호/신작시/권정남/여자가 갇혔다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24호/신작시/권정남/여자가 갇혔다 외 1편
권정남
여자가 갇혔다
스무 살 얼굴이 없다
니캅* 속 눈동자만 별처럼 빛난다
검은 옷에 가려진 그녀의 몸속에
연둣빛 새싹과 꽃구름이
봄처럼 피어나는데
분홍 입술과 볼이 세상과 차단 되었다
부루카* 속에 갇힌 여자의 몸이
물푸레나무처럼 자라고
스무 살 가슴에 피어나던 장미가
제 홀로 피고지고
햇빛이 그녀에게 정중히 손 내밀다가
돌아선 자리에 꽃향기 만발하다
온몸에 검은 천을 두른 여자들이
수 세기 동안 감옥처럼 갇혔다
빛이 차단된 녹슨 사원 안에서
그들은 부르지 못한 노래를
매일 소리 없이 목청껏
부르고 있다.
* 니캅niqab : 무슬림 여성들이 눈을 제외하고 얼굴 전부를 가린 베일.
* 부루카burqua : 검은 천으로 얼굴과 몸을 가린 아랍계 무슬림 여인들이 입는 의복.
사막, 그리고 별
사막에 별들이 흐르고 있다
전생에 내가 흘린 수많은 눈물이다
번개 치듯 잠깐 허공이 갈라지더니
노란 목도리 어린왕자가 달려 왔다
여우 쓰다듬던 손으로 악수 하니
바람 냄새와 장미 향기가 났다
어린왕자가 별을 주우며
눈물과 용서에 대해 얘기해 주며
생에 있어 고독은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그윽한 눈동자로 작은 거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목도리를 날리며
신발에 묻은 모래를 털던 어린왕자가
사막은 별들의 집이라며
탱글탱글 여문 별을 내 손에 쥐어주고
이젠 자기는 떠나야 한다고 했다
순간. 그의 체취가 후끈 내 얼굴에 스쳤다
그때, 석류가 터지듯 아침 해가
서서히 사막을 점령하고 있었다,
*권정남 1987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시집 『속초바람』외 3권. 수필집 『겨울 비선대에서』 출간. 강원문학상 외 수상.
- 이전글24호/신작시/최계철/지워주기 외 1편 20.01.21
- 다음글24호/신작시/장종권/화룡점정 외 1편 20.01.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