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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김나원/나의 보로메 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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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신작시/김나원/나의 보로메 섬 외 1편
나의 보로메 섬 외 1편
김나원
아카시아 가지를 꺾었다 화병에 꽂으려는데 초록 벌레가 기어 나온다 화단에 살며시 놓아주었다 꼬물꼬물 사라지는 벌레를 따라 황토오솔길이 꿈틀거린다 우울하게 했던 것이 어느 날은 날아오르기도 한다
모퉁이 돌아 막다른 호수가 출렁인다 보로메를 향해 한숨을 쏟아놓는 왕벚꽃 수양버들은 작은 동산을 따라 황톳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 산은 연두색 솜뭉치로 갓 태어나는 아기다 장 그리니에는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고 했지 두꺼비 로드킬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목청을 높이고 있는 두꺼비 소리를 따라가다 머문 자리, 올챙이들이 검은 돌처럼 엉겨 심장을 파먹고 있다 점점 작아지고 있는 나를 황새가 물고 날아간다
문득
좋다
동동 살걸음 아니어도
하늘 여유 누릴 수 있어 좋다
겨울이라 좋다
벗은 나무들 솔직해서 좋고
옷 없이도 줏대 있는 몸짓이 좋다
좋다
꽃피지 않아 남쪽으로 갈 수 없어 좋고
바람에도 흔들림 없어 좋다
겨울이라 좋다
온 몸으로 햇살 받을 수 있어 좋고
구석까지 들어오는 햇살이 좋다
좋다
가뭄 끝에 토닥토닥 빗소리
가슴까지 스며서 좋다
겨울이라 좋다
쥐 잡을 일 없는 거실의 정오
물인 듯 펴져 있는 고양이
좋다
따스한 추위
봄에 대해 기다림이 있어 좋다
*김나원 2012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목성으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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