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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정원교/통리역을 지나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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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정원교/통리역을 지나며 외 1편
통리역을 지나며 외 1편
정원교
기차가 지나는 절벽 바위틈에
키 작은 나무들 뿌리 서로 엉겨있네
살기 위해 서로 부등켜 안고
빗방울이 스며들려다 미끄러지고
바람이 틈새를 파고들려다
완강한 힘에 밀려 저만큼 돌아가네
손수건만 한 오후의 햇살에 눈을 감다가
기적소리에 행여 그 엉김 풀어질까
파랗게 날밤을 새운 한 겨울 흔적
나는 키만 늘린 잡목으로
늘 허공으로의 탈출을 꿈꾸었던 것일까
바위 난간에 서 있는 나무들
그가 허공에 손을 뻗는 것은
그 곳에 서 있기 위함이었네
삶은 기적소리처럼 지나가고
절벽의 나무처럼 잠시 흔들리네
기차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나를 끌고 가는 얼굴을 보았네
일몰 앞에서
순천만 가서
일몰을 보았네
온통 붉은 빛 소용돌이
야단법석 춤사위 흐드러지고
한바탕 잔치로 들떠 있는 시간
밀물이 다가오자
맨발로 다가가
스윽 발을 담그는
불덩어리를 보았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검은 개펄 속으로 스르륵
잠기는 불덩어리
그
리
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어둠이 겹겹이 밀려오네
나는 잠시 어디로
어디로 스며야 할지 몰라
그 후로 오래도록
불덩이가 바다 속으로 고요히 걸어 들어가고
세상은 너무 조용한 것에 대하여
아주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네
*정원교 200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풍경 하나로 따스한』, 『담장에 널린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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