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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고경숙/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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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신작시/고경숙/봄 외 1편
고경숙
봄
봄은 허풍쟁이의 하품에서도 온다. 그가 뱉어놓은 부푼 공기가 아롱아롱 허리 근처를 떠다니며 간질인다. 삼단 접시에 머핀을 구워오는 할머니, 꽃무늬 앞치마 자락에 뛰어오르며 강아지는 둥글게 짖는다. 대화거리가 늘어진 틈 사이로 졸던 하품은 허풍쟁이를 깨우느라 애를 먹는다. 머리카락 대신 꽃이 탐스럽게 피어도 좋을 날이다. 기왕이면 오솔길 헤치며 찾아들던 늙은 머리카락마다 꽃이 달리면 좋겠다. 원색의 알록달록한 꽃밭을 이고 콧방울을 벌름거리는 봄은 되받을 것 있다고 눌러앉을 것이며, 기필코 강아지가 깨운 허풍쟁이의 나른한 잠 밖에서 토닥토닥 순한 바람이 머핀을 뜯어 먹을 것이다. 부엌문을 열었다 닫으며 비로소 봄의 냄새가 달콤하다는 걸 안다.
곰 혹은 문
문은 벽의 연장입니다
열어놓았을 때 비로소 소통이 되고
자유가 보장되지요
나는 거의 누워서 지내요
주사기로 쓸개즙을 받아내려고
사육사가 매일 들르거든요
우린 언제 저 별로 올라가나요?
창살 너머로 보이는 먼 별들은
죽어야만 가는 곳이지요?
나는 창살이 싫어요
비가 오는 것 같잖아요.
내가 하는 일은 묶인 다리로
기어서 문을 찾는 일
문문문문문문
곰곰곰곰곰곰
엄만, 일어나 문을 열라는데
닫힌 문은 벽이에요
잠긴 문은 감옥이에요
*고경숙 2001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유령이 사랑한 저녁』 외. 수주문학상, 두레문학상, 경기예술인상, 희망대상(문화예술부문), 부천시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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