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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최병숙/목련나무의 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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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최병숙/목련나무의 시 외 1편
목련나무의 시 외 1편
최병숙
앞뜰의 늙은 목련나무 한 그루
그동안 묵언의 시를 써내려 갔네
지나간 봄날 눈꽃송이 같은 시어들을 피워 올렸네
푸른 잎새들은 날마다 푸르러져
그 싱그러운 가슴속에
시린 달도
어린 새들의 울음소리도
속 깊은 제 마음 둥지 속에 가득 품어 주었네
간혹 멀고 먼 별이 된 낱말들도 있었을까
더러는 하늘로 하늘로 오르려다 떨어지고
더러는 속절없이 누렇게 뜬 얼굴로 떨어졌네
늦가을 바람결
느닷없는 빗줄기에 젖어 남루해진 우아한 문장들
이제는 소리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네
속절없이 떠나간 당신을 그리워한 일도
다 부질없는 수식어들이라고
조용히 퇴고하고 있네
비로소 온전히 빈 몸이 된 목련나무는
다시 가지의 행간마다 피워 올릴
신생의 푸른 시어들을 조율하고 있네
날마다 빌어야 사는 여자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빌기 시작한 것은
초저녁 밤하늘의 별과 달에게도
오래된 고목 아래에서도
윤기 나는 검은 무쇠솥 옆 부뚜막 앞에서도
깊어가는 가을날 뒤란 장독대 위 정화수 앞에서도
언제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허리 굽혀 두 손 모아
간절히 빌고 빌던 그녀의 나날들
깊은 산사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도
산속 바위 앞에서도
방생하는 강물 앞에서도
이름 모를 돌탑을 수없이 돌고 돌면서도
평생을 빌고 빌었던 그녀
그녀의 죄명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 자식 걱정이었다
날마다 빌어야 사는 여자
우리 어머니
*최병숙 2011년 《문학선》으로 등단. 시집 『바닷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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