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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안차애/만주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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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안차애/만주족 외 1편
만주족 외 1편
안차애
어원도 없이 남게 된 입말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가 말을 달린다
머뭇거리거나 돌아보지 않는 바람의 살虄이다
머리는 길거나 짧고 허공엔 스키타이 검 문양의 구름을 걸어둔다
돌궐이나 위구르, 몽고나 티베트가 아니라면
종족은 없고 부류만 있는 무리
반점과 눈초리만 가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지층을 지운다
한 걸음을 달리면 한 걸음이 열리는 탈주선의 망막을 열어두고
지붕과 벽을 깨뜨려 풀처럼 번져간다
생존 한계선은 늘 국경 바깥의 풍문처럼 밀려난다
없는 차원은 없는 것이다
들이닥치고 들이닥쳐서 피운 자리는 몽유 속 빛의 서식지
사방이 문이었지만 나온 발자국은 없다
시작도 끝도 없는 노래의 중간에서 슬며시
발끝은 종적을 잃는다.
돌궐이나 위구르, 몽고나 티베트가 아니라면
북동풍의 홀씨처럼 흩어진 잡종
바람의 행간도 받아 적은 적 없는데
열 손가락 내 지문에서 헛꽃 냄새로 떠돌고 있는 부류
통점꽃
좌표평면에도 잡히지 않는 아픈 자리에서
불현듯 꽃 핀다
어깨 죽지에서 일자로 내려간 등판을 좌표평면으로 잡는다면
대추 혈과 경추1번 사이쯤인가
어깨뼈와 빗장뼈 걸쳐 어디쯤인가
어혈인지 피멍인지도 모를 맺혔던 지점에서
통점꽃이 핀다
둥근 혈 자리가 박혀있는 테라피 목침으로 내 통증을 내가 달랜다
앞뒤로 비비거나 위아래로 살살 문지르거나
툭 모서리를 떨구거나 아픈 자리를 궁굴리며
어깻죽지와 등줄기, 경추와 요추, 중부와 회전근계 사이를 오르내린다
내가 나를 달래는 방식에는 슬픈 냄새가 난다
내 살점으로 내 옹이를 메꾸는 방식
내 체온으로 내 언 곳을 부비는 방식
칼끝에 맺힌 내 핏방울로 내 허기를 채우는 방식
여기를 죄어서 저곳의 경칩을 연다.
안의 통증이 밖을 두드리거나 밖의 아픔이 안을 달래는 사이
안도 바깥도 아닌 곳에서 타는 꽃향기가 난다
배롱꽃빛이 오래 멍들었다가 휘발하는 냄새다
*안차애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불꽃나무 한 그루』, 『치명적 그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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